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는 부제(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가 말하는 대로, 뜨거웠던 87년의 태동을 그린 만화책이다. 87년을 다룬 어떤 책 보다 당시 민주화운동 에너지의 고양 과정을 직접, 사실, 경쾌, 속도감 있게 그렸다. 

이야기는 동이 트기 전 짙은 어둠이 드리운 새벽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암울했던 어둠도 작가는 우울한 낯빛으로 그리지 않는다. 어둠이 품고 있는 빛의 조각을 예리하게 찾아 보여준다. 작가는 6월민주항쟁을 직접 겪지 않았다. 그런데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인물 주변에 놓인 소품들 노래와 이야기, 술집, 거리, 자취방, 학교, 뉴스 등은 당시를 지내온 내가 보기에도 흠잡을 곳 없다.  생생해서 장면 장면이 과거를 돌이킬 매개가 된다. 작가가 얼마나 취재와 자료 모으기에 공을 들였을지 짐작이 간다.



며칠 전 읽었던 <누란>과 <100℃>는 같은 시대를 그렸지만 색채는 완전히 다르다. <누란>은 좌절과 고통에 집중했다면 <100℃>는 희망의 가능성과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에너지에 집중한다. 
작가는 에너지를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찾는다. ’돈을 벌어도 혼자 배불리 먹을 생각 말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 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형제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진로를 조금쯤 수정 할 줄 알던 우애, 이웃의 안타까운 일을 못 본척 하지 않던 인정들이 그것이다. 지금은 치열한 경쟁과, 사람살이의 미분화로 잃어진 것들, 하지만 그리워 하는 사람의 미덕이 <100℃>에는 잘 드러나 있다.



  
만화 작가답게 사실적 장면 놓치지 않으면서도 웃음의 요소를 찾아낼 줄 아는 최규석 씨의 눈썰미는 이 책의 매력을 한 층 높인다.  사실 속상하고 가슴 저리는 일 중에도 웃음의 순간은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를 달래려는 웃음이든, 서로 용기를 북돋우려는 웃음이든 웃는다. 잠깐 웃는 것만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는 좀 숨이 틔이게 된다. 그 잠깐 생기는 웃음의 틈을 작가는 놓치지 않고 살려낸다.
또, 내용 전개는 속도감이 있지만 한 컷 한 장면이 스틸사진을 보는 듯 진한 메시지를 담는다. 같은 쪽에 있는 그림들, 바로 전 컷에서는 웃었지만 다음 컷으로 시선을 주면 곧 눈물이 핑 하게 만드는 신기한 재주다.  

모든 이들의 어머니였던 민가협 ’욕쟁이’어머니, 연약해 보이지만 강단 있던 누이들, 책임감으로 똘돌 뭉쳐져 있지만 정의롭게 살려 애쓰던 장남들, 자식이 힘든 길로 가는 걸 눈 뜨고 볼 수 없어 매몰차게 대하지만 그 길이 대의라는 걸 알고는 뒤에서, 모르게 응원하던 아버지....<100℃>에 살아있는 인물들은 내 기억 속에도 뚜렷하다. 나를 키워준 힘이면서 시대를 밀고 온 힘이다. 

당장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곱디 고운 힘들은 언젠가 또 다시 끓어오를 것이다. 아름다운 힘들이 제대로 힘을 발하는 미래의 꿈을 놓지 않는 <100℃>의 주인공들을 만나 그 역동의 근거를 확인하는 일은 행복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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