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통한 인생공부

 

글쓰기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다는 저자 정여울. 우리에겐 <내가 사랑한 유럽top10>으로 잘 알려진 저자이다. 여행지를 종횡무진하던 그녀의 행보는 독서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유럽여행 이전에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여행지의 감성들이 아름답게 책으로 담겼다고 보는 것이 순서에 맞을 듯하다. 책을 통한 인생여행은 그렇게 그녀가 쓰는 글의 굳건한 근본이자 단단한 초석이 되었다. 인문학, 철학, 역사, 심리학 등 다방면에 걸친 독서생활. 그 속에서의 배움들이 즐겁다는 그녀를 보면,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말의 주인공이 바로 여기 있구나 싶다.

 

<공부할 권리>는 저자가 책을 통해 경험한 값진 배움들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만든 책이다. 그녀의 공부는 고전, 인문학, 철학, 역사 등을 통한 삶에 대한 배움이며,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로 흐려진 작금의 시대적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기에도 충분한 작품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 느껴야 할 것, 나누어야 할 것들을 ‘권리’라는 단어로 표현함으로써 독자 개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더욱 부각시킨 것도 눈에 띤다.

 

어떤 일을 하거나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권리라 하듯, <공부할 권리>에서는 세상 풍파 속 개인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람다움의 가치를 진정으로 누리길 권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공부가 나를 지켜 주는 것은 내가 자존감을 잃어 갈 때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일까? 누군가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걸까? 스스로 질문하며 괴로워할 때마다, ‘공부하는 나’는 조금씩 다른 해답을 내놓습니다.

- p.7

 

그리고 그 유형으로 슬퍼할, 사랑할, 고독할, 나약할, 분노할 권리 등을 제시한다. 각 상황에 적절한 권리를 다학문(多學文)의 예시들로 표현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책을 통한 배움, 인문, 고전, 철학 등의 서적이 왜 중요한 것인지를 몸소 체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배움에 우리에 삶,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권리의 시작, 배움의 시작은 곧 나를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 방법을 무의식에서 찾고 있다. 최근 유행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과는 대비되는 부분이기에 접목해서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현실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가 아니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까지 살펴보는 것인가를 생각하고 질문해보는 것이다. 저자는 현실에 길들어 버린 고정적 시각이 아닌 무의식 세계에서의 긍정적 상상과 시각을 갖길 권하고 있다. 자기충족예언으로 상상을 이루고 곧 무의식이 현실로 나타나듯이 말이다.

 

인간은 자기가 상상한 모습대로 되고, 인간은 자기가 상상한 바로 그 사람이다. - 파라셀수스

 

권리의 공통적인 부분은 ‘용기’와 관련되어 있었다. 저자가 예로 든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무릎을 꿇는 장면이 묘사된다. 자식을 죽인 사람의 앞에 무릎까지 꿇고 간청하는 왕의 이야기, 왕으로써의 모든 체면까지 내려놓는 아버지의 모습에 그를 포용하고 전쟁의 중단을 선언한 아킬레우스. 그 둘의 모습은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와 인간다움, 사랑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절실히 보여준다

 

용기는 꼭 창을 들고 앞으로 나서서 적군을 찌른느 식의 육체적 행위가 아님을 프리아모스는 몸소 보여줍니다. 그의 용기는 자비와 이해, 공감에 뿌리를 둔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지요. 용기의 최고봉은 역시 지극한 사랑이 아닐까요

- p.41

 

한편 ‘슬픔’을 바라보는 시각, 그로부터 배우는 경험들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힐링이 대세가 된 요즘. 우리는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담담하게 마주하기보단 외면하고 피할 때가 많다. 저자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통해 슬픔에 대처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재조명하고 ‘슬퍼할 권리’에 대해 논한다. 그 메시지 안에는 슬픔, 고통으로부터의 귀중한 배움이 담겨 있다.

 

이 모든 권리들은 결국 자신과 온전히 마주한 시간, 혼자만의 고독을 당당히 마주하는 시간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책을 통한 마주함이 그러하고, 무의식 세계의 탐험이 그렇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을 배워나간다. 외적인 경험들도 중요하지만 이렇듯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곧 자신을 알고,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원동력임을 다시금 느껴본다.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통해 전하는 인간다운 삶의 가치는 외적 경험만으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내용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내면의 가치는 우리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나약함과 마주할 때 더욱 분명하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약한 때에야 비로소 저마다의 본성을 더 자세히 보고 느낄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까지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면에 귀기울여야함을 나무에 비유한 저자의 문장이 제법 적절하다.

 

나무는 위로도 자라지만 아래로도 자랍니다. 아니, 아래로 자라야만 위로도 자랄 수 있습니다. 외적인 성장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아래로 자라는 법, 내면으로 자라는 법, 무의식 깊숙이 영혼의 닻을 내리는 법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 p.147

 

세상을 배우고 진정한 ‘나’를 찾는 것, 이를 통해 공동체 사회를 이해하고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 공감을 싹틔우는 힘. 그 힘의 바탕이 인문학에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다. <공부할 권리>는 이렇듯 배움의 권리를 누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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