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를 읽다보면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작가가 그 안에 깃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라부 안에서도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읽으면서도 이라부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
나이 삼십대 후반에 다양한 직업의 환자들과 다양한 문제를 씨름하면서도 매번 "오, 신기해. 놀라워. 대단해.", "그래, 그럴꺼야. 그럼 이럴 땐 어떠지?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 하면서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도 들이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환자(인물)을 이해하려 하며, 깊이 공감하고, 그 인물의 세계 속으로 풍덩 빠져드는 사람. 생김이나 행태는 다를지 몰라도 이라부의 태도 안에서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를 발견하게 되는 거다.

대체 어디서 비롯될까? 기자, 카피라이터 등을 두루 거친 그의 경력이 만들어 냈을까? 아님 자기 안의 순수를 어린이의 색으로 간직하고 있어서일까? 

<인더풀>는 공중그네와 면장선거의 출발선에 있다. 다만 다른 것은 등장하는 사람들이 필부필부라는 점이다. 그래서 더욱 애정이 가는 인물들이다. 길을 지나다 스쳐도 한 번 더 되돌아볼 일 없을 것 같은 그저 이웃 1, 2, 3 같은 인물들. 그들 안에 흔들리는 자존감과 분출하지 못한 욕망과 열정, 필부로 살아가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자기억제가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농축되어 담겨있다. 

의도 하든 안 하든 질서에 몸을 담고 흐르다 보면 나는 물에 흩어져 버린 듯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때가 생긴다. 나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주변 환경과 억압적 기재들은 본래의 세기 보다 훨씬 강하게 감각된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다 보면 과장되게 확대된 환상을 두려워 떨며 만나거나, 무언가가 내 삶을 들여다 본다거나 하는 강박에 휩싸인다. 그걸 비정상이라 하기엔 다른 사람들과 종이 한장의 차이도 느껴지지 않는데 본인에게는 무척이나 답답한 상황에 부딪히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인더풀>의 이라부가 굳이 지하에 진료실을 둔 것이나, 간호사 마유미의 허벅지에 쓰인 'Watch it!'의 의미는 방해받지 않고 나를 향하는 곳이라 해석된다.
'주변의 거추장스런 것들을 거둬 내고 알몸으로 나왔을 때의 너를 봐. 넌 여전히 그 때의 모습처럼 가치롭고, 정상적이며, 자연스러운 인간 그 자체야. 그러니 혐오 안에 빠진 너를 끌어 올려 봐. 실패라구? 실패 하면 다시 하는 거지 뭐. 별 거 있어?' 소리를 자신한테 전하는 공간 말이다.

무겁고 버거운 것을 어린시절로 역행해서 해석하게 하는 힘. 그래서 유쾌하면서도 알맹이가 있는 작가. 오쿠다 히데오를 닮은 이라부의 매력에 빠져드는 일은 행복하다. 자, 누구든 오롯히 나를 들여볼 수 있는 방 '이라부'의 진료실로 가보자. 너무 편안해서 잠들지 않도록 주사 바늘 하나 옆에 끼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