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에 호기심을 품고 있던 친구의 제안으로 꾸준히 책을 읽고 이야기도 나누어보자며 첫번째 읽기로 한 책이 바로 <더 로드>. 구매하려고 리뷰를 살펴보니 어두운 내용의 소설인데다 그 평이 극과 극을 달려 혹여나 친구의 게으름에 약속이 흐지부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매를 미뤄왔다. 그러다 <다 읽었어?>라며 보낸 문자에 <앞부분 초큼 읽었어. 너 다 읽었구나?>라고 오길래 아차 싶어 급히 주문, 앞표지를 폈다.

신선함을 위해 영화에서 이런 뚱딴지 같은 시작을 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독자가 모르는 상태에서 설명도 없이 무작정 주인공의 행동만 주시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 왜 주인공이 저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배경을 알아서 머리로 그려야 한다. 근데 한참이나 읽어도 그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 굉장히 천천히, 그리고 세심하게 묘사되어있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들의 일상-그러나 그와 아들의 이름은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으로 사건의 단서를 찾듯 지금 그들이 처한 환경을 추측해야 한다.

세상의 종말에 대한 소설이란 얘기는 익히 들었으나 도대체 어떻게, 무슨 일로 이 지경이 됐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건조한 책장을 한장한장 넘기며 그 사실은 잊게 되고 점점 겉치레보다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이런 세상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과거 아득한 날에 짧은 순간이나마 느껴봤던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대화가 무기력하게 끝날 때마다 텅-하고 여백이 많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술술 넘어가 흡수가 빠르기도 했지만 단순한 여백이 아닌지라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건가?’하는 생각이 강해졌다. 한줄 한줄이 소설이라기보단 실화인양 마치 보고 겪은 것 같이 자세히 표현했고 걸어가고 있는 길이며 다 쓰러져가는 집 하나를 써내려가도 그 수식어가 식상하지 않아 상상하기가 재미있었다. 어떻게 이런 말을 썼지? 외국소설에는 간혹 나오는 표현일까? 싶기도 하고. 긴박한 순간도 있고 해서 마치 영화를 한편 본 듯한 느낌도 든다. 안그래도 책을 검색하며 알게 된, 올초 개봉된 이 영화의 예고편도 챙겨봤다. 어떠한 영화도 소설만치 만들기 어렵기에 이제껏 내가 읽어온 내용이 화면으로 어떻게 구성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기회가 되면 이것도 챙겨봐야지.

뒷표지에 책장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결말이 궁금해져야 하는게 당연한데 이책은 그렇지 않았다. 왠지 남은 책장 이정도 두께라면 더이상의 진전을 보이기에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전체 줄거리상 큰 갈등이나 굴곡이 있던 것도 아니라 끝을 짜맞추거나 예상하기 쉽지 않아 어느 정도 포기하며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포기란 다른 한편으론 기대가 크지 않으니 실망도 크지 않고 그만큼 어떠한 결말이 와도 나에겐 만족스러울 것이다. 또 결말에 연연하지 않으니 이야기 전개 과정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그보다 그들의 손짓 하나하나와 툭 내뱉는 말, 단어들이 더욱 신경이 쓰였다.

죽음에 대해 생각이 많던 요즘 바쁜 와중에 읽어 토막토막 읽어내려갔지만 그래서 더 와닿기도 했고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 책 때문에. 친구의 상투적인, 스쳐지나가는 위로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오는 거나 가만히 집에서 생각해보니 큰 안도감이 들면서 체기가 사라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