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past!  Back to the Goguryeo !

‘고구려 고분벽화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는 과거로의 타임머신을 타고 마치 고구려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 속에 있었다. 마치 딸들과 함께 본 해리포터 영화 속의 주인공이 기차역에서 벽을 뚫고 마법의 세계로 들어간 것처럼, 이 책의 페이지마다 실린 고분벽화들 속으로 나도 빨려 들어간 느낌이었다. 전호태님의 ‘고구려 고분벽화 이야기’는 그만큼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생생하게 담고 알기 쉽게 써놓은 책이다.

 벽화의 탄생은 한때 당시 유행하였던 ‘순장’ 대신 벽화만으로도 저승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할 게 없다고 생각하고 무덤 안 곳곳에 벽화를 그려 넣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초기의 벽화는 주로 일상생활을 많이 그렸는데 나들이 모습, 음식을 만드는 모습, 사냥, 놀이, 씨름 등이 소재가 되었으며, 불교를 믿게 된 뒤부터는 연꽃이나 비천 같은 그림을 주로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고구려 말에는 음양오행 신앙이 유행하면서 사신(四神,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리기도 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무덤 벽을 도화지 삼아 그린 그들의 생활모습과 풍습, 생각이 그대로 담긴 소중한 역사 자료이다. 이들이 남긴 약100여기의 벽화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남기지 못한 역사적 서적이 아니더라도 당시의 그들의 생활, 그들의 신분, 그들의 놀이, 그들의 의식주, 그들의 종교들을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안악3호분을 보면 당시 귀족의 저택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외양간의 소는 그들이 오늘날 자가용처럼 타고 다녔던 차고와 차가 되며, 고기를 걸어놓은 창고의 모습은 그들이 얼마나 풍요롭게 살았는지를 짐작케 해주며, 부엌에서 조리를 하고 있는 하녀들의 모습과 우물 주변에 놓인 물 항아리 등을 보면 1400 여년전의 그들의 생활 모습이 얼마 전 우리들 생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수산리 벽화분을 보면 무덤주인 부부의 나들이 행렬을 볼 수 있는데 이 벽화는 상당히 색채감이 좋고 뚜렷하다. 벽화에 나타난 그들의 복장은 공통적으로 상의가 길며 치마를 풍성하게 입은 것으로 보인다. 귀족들의 경우 색감과 질감이 좋아 보이는 의복이며 시중을 드는 하인들보다는 풍성한 차림이다.

 벽화에서는 오늘날 미술표현 방법에서의 원근법은 별로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주로 벽화에서의 주인공들-귀족-은 크게 그려져 있으며 시중을 드는 하인들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으며 중요한 것만 크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즉 신분의 지위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그려졌다는 뜻이며 이는 그들이 저세상에서도 높은 지위와 신분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리라. 또한 이 벽화에는 곡예(교예) 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 당시에도 이런 놀이를 즐겼음을 알 수 있게 해주며 그들이 아주 작게 그려진 것으로 보아 신분이 매우 낮았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무용총의 벽화는 내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관심을 가지게 한 벽화이다. 무용총의 수렵도를 그저 역사 시간에 ‘고구려인들의 늠름하고 씩씩한 기상을 알 수 있는 벽화’ 로만 외우다시피 해서 알고 있는 정도였던 나는 언젠가 연수를 받던 중 이 벽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는 ‘아, 이 벽화 속에 숨은 이야기가 많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고분벽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호기심을 일으켜준 벽화이다.

 그들이 달리는 날렵한 말을 타고 호랑이나 사슴을 향해 활을 겨누는 모습은 보기만 하여도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쳐 어느 영화보다도 짜릿한 느낌을 준다. 무용총 벽화에는 무덤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그림도 있다. 무덤 주인이 아마도 서역에서 온 듯한 두 명의 스님을 맞이하며 이야기 하고 있는 장면인데, 이 책에 의하면 아마도 불교에 관한 설명을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 근거로 무용총에는 불교와 관련된 연꽃 봉오리나 활짝 핀 연꽃을 천장돌에 장식한 것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6세기에 들어서면서 벽화의 소재는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연꽃과 공양 대신 고구려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믿어오던 오행설이나 신선 신앙을 벽화에 담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강서 대묘에서 볼 수 있는 사신(四神)이다. 동으로 청룡, 서로 백호, 남으로 주작, 북으로 현무가 그것이다. 이렇게 사신을 벽면에 그리는 사례는 고구려에서만 확인되고 있는 고구려 사람들이 창조해 낸 독특한 문화 산물이라고 한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하늘의 별자리를 형상화한 동물로 각 방위별 별자리가 모여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이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이 호화로운 상상의 동물들을 보노라면 고구려인들의 상상력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고분벽화는 그냥 고분벽화가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그것은 그대로 역사이다. 이 책에 의하면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주로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인 지안(국내) 지역과 세 번째 도읍인 평양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환런과 지안(국내) 일대에서 발견된 벽화 고분의 수는 31기이고, 평양과 안악 일대에서 확인된 것은 76기로 모두 107기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소중한 벽화들이 지금 현재 중국 땅에 남아있고, 방치되어 있다가 이제는 그마저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하니,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며칠 후면 '고구려로 떠난다'. 책을 통해 보았던 고구려 유적들과 고구려 고분벽화를 답사하며 내 맘 속에 각인될 고구려의 모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