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두번째 책. 이번엔 내가 고를 차례였다. 하나 하나 검색해보니 대부분의 책이 상하권으로 나눠져 있고 몇몇 책은 아예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둘다 만족하는 책은 친구가 이미 읽었고. 해서 고르고 골라 한권으로 이루어진 <적절한 균형>을 점찍었다. 쇼핑 리뷰나 블로그에서 이 책에 대한 평이 너무 좋아 큰 확신을 갖고 받았고 그래서 그런지 한권이라지만 한권이 아닌 입이 떡 벌어지는 방대한 양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한손에 잡아도 흘러나갈 것 같은 부담스런 묵직함이었지만 아마 겉표지와 글체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읽기도 전에 작가는 다른 작가의 대사를 빌려 독자에게 경고를 한다.

	이 책을 손에 들고 부드러운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으면서 당신은 혼잣말로 이 책이 재미나겠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엄청난 불행에 관한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도 당신은 식사를 잘 할 것이고 본인의 무감동에 대해서 작가를 탓하고 그의 지난친 과장과 상상의 비약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어주십시오. 이 비극은 허구가 아니라 모두 진실입니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중에서

인도 사람이 쓴 인도 이야기이라지만 아무래도 장르가 소설인 점도 있고 했는데 마침 몇달 전 인도 여행을 끝마친, 자주 방문하는 여행 블로거가 업데이트한 사진과 이야기들을 보고 그제야 실감이 났다. 기찻길을 화장실 삼아 살고 있는 빈민촌 사람들, 카스트라는 제도로 인해 무고하게 목숨을 잃거나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 어마어마한 인적 자원과 IT 강국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지 않는 법제도와 폐해들.

불교의 꽃을 처음 피운 곳. 한번 다녀온 사람들은 극명하게 그 반응이 갈린다는-오랫동안 더 머물고 싶거나 다신 오고 싶지 않거나- 곳. 무엇인지 딱히 말할 순 없어도 오묘한 매력을 풍기는 곳. 마음의 안식을 찾고 싶은 곳. 그런 인도였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여행보다는 모험을 해야할 것 같은 두려움이 커졌다. 이 같은 생각들이 대수롭지 않은 걸 수도 있다. 마치 외국인이 한 한국 소설가의 작품을 읽고 갖게 되는 선입견처럼.

결말도 그렇고 경고도 그렇고 사실 눈시울을 붉힌 것도 있었고 다른 작가들의 추천사들도 그랬지만 그러나 그렇게까지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거나 나쁘지만은 않았다. 도리어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고 책 표지를 덮었을 땐 아-하고 개운하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슬프지만 영혼이 남아있다면 조금은 덜 아쉬울 것 같기에-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아마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몇몇을 제외하곤 작가가 제시한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디나, 러스텀, 옴프라카시, 이시바, 아시라프, 마넥 콜라, 아반, 샨카, 거지 왕초, 파록, 아비나시, 둑히, 나라얀…

그가 말하려한 적절한 균형이란 힘든 현실 속에서 절망을 안고 가는 만큼 딱 그만큼의 희망도 품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치 최빈국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행복지수는 가장 높다고 한 기사를 읽었을 때처럼. 소소한 일상을 기적같이, 뜬구름 잡는 어려운 바램같이 살고 여기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그도 아니라면, 그래, 이 장대한 문장들은 다 집어치우고 소설 속 화자들로 인해 느끼는 나의 상대적인 행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되려 이 책을 읽으면서 힘들었던 건 따로 있었다. 솔직히 이야기가 끊길 정도로 어려운 단어들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이런걸까?하고 추측하고 넘어가기에는 궁금한 것들이 많아 하나씩 찾아보니 내가 사회에 대해 모르긴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포스트잇으로 표시하니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책 옆면이 색종이뭉치로 뒤덮였다. 그런 것이 한 단어를 찾으면 그 단어를 설명하는 문장에 또 모르는 단어가 있고 그 단어를 찾으니 또 모르는 단어... 연쇄적으로 무지막지한 지식이 한꺼번에 몰려와 정리까지 해야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정리한 단어보다 찾아보지 못한 단어가 더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