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을 찾아간 48명의 미술가들이 남긴 것

스스로를 파견미술가라 부르는 미술인들은 참사가 벌어진 후 진정되지 않는 가슴으로 용산 현장을 찾았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장례식을 치루는 날까지 용산을 찾았다. 그리고 참사 현장에서 살아가는 용산 유가족과 주민들과 용산현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그렸다.

미술가들은 캔버스 천과 낡고 버려진 생활용품과  참사 당시를 말해주는 건물, 한 때 꿈과 희망의 공간이던 상가들에 용산참사가 말하는 것들을 그리고 새겼다. 이윤엽 씨가 판화로 작업한 "여기 사람이 있다"는 용산의 고통을 가장 절실하게 웅변하는 이미지로 새겨졌고, 장례 당일 경찰이 끝내 행진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던 "부활도"는 불구덩이 속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정 부딪히며 살아갈 곳을 찾는 사람들의 의지를 새긴 이미지로 남았다.

<끝나지 않는 전시>는 48명의 미술가들이 참여한 용산참사에 대한 미술 기록이다. 동화를 그리던 작가들, 생활미술을 하던 작가, 미술치료를 하던 작가, 조소를 하고, 판화를 하고, 퍼포먼스를 하고, 빛 공예를 하던 다양한 장르의 미술가 48명은 번갈아가며 용산을 찾아와 작품으로 용산을 이야기했다. 참사현장에 남겨진 포장마차와 희생자분들이 운영하던 맥주집 레아, 무교동 낙지집은 전시장이 되어 용산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았다.

고백, 가슴이 떨려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끝나지 않는 전시>에 실린 참여 작가의 글은 대단한 사명감을 가진 예술가의 글이 아니었다.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으로서 참사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룰 수 없고, 남은 유가족과 부상자들과 용산 주민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전하고 싶었던 양심의 고백이었다. 오랜 시간을 소식을 듣고도 미안한 마음에 아무것도 못하다가 전시에 참여해 달라는 권유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고 참여한 작가들의 고백은 용산참사를 대하는 많은 소시민들의 마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용산 참사 현장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용산에서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고 전시장을 지킨 전진경 씨의 블로그에는 이런 글이 있다.

"이쁜 옷 입고 왔더니, 유가족 어머니들이 이쁜 옷 입고 왓다며 웃고, 철거민 아줌마들이 옷이 예쁘다고 웃는다. 죽, 이쁜 옷 입고 와야겠다."
죽음의 현장에서 삶을 나누고, 슬픔을 나누고, 실낱같은 희망을 나누려했던 미술인들의 마음이 이런데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진심을 담은 위로와 아픔 나누기를 할 줄 알았던 미술인들의 작품과 글을 보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몇 차례 참사 현장을 찾아가서도 유족들의 손 한번 잡지 못하고 돌아나오던 모습이 생각 나서다.

<어머니의 노래> 처럼, <오월의 노래> 처럼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 돈을 위해서는 인정을 두지 않는 투기적 재개발은 승승장구한다. 마포, 용산을 비롯한 서울 곳곳에는 아슬아슬한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작년말에는 세입자가 남은 상태에서 철거를 강행하던 마포 용강동 시범아파트에 살던 노인이 자살을 선택했고, 355일 장을 치룬 용산의 유가족은 강제철거 현장을 찾아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있다.
여전히 정확한 책임소채를 밝히지 않고 있는 법정과 권력은 진심 운운하던 사과로 장례를 치룬 것만 다행으로 여기는 듯 하다.
90년대 중반이었다. 처음으로 광주학살 장면이 TV에 나왔다. 특별 다큐멘터리였다. <어머니의 노래>, <오월의 노래> 이런 이름들로 기억한다. 진즉에 다뤄져야 할 일들이 공중파에   등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너무도 길었다. 아직도 범죄자 낙인을 벗지 못하는 용산 주민들이 언제쯤이나 <어머니의 노래>나 <오월의 노래>에 나와 묵혔던 한을 토하듯 이야기 하던 광주 유족들 처럼 세상에 하소연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빼앗기고 찢겨서 더 오래 남을 작품들
<끝나지 않는 전시>에는 하루만에 경찰과 용역에 의해 철거되거나 압수된 작품들 이야기가 나온다. 기억조차 지우길 바라는 권력은 그림에 새긴 추모의 마음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연민마저도 거둬갔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기억하는 것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불안인가 보다. 하지만 역사는 예술을 탄압한 권력의 이름보다 권력자의 탄압 앞에서도 붓을 들고, 악기를 들었던 예술가의 이름과 작품으로 오래도록 기억해왔다. 히틀러와 괴벨스의 난폭한 파괴는 작품을 잃어버린 작가들의 명예를 드높였고, 프랑코 정권과 파쇼연합군의 탄압은 파블로 카잘스 같은 예술가의 연주를 더욱 빛나게 했다.
아직은 얼마의 사람들이 보고, 얼마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용산참사 미술인들의 작품은 <끝나지 않는 전시>로 모여 용산의 상처를 되새김 하게 한다. 허나 빼앗긴 작품들이 되돌려지지 않고, 용산참사의 책임과 진실이 시간을 끌면서 밝혀지지 않을수록 파견작가들의 작품은 그 가치를 더욱 높여나갈 게다.

<끝나지 않는 전시> 여는글은 용산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이야기로 글을 맺는다. 아직 응어리로 용산참사를 담고 있는 사람들, 용산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과 이 책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아직도 재개발 공약으로 지방선거에서 표를 사려는 정치인들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