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죽음이 전국민을 충격에 빠뜨렸고,

도대체 머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는 인종들 몇몇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을 슬픔과 애도에 잠기게 만들었다.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어떻게 살았는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죽음으로 이르렀는가'의 이야기라도 할 수도 있을 터.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기 보다 어떻게 죽을까를 생각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이 책의 제목인 <800만 가지 죽는 방법> 또한 그런 맥락이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뉴욕의 주민들의 수가 800만이고,

범죄율이 높은 도시 답게 매일 살인사건 기사가 끊이지 않는 신문을 보면서

800만개의 죽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는 알코올 중독에 빠진 무면허 탐정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비정하면서도 마초적이고 강인한 캐릭터의 하드보일드와는 달리,

매튜 스커더 탐정은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연약한 심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인간상일 뿐이다.

 

매춘을 그만 두고 싶다며 의뢰를 했던 한 창녀의 죽음.

그리고 연이은 또 다른 죽음에 대한 의뢰.

그 의뢰를 받는 탐정의 자세는 아무 것도 아닌, 단지 경제적인 이유일 뿐이다.

아들의 치과 교정비와 장기 투숙 호텔 요금을 내야 하는 처지..

거액을 제시하는 의뢰인 앞에서도 소심하게 선물로 받은 물건의 반도 안 되는 의뢰비를 부른다.

큰 소리를 쳐서 범인을 유인해 내고서도 죽을까봐 벌벌 떨며 총은 쏴보지도 못하며,

무엇보다 그는 알콜 중독자다.

 

쿨하지 않은, 그야말로 찌든 알콜 중독자로서

끊임없이 술 생각에 시달리는 사람.

며칠 술 생각이 나지 않고 마시지 않아 좋아하더라도

어느 순간 자제력을 잃고 마셔 버려 그것을 부끄러워 하고

병원에서 나오며 죽을까봐 걱정하는 그 모습은,

800만 인구가 사는 뉴욕에서

또 하나는 죽는 방법의 하나를 바로 실천하게 될 까봐 전전긍긍하는 소시민적 모습 그대로이다.

다만, 일반적인 사람들이 죽음보다는 삶을 생각한다면

이전 경찰 근무 시절 많은 죽음을 보았고,

또 자신이 무고한 어린 소녀를 하나의 죽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끝내었던 경험이 있기에

그는 언제나 죽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반적인 미스테리/스릴러와 달리

이 책은 그리하여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며 추리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주는 아닌 것이다.

800만분의 1의 한 소시민이, 탐정이라는 직업을 가졌을 뿐인 이 사람이 사는 과정이 주이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신의 약점..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의 의뢰인에게 (주제넘게도) 삶에 대해 이야기한 후에,

끊임없이 거부해 왔던 알콜 중독에 대한 관념을 인정하고

비로소 죽음이 아닌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울음을 터뜨리는 마지막 장면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