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전에 편견 덜기

<괴짜 사회학>은 빈곤층의 경제생활과 사회학을 연구하는 사회학 교수가 쓴 책이다. 무슨 ’학’이라니 전문적이고 어려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르뽀나 다큐멘터리로 보는 흑인 마을 이야기 정도로 생각 하면 적당하다.  

괴짜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괴상(마땅한 이치나 도리에 어긋나다)한 일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저자처럼 연구 대상이 되는 사회에 깊숙이 들어가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방식은 사회학에서 잘 쓰지 않는 모양이지만 ’괴짜’는 아니다. 조주은 씨가 쓴 <현대 가족 이야기>에서도 벤카테시와 같은 조사연구법을 만난 적이 있다. 괴짜라기 보다 ’진짜 사회’에 접근하려는 독특한 노력이 담긴 연구다.

’흑인’이라 부르면 인종 비하의 뜻을 담게 돼서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 불러야 한다지만, 책은 굳이 ’흑인’이란 표현을 쓴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은 적어도 미국민의 대접을 받으며, 미국 사회의 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지 사회에서 내버려진 채 사는 로버트 테일러 홈즈 지역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서 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저자는 다른 지역에서 어엿한 미국민 대접을 받으면서 사는 사람들을 일컬을 때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 쓰고 있다.


미국 안의 섬  ’로버트 테일러 홈즈’

한 낮에도 총격전이 벌어지는 마을이다. 경찰력과 행정력은 이 마을에 없다. 구급차를 불러도 오지 않는 동네다. 마을 사람들은 어딘가로 출근 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실업자다. 하지만 일은 한다. 누구도 정상적인 직업은 갖지 않았지만, 불법적인 직업은 갖고 있으며, 그들의 직업이 얽힌 연결망이 ’로버트 테일러 홈즈’의 경제와 생활을 만든다. 마약과 매춘, 물물교환, 소규모 장사가 그들의 경제 기반이다. 불법 거주와 가난은 생활 패턴이고, 범죄는 일상이다.
허나 이 지역 사람 누구도, 이런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벗어날 길이 없다. 세금도 마을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불법 교환에 세금이 붙지 않는 까닭이다. 경찰은 가끔씩 이 지역을 돌며 주민들의 불법을 미끼로 돈을 털어 간다. 가끔씩 거슬리는 놈을 잡아 넣는 것으로 경찰력을 과시 한다. 


대학의 강단과 현실 사이에 놓인 깊은 강

‘나의 문제 제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사회학 분야는 오랫동안 이 두 가지 입장, 곧 양적?통계학적 기법을 이용하는 입장과 흔히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삶을 연구하는 입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19쪽-

수디르 벤카테시는 흑인빈민 사회를 연구하고 싶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흑인들의 마을과 분리된 지역에 살면서 흑인 빈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자료와 통계다. 통계 속에서 ’로버트 테일러 홈즈’는 엄연히 미국 내 사회다. 인구수, 연령대, 범죄율, 실업률 등 각종 통계가 미국 사회의 것으로 취합이 된다. 허나 통계만으로 빈민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알 수 없었다. 교수들에게 물어 시원스런 대답을 얻지 못한다. 벤카테시는 ’로버트 테일러 홈즈’를 찾아 갔다. 방문 첫 날 경쟁 갱단의 끄나플로 오해 받아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10년 가까운 기간을 로버트 테일러 홈즈에서 머물며 연구하는 그를 대학은 곱게 보지 못한다. 그의 연구를 검토해주던 교수도 그의 신변 위협을 걱정하며 연구를 중단할 것을 바란다.

얼간이 같은 질문이나 하면서 돌아다녀선 안 돼. 우리 같은 사람들하고 어울려야 한다고.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왜 그러는지 알아야 해. 젊은 청년들이 왜 거리에서 살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구 -41쪽 - 

이러니 대학의 강단이 현실과 얼마나 멀리 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학계에서 현실을 뭐라 뭐라 정리해내면, 그것이 공자님 말씀인양 그대로 믿고 마는 사회니 헛 웃음이 날 밖에. 완강히 틀고 앉아 있는 강단을 옮길 수는 없으니 현실의 역동성으로 강단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벤카테시의 도전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물리적 권력 제이티와 살림 권력 베일리 여사가 이끄는 아주 독특한 자치

로버트 테일러 홈즈는 불법과 폭력을 빼면 나름의 자치를 이루어 가는 지역으로도 비춰진다. 고립된 가난이 끊임없이 폭력과 불법을 불러 들이는 악순환을 반복  하지만 말이다. 자치 권력의 중심에는 갱단 두목 제이티와 주민대표 베일리 여사가 있다. 제이티가 운영하는 갱단 블랙킹스는 이 지역의 법률 집행기관이다.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지만, 다른 한 측면에서는 주민들이 처할 수 있는 물리적 위협을 방어하는 치안 권력이기도 하다. 제이티의 결정은 그 마을의 법이다. 독재적인 권력이지만 주민들은 제이티의 권력이 필요하다. 불법 거주, 불법 경제 생활을 묵인해주는 권력이 필요한 것이다.
제이티의 권력과 긴장과 대립을 유지하며 공생하는 또 다른 권력은 주민대표인 베일리 여사다. 베일리 여사는 거주민들의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안다. 밥을 굶는 아이들을 찾아 걷어 먹이기도 하고, 별도의 망을 통해 들어오는 구호품을 배분하기도 한다. 가정 폭력이 발생할 때는 민병대를 동원해서 수습을 하고, 로버트 테일러 홈즈를 벗어나서 좀 더 건강한 삶을 계획하는 사람을 지원 하기도 한다. 이 모든 살림을 돕는 대가로 약간의 세금(무료 미용, 무료 수선, 음식 등)을 걷고 약간의 로비성 물품을 챙긴다.

이들도 안다. 10대의 어느 때에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좀 더 다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가난은 매우 다급하게 그들의 선택을 요구한다. 마약을 팔고 갱단의 심부를을 하고, 매춘을  하는 것으로 그 질서에 융합된다.

"하지만 우릴 희생자로 만들진 마. 우린 우리가 어째해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거니까."  -204쪽-

"나는 선택권이 있어서 로버트 테일러 홈즈 생활을 그만 둘 수 있었지만 그곳 주민들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빈곤 문제 연구를 끝내고 나서 오랜 후에도 그곳 주민들 대부분은 여전히 가난한 미국인을 살아가야 할 것이었다." -335쪽-

벤카테시는 이 지역에 약 10 년 정도를 왕래하며 그들의 삶을 지켜본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만도 긴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을 지내고 나서도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현장에서는 인색하고 태만한 시 기관과, 주민들을 도ot; -359쪽-

벤카테시가 로버트 테일러 홈즈를 이해 하는데 큰 영향을 준 베일리 여사의 말이 오래도록 남는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생각한다.
"자넨 흑인들이 이 주택단지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해. 왜 가난한가. 왜 이렇게 범죄가 많을까. 왜 가족을 부양하지 못할까. 왜 아이들은 자라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을까. 그럼 이제는 백인을 연구하겠나?"  -2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