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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IT史 100>은 40년 동안 IT분야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 100가지를 모아 놓았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아, 맞아. 정말 그랬는데.' 하며 읽었다. 아주 오래 전 기억으로 잠겨 있던 일들이 건드려 주길 기다렸다는 듯 톡톡 튕겨져 나왔다. 물론 내 경험은 단편 뿐이고, 책은 하드웨어로부터 소프트 웨어, 한 동안 반향을 일으켰다가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기록까지 종합적이다.

이번 리뷰는 <대한민국 IT史 100>와 함께 하는 추억여행이 될 듯 하다.

타자기와 워드프로세서, 컴퓨터 자판

어릴적 눈이 좋지 않아서 공안과를 찾았었다. 좀 득특하게 어릴적부터 한 쪽 눈에 원시, 양 쪽 난시를 가져서 좀 잘 보는 안과를 가자는 아버지 따라 갔었다. 그 '공안과'가 세벌식 자판과 워드프로세서, 한글사용 운동을 벌인 공병우 박사님의 병원이었다는 것은 새롭게 안 일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난 네벌식 타자기로 시작해서 두벌식 자판만 써봤다. 네벌식 타자기를 쓰다가 전동타자기를 쓰면서 부드러운 자판과 '드르르륵' 찍혀나고, 좀 더 선명한 글씨로 찍혀나고 지울 수도 있던 전동타자기에 신기해 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글자체를 선택도 할 수 있고, 글자 크기도 조절 되고, 심지어는 저장까지도 되던 워드프로세서라는 것을 만났을 때는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 놈으로 일을 하는 게 신기해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문자표를 주런히 매달아 문서를 만들던 기억도 새롭다.

대우워드프로세서 르모의 모습

처음 8비트 컴퓨터를 사무실에 들여 놓았을 때는, 출판사를 차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386컴퓨터가 나올 즈음 혼수품으로 컴퓨터를 처음 가졌고, 컬러 모니터와 386컴퓨터를 사무실에 들이면서는 스피커에 대고 말을 하면 켜진다는 농담으로 사람들을 놀려먹기도 했다.

순서도, C언어, DOS, MDOS, Windows

처음 만났던 컴퓨터는 고등학교 때, 과학실에서도 문을 한 번 더 따고 들어가는 곳에 있었다. 과학 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곳에서 위의 컴퓨터 모양을 처음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조작을 해보거나 했던 기억은 없고 '토정비결'을 프린트 해서 친구들과 돌려보았던 기억이 처음이었다. 도트 프린터로 한 줄씩 인쇄 되는 걸 한 줄 한 줄 설레며 기다렸다.

대학 때 친구랑 방학 특강으로 컴퓨터를 들었드랬다. 컴퓨터 특강이라는데, 컴퓨터는 별로 못 만지고, 순서도만 짰다. "사람 편하자고 컴퓨터를 배우는 거지, 뭐 이리 단순한 답을 얻자고 복잡한 질문지를 만드냐." 타박했던 기억이 난다. 그걸 컴퓨터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자판으로 입력하고 나면서도 결과를 하나 보려면 프린트 줄을 한참 기다리느라 지리했던 기억도 새롭다.

C언어나 DOS 언어도 프로그램을 열기 위해서 쓰는 것 말고는 쓸 일도, 잘 알 일도 없어 크게 불편하지 않았지만 처음 M_DOS와 M_tree가 나와서 마우스 클릭만으로 무언가를 실행시킬 수 있게 됐을 때는 새삼 놀랍고 신기했다. 간단한 표현을 컴퓨터가 쉬이 알아주는 기분이랄까. 그때 쯤 컴퓨터가 제법 신통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처음 윈도우는 MDOS 보다 불편했는데, 인터넷 사용률이 많아지면서 어느새 그 관계가 역전되었다. 이제는 윈도우 창에서 모든 걸 시작하고 마치는 게 너무 당연해 졌다. 그 사이에 촉망 받던 기술과 기업들이 MS의 철옹성에 밀려 난 걸 생각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익숙해진 내가 좀 미안해지기도 한다.

하이텔플라자, 동호회, 카페, 디씨 인사이드, 오마이뉴스

세상을 만나는 일도 어느덧 컴퓨터에 연결된 회선을 통해 더 많이 이루어진다. 물론 시간으로 따지면 여전히 오프라인 세계가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정보를 취하고, 정보를 나누고, 내보내는 것으로 따진다면 인터넷을 통해 오가는 게 압도적이게 됐다.

처음 하이텔 플라자에서 만나자란 얘기가 대체 어디서 보자는 얘긴지 몰라 낯설었던 기억에서, CUG 안에 방을 하나 만들고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엄청난 자료량에 놀랐드랬다. 포털에 대한 기억도 역시 잊고 지냈던 것 중 하나다. '심마니', '엠파스'가 포털의 대명사이던 때를 겪었지만, 그 때 그곳에서 무엇을 했었는지는 기억에 별로 없다. 검색해서 무언가를 찾아들어가던 창 이상이 아니었던 것이 두 포털의 역사를 짧게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역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경쟁력을 갖는 인터넷 세계의 원리는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다음에서 메일을 만들고,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고, 블로그 때문에 네이버를 사용하게 된 것, 디카 장만하고, 합성 사진, 포토샵 재미로 디씨 인사이드를 들락거리던 기억부터, 처음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려놓고, 디지털 매체가 가진 '열린 소통'을 기뻐하던 기억도 새롭다.

<대한민국 IT史 100>은 꼼꼼히 작성된 우리나라 IT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다. 기술 나눔과 보급, IT 안에서 이뤄진 우리말, 글, 문화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진 김중태 씨의 경험과, 저자의 IT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은 책이 정보의 모음이 아니라 역사의 기록이 되게 했다.

다시 또 누군가에 의해 달라지고 새롭게 될 IT의 파격적인 변화도 기대되지만, 그 첫 걸음들을 떼는 동인이 된 연구진과 기술진들의 너른 소통의 마음을 얼마나 품고 가게 될지도 궁금하다.

<대한민국 IT史 100>. 자신의 역사와 우리 IT의 역사의 주요 장면을 추억하고 새로 배우는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