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보는 할배.한수임 그림. 김장성 글. 사계절

이풍진 세상을 다 겪고 다시금 인간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할배가 장식한 표지 그림이 자꾸 시선을 빼앗는다. 할배는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모습으로 들녘에서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향해 천진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흑색으로 명암을 조절해 가며  농촌 가을 풍경과 새 보는 할배 일상을, 농촌 사람들, 힘차게 날아가는 새들, 할배 주변을 맴도는 동물들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한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궂이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그냥 보고 느끼면 그만인 것을

젊은이들은 모두 들판에 나가고 빈 농촌, 강아지만 할배 주변을 맴도는 느릿한 농촌 풍경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도시 아이들에게 우리 삶 터의 모습을 돌려준다.

생을 숨가빠게 달려왔을 할배는 이제 볏짚을 옮기며 마당가에 모이를 찾는 닭들과  저희들끼리 머리를 부비대며 심심함을 달래는 강아지들을 곁에 두고 담뱃대를 꼽아문다.

멀리 보이는 들판은 이전에는 할아버지가 한 생애를 치열하게 보낸 삶터이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울타리 넘어 조밭에서 잔치를 벌이는 참새때이다. 이내 발걸움을 바삐 움직이는 할배, 시선 너른 농촌 화면은 먹색의 명암만으로 농촌을 보여주지만 먹색 그 너머의 푸른 농촌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느티나무 아래 모여  새참을 먹는 마을 사람들 속에 섞인 천서방 손목에 이끌려 탁배기 한잔에 김치 한조각으로 천국을 만난다. 할배와 함께 하는 농촌사람들의 더 없이 푸근하고 넉넉한 표정, 너른들판, 그 들판을 나르는 참새떼들. 삐딱한 밀짚모자, 흥겨움이 넘치는 할배 표정이, 발걸음이 참새떼들 잔치하는 조밭을 향할 때 눈앞에 펼쳐진 넘실대는 조밭은 마음을 꽉 채운다.

할배는 졸움에 겨웁고 새들은 마음껏 조밭에서 잔치를 벌이고 동네 아이들이 와서 새를 후여, 후여어, 새들을 쫓는데, 새들은 화르르 날고, 할배는 깬다. 새들의 힘찬 날갯짓이 역동적이다. 할배의 만족스런 웃음속에 나타나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 기분좋다. 검버섯이 돋고, 머리는 백발에 치아는 듬성듬성한 할배에게서 절로 편안한 웃음이 번진다.

간결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시적 문장들, 한가지 색만으로도 가을 들녘을 마음껏 누비게 하는 그림들, 삶의 끝자락에 와 있으나 한 생애를 보냈을 들녘에서 여전히 아이들의 몫이었던 새보기를 자기 몫의 일로 삼는 할배의 일상이 아득한 그리움처럼 다가온다.

목탄 콘테로 표현한 한가지 색이 주는 놀라운 힘이 힘있게 발휘된 그림책이다. 아이들이 지금당장 농촌의 가을 들녘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할배에게서 자기들 모습을 찾아내며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