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은 가능성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자신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향한 기대 때문이다. 어린이 출판동네에서 새내기 작가들에게 거는 기대도 그중 하나이다.

‘오후 세시 베이커리’는 제목이 주는 신선함이 상투성에서 자유로울 새내기 작가에게 기대를 걸면서 선택한 책이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그려보이고 싶은 절실함이 있고 그것을 그려내기 위해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기꺼이 선택했기 때문에 작가이다. 특히 기존의 룰에서 벗어나 서툴지만 자기만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새내기 작가가, 문단의 호평을 받으며 그려낸 ‘오후 3시 베이커리’라는 제목은 이야기 흐름을 쉽게 예견하게 하면서 상큼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이 책에는 현대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몇몇 가족의 형태를 그려보인다.
첫 번째 가족은 재혼 가정 이야기이다. 주인공 상윤이가 아빠 재혼으로 새엄마와 살기 위해 부산에서 친엄마와 떨어져 함께 살던 할머니와 헤어져 서울로 오면서 시작한다. 상윤이를 마중나온 상윤이 새엄마는 미혼으로 상윤이 아빠와 결혼하여 유기농 빵집 ‘오후 3시 베이커리’을 운영한다.

상윤이 아빠는 직업도 변변치 않다. 이쯤 되면 독자는 상투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저마다 소설을 쓰게 된다. 상윤이와 새엄마와 갈등, 새엄마와 아빠의 갈등, 할머니와 새엄마의 갈등,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윤. 그러나 작가는 이런 뻔한 스토리를 거부한다. 요즘 동화에서 그려지는 새엄마가 콩쥐엄마나 신데렐라 엄마를 뛰어넘은지 오래 되었지만 상윤이가 새엄마와 살아서 생기는 고민은 딱 하나 사람들이 동정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 뿐이라고 할 만큼 상윤이네 가정은 ‘고민이 없어 고민’일정도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상윤이 새엄마는 언제나 밝고 쾌활하며 주관이 뚜렷한 현대 새엄마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치다싶을 만큼 자유로운 사고가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할만큼. 작가의 상투성을 벗어나는 상상력은 아이들에게 새엄마에 대한 긍정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독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도 있겠다. 두 번째는 상윤이가 전학간 학교에서 만난 장훈이네 가정이다. 장훈이는 반에서 덩치도 인기좋다. 이쯤되면 독자는 두 번째 소설을 써야 한다. 상윤이가 장윤이에게 왕따를 당하며 시달림을 받겠구나. 혹은 상윤이가 고민하는 사투리 때문에 놀림을 받으며...어쩌구 하면서 뻔한 상상력을 발휘해 보았지만 작가는 이런 상투성을 비웃듯 비껴간다.. 장훈이는 개그맨이 꿈이라서 사투리를 배우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면서 친구하자면서 손을 내밀고 둘은 친구가 된다.

겉으로 보기에 쾌할하기만 한 장훈이는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견디다 못한 장훈이 엄마가 술만 취하면 가족들에게 심한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몰래 아이들만 데리고 멀리 떠나 새로운 가정을 만든다. 장훈이는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너무좋다’ 하지만 아버지를 버린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별도의 이야기꺼리가 되겠다. 또 한 가정은 오후 3시만 되면 ‘오후 3시 베이커리’에 빵을 사러오는 두 할머니가 있다. 그 중 늘 검은 옷을 입는다고 해서 검은 할머니로 불리는 할머니는 남편과 자식을 떠나서 얼굴색도 머리색도 하얘서 하얀 할머니로 불리는 친구 할머니와 서로 좋아해서 가족을 이루고 살게 된다.

이야기는 버리고 온 자식이나 남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두 할머니에 맞추어져 있다.
이 책은 이렇듯 서로 다른 가족 형태를 이루고 살아가는 몇몇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첫째 상윤이네 가정처럼 갈등이 예견되는데 전혀 갈등이 없는 것은 보는 사람의 편견일까?

재혼 아버지, 새엄마,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친구, 가정을 버리고 동성 친구를 선택한 검은 할머니, 들은 저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편안하고 자유롭다. 물론 나중에 상윤이 친엄마가 상윤이와 같이 살자고 하면서 ‘뿌리’와 ‘씨’를 중시하는 할머니 때문에 집안이 다소 시끄러워지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모습들이 작가가 상투성을 거부하기 위한 장치일지 모르나 일상은 판타지가 아니다. 갈등상황은 치열하게 갈등해야 리얼리티가 산다. 상투성을 벗어난 점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히는 요소로 비쳐지기도 한다. 저마다 입장에서 각각의 가족 모습을 놓고 해야 할 이야기꺼리가 많은 책으로서 의미가 있는 책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