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나 영화에는 으레 빛나는 주인공이 있고 그들의 주변을 맴도는 인물들이 있다. 주인공은 사건을 주도 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주변 인물은 주인공을 보조한다. 허나 장편동화 ‘안녕히 계세요’는 빛나는 주인공이나 들러리가 따로 있지 않다. 그럴듯한 직업을 가졌거나, 돈이 많거나 학식이 많거나 뭐하나 내세울만한 것을 가진 인물이 아무도 없다. 미혼모에 백수에 아빠도 없이 미혼모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가 그저 그렇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동화를 읽어가다 보면 작가 의식에 동의하게 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작가가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듯한 시선이다.

사회는 미혼모라거나 백수라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너그럽지 않다. 웬지 가까이 해서는 안될 인물이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작가 남찬숙은 이런 사람들 하나하나를 당당하게 삶의 주인공으로 빛내주는 미덕을 발휘한다.
진영이 엄마는 미혼모다. 고아원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거리로 뛰쳐나와 아이들 돈을 빼앗아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이렇게 거리를 떠돌다가 열여덟 어린 나이에 처지의 아빠와 만나 진영이를 임신한 ‘불량’ 청소년이었다.
작가는 진영 엄마가 불량청소년이라기보다 사회가 부모가 그들을 잘 보호하지 못한 책임도 있음을 암시한다.
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미혼모와 그 자녀들을 그늘로 숨게 한다. 그러나 진영이 엄마는 세상을 향해 당당하다. 지금은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자랑할 건 아니야, 어쨋거나 난 날라리였어. 보육원도 내 멋대로 뛰쳐나왔고, 거리에서 나쁜짓도 많이 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듣고 온 진영이가 엄마에게 따지듯 대들자 작가는 엄마 입을 빌어 말한다. 사람은 살아가다 보면 어떤 처지도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철모르고 저지른 일에 대해서 도망가기보다, 핑계를 대기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철없는 시간에 함부로 산 것을 만회하는 것이라고. 진영이 엄마의 이런 당당함은 스스로를 삶의 주인으로 빛내고 있다. 미혼모 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에는 진영이네 옥탑방에 살고 있는 옥탑방 아저씨가 있다. 백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법대를 다니다 연극을 하고 싶어서 법대를 그만둔 가난한 연극 배우이다. 진영이도 엄마도 처음에는 이런 아저씨가 못마땅했지만 아저씨 초대를 받고 연극을 보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바뀌어 아저씨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작가는 저마다 어떤 처지에서 살아가든 그들만의 삶이 있고, 그건 그 자체로 소중하고 가치 있음을 힘주어 강조하지도, 날카롭게 비판하지도 않는다.
살다보면 ‘불량’이 되기도 하지만 언제라도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진영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라이벌이었던 동무에게 느끼던 분노가, 혜인이에게 느끼던 사랑이라 여기던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른들이라고 해서 세상사 모든 일에 통달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진영이가 혜인이 마음을 얻기 위해 끙끙대던 것처럼 옥탑방 아저씨도 역시 좋아하는 사람 마음을 얻기 위해 끙끙대는 걸 보면서 일상성의 진실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왕이면 혜인이 아빠처럼 부자이고 멋있는 사람이길 원하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 딸까지 달린 홀아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을 앓는다. 이미 마음이 통하는 옥탑방 아저씨가 아니라서 화가 나기도 하지만 엄마가 좀 더 행복해 지길 바라는 아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영은 휠체어 아저씨의 따듯한 마음과 만나면서 세상은 돈보다도 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부대끼는 동안에 발견하게 되는 신뢰와 믿음이라는 사실도.

이렇듯 이책은 사회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순간수간 온힘을 다해서 살아가는 눈부신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진영이가. 새 아빠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익숙한 사람들과 하나하나 이별을 한다. 마음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혜인이와도, 옥탑방 아저씨와도, 그리고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아빠와도 이별을 한다. 진영이는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면서 성장해 갈 것이다. 삶은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기를 거듭하면서 만나는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의 가치에 눈뜨는 행복을 맛보는 것이다. 이런 행복을 맛보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아주 혹독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작은 가치들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귀중한 진리를 선물로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