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집이란 걸 읽었다. 개소식날 새벽까지 술을 나누다 해장국집에서, 해장국 한 숟가락 먹고, 시를 읽다가, 감탄을 하다가 얼결에 선물로 받고 말았다.

<침대를 타고 달렸어>는 <세기말 블루스>로 유명해진 신현림의 시집이다. 시의 첫 장부터 저리게 아픈 시인의 마음이 훅 막히게 만드는 시가 이어진다. 자기 상처의 치유 과정이 시가 되어 톡톡 떨어졌구나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곧, 그래 "내가 그래야지.", "나도 살아가야지.", "나도 사랑 해야지." 마음 속으로 번져간다.

그의 시를 들여다보면. 시 속에 시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냥 드러난다. 

[슬픔도 7분만 씹고 버려]   "감각의 종이란 종 다 울리고 / 좀 더 다르게 살기를 바라야지 / 배우고, 보고, 느낄 것들이 많아."  [ 내가 못 본 이야기를 해봐요] " 주기보다 가진 것을 더 많이 떠드는 세상살이 / 뻔한 인생살이가 지루해서 돌아가시겠어요 / ... / 말말말랑한 사랑의 상상력이 그리워요 / 가지려고만 드는 세상에서 / 남 주고, 나누고, 보살피는 손들이 그립고" [The hole] "세상에 내민 열한 장의 너의 이력서가 / 아무 구멍이 되지 못한 날 / 낡은 옷장에 서랍 하나 부서지고 / 낡은 통장에 남은 돈이 텅 빈 날에 / 

시인은 5분만 더 잘게 하는 것처럼 슬픔도 언제든 맘 먹은 대로 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중에도 멈춰설 시점을 생각할 힘이 시인에게서 느껴진다. 슬픔은 견딜 수 없는 엄청난 일에서도 오지만, 작은 좌절에서도 온다. 열한 장의 이력서를 써가는 중에는 못 느끼지만 열한 장을 확인한 날, 낡은 옷장 서랍이 부서지는 망연한 일 속에서 온다. 이런 때에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 힘을 시인은 사랑에서 찾는다.

[엄마의 유언, 너도 사랑을 누려라] "딸아, 너도 사랑을 누려라." / 사랑 안에서 고양이 같은 민감한 지혜를 배우고 / 타인을 위해 나 자신 내려놓는 법을 익히고 즐거워 하라 / 
[그대 몸 달빛이 울면] 꼭 색정이 아니래도 / 문풍지가 바람에 울 듯/ 남녀 사이엔 함께 끌어안지 않으면 / 알 수 없는 것이 있어서 / ... / 아름다운 바다가 우는 따뜻함을 나누고 싶어 / 

사랑을 표현하는 시인의 말은 촉감이 느껴진다. 향기와 거리와 색이 느껴진다. 시인 자신이 어머니로부터 주변으로 부터 받은 사랑을 딸에게, 시를 읽는 이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다시 되새김 하는 동안 진정으로 사람을 그리워하는 법을 배운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가닿는다] 언덕을 넘고 바다와 강을 건너도 마음은 이어진다 /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가닿는다 / 
[향긋한 친밀감을 위하여]  제대로 친하려면 / 성숙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이죠 / 우정과 사랑의 마을엔 / 고마움, 존경심의 가로수가 춤을 추지요 / 나무 그늘 아래 함께한 / 세상 이야기도 붉게 물들게 / 추억 유리병을 놓아두세요 / 배려의 긴 의자를 놓는 것 잊지 말고요/

시인은 슬픔도, 사랑도, 그리움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런 행위와 살폿한 움직임과 정갈한 환경 속에 잘 내려놓는다. 시 안에서 움직이는 시인의 모습을 보노라면 어느덧 내 마음도 어수선한 마른 잡초를 뽑아내고, 촉촉한 흙더미를 드러낸다. 

[시를 쓰는 밤]에서 시인은 시를 쓰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지 모른다 내안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 참았던 비명도 쓸쓸함도 터져 바람 속에 기도 속에 녹아내린다/  시를 읽거나 쓴다는 건 살얼음판 세상에 사랑 하나 심고 침대 위에 사과꽃 무성히 피어 내는 일이니.../  라고 고백한다. 

시를 읽는 일은 누군가와 자기 속 마음을 보여주고 읽어주고 하며 소통하는 일인가 보다. 마음이 시끄럽게 떠들 때, 자분자분 안정시켜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는 시’를 만나 좋다.






침대를타고달렸어, 신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