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사전을 찾아보았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쇠잔한 목숨’ 이라는 뜻의 잔명과 비슷한 말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 언저리에 있는 또 다른 여명(黎明)은 ‘희망의 빛’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치에씨에게는, 주변의 젊은 환자에게는, 그리고 나에게는 책 제목 그대로인 여명(餘命)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여명(黎明)으로 다가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청춘이라면 청춘일 20대 초반의 시기에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도, 불치병일지라도 대부분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산다. 왜냐하면 인간은 ‘희망’이라는 불씨를 가슴 속에 품고 살기 때문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잘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힘을 내며 오늘 하루를 개척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암 선고를 받는다면. 그것도 여자인 나에게 유방암이라면 모든 것이 좌절로 다가올 것이다. 여자에게 가슴이 없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감히 상상을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을 나만 없다는 것은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다가와 위축될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암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태연하게(본인은 절대 태연하지 않았겠지만 암 선고를 받은 사람의 반응이라고는) 치료방법을 고민하는 주인공 치에는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인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는 암 선고 후의 사람들은 흔히들 오열하거나 여행을 떠나버리거나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치에씨는 자신이 하는 일을 마무리 짓고, 잠시 호전되었던 때에는 그 어려운 컴퓨터 일도 해내었다. 그것은 자신이 희망을 가지고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그런 입장이었다면 당장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드는 생각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몸이 점점 아프게 될 것이고, 아픈 몸에 정신까지 온전하게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없어질 것인데 이 세상 무엇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느껴지는 것은 내가 하루하루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고 있지 않구나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절실히 바라는 것도 없는 그야말로 지루한 삶을 보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치에씨는 같은 처지의 젊은 환자들과 소통하고 희망을 보내고 싶다는 취지로 인터뷰도 하고 그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된 것이겠지만, 오히려 나처럼 몸뚱이는 멀쩡하지만 생각 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정신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젊은이들 전체에게 말을 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기적이다.’ 라는 치에씨의 말처럼, 나도 다가오는 내일을 기적으로 느끼고 감사하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