<남극의 셰프>는 작년인가 제작년에 일본인디필름페스티발에 소개되면서 알게 되었다. 지인이 보고싶다며 추천해줬는데 그때 시간을 못맞춰 보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셰프? 요리사? 남극에 요리사도 간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으로 시작된 궁금증과 요리사가 주인공이니 어떤 맛나는 요리들이 책에 펼쳐질지 기대가 많이 되었다. 너무나 특별한 장소 남극에서의 이야기라니 책은 보기 전부터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책은 일본 영화로 제작되었을만큼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즐거움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음식이야기로 시작해서 끝날 것 같았던 내용은 예상외로 남극에서의 일상이 주였다. 남극 돔 후지 기지로 떠나는 과정과 해발 3,810m, 평균 기온 -54도의 극한지인 남극 돔 후지 기지에서의 삶, 그리고 고국으로의 귀환까지 1년여의 남극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가 지낸 남극 돔 후지 기지는 총 9명의 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춥고 황량한 남극 한 가운데서 생활을 그리고 있는데, 난 새로웠다. 남극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부분보다 모르고 있는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배울 수도 있었다. 남극에서는 모든 음식물을 냉동보관해서 먹어야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물론 냉동된 재료들을 해동시키고 가열하고 조리해서 따뜻하게 먹을 수 있지만, 남극 기지까지 1년동안 먹을 모든 식량을 냉동해서 가져가야한다는 점과 기지에서도 냉동보관밖에 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기지내에서 새싹채소를 길러서 먹는 다는 점 등 놀라움 투성이었다. 평균 기온이 영하 50도 60도를 육박한다니 따뜻하다는 날씨가 고작 영하 30도... 우리나라가 영하 30도라고 하면 얼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할지도 모를텐데.. 1년 365일을 남극에서 지내는 세상의 모든 대원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친구들과도 떨어져 지내는 삶이라... 남극만큼 춥고 외로울 것 같다. 그런데 고되고 힘든 남극 여정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선택한걸까? 짭짤한 수입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힘들고 춥고 아프지만 그만큼 그들의 남극에서의 삶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특별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나도 누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왠지 그곳에 가면 펭귄들이 지천에 깔려있고 얼음과 눈으로 가득차 하얗다못해 눈이 부실 것 같았는데, 환상과 현실이 다르듯이 책을 통해 만난 남극은 노동, 밥, 사고로 함축된다.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가기 일쑤이고, 생일이다 환영회다 송별회다해서 기회를 만들어 특별한 파티를 여는 것이 그곳에서 삶의 활력소를 얻는 유일한 기회이고, 스노홀 붕괴같은 아찔한 사고부터 동상에 걸리는 일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일어나는 남극의 생활. 광활한 대지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너무 춥고, 펭귄들은 특정지역에 살아 보기 힘들고, 백야가 올때면 충분한 수면을 취하기도 어렵고, 산소는 희박해서 힘든 작업만 하면 호흡하기조차 힘들어지고, 생리적인 문제들은 해결하기가 여간 불편하고, 최고급 고기조차 그냥 평범한 고기구이가 되어버리는 곳이 남극이었다. 그런데 이런 남극이 그래서 더 가고 싶어진다. 아마 남극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다 같은 생각이 아닐까? 고생하는 것이 뻔한데 그냥 발길이 향해지고 손길이 향해지는 곳이 바로 남극일 것 같다. 훤히 예상되는 고생길이 나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본 뒤로 더 강해지면 강해지지 절대 약해지지않는다. 꼭 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