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 중 책을 읽는 도중에 모르면 더 재미있을 반전이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p.106

아무도 입조차 열지 못하고 있었지만, 잠시 후 오소데는 마음을 다잡고 얼굴을 들었다.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진 까닭도, 본래 그리 튼튼한 몸이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자 몸으로 절 키우기 위해 무리를 해왔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 아, 아니요."

오소데는 흠칫하며 말을 고쳤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어머니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렇게 생각해요."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에서 프로이트가 실수행위에 대하여 설명하는 부분에서, 프로이트도 직접 극작가들이 실수행위를 자신의 글에 어떻게 삽입시키는지 예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실수행위는 인간의 생리적인 이유만으로 설명되거나 단순한 사건으로 끝날 수 없는 인간의 행위이다. 사람은 자신이 정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특정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방해하는 의지 또한 가지고 있고 두 경향성의 경쟁과 충돌, 인간 정신의 다양한 힘들이 경합한 결과로써 실수가 발생한다. 잘못 말하는 실수는 전혀 다른 말을 하거나 반대되는 말, 발음이나 문법적으로 틀린말을 한 것이라고 설명된 것에 비하면 오소데의 실수는 아주 정직하고 그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 실수..

p.122

세이키치는 어둡게 웃으며 눈을 피한 채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 무렵의 저는 도박을 하고 술을 퍼마시며, 아내가 일해서 번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여자를 사곤 하던 남자였습니다." (..) "저는 옛날, 오소데가 여덟 살 때 빚 대신 그 아이를 유녀로 팔아 넘기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덟 살짜리 아이를요. 그런 짓을 하는 놈은 미움을 받아 마땅하지 않습니까." (..)

"가만히 있으면 좋을 것을, 돌아온 아버지는 딸이 있는 곳을 물어물어 만나러 왔지."

그러고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오소데는 저를 알아봐 주었습니다. 제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몸이 떨릴 만큼 기뻤어요." "하지만 제 얼굴을 알아본 순간, 오소데는 귀신을 본 것처럼 창백해지고 말았습니다.." "그건 알고 있었어요. 대장님, 저는.. 저는 정말로 그냥 한 번 오소데를 만나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것을 위해 오소데를 찾아다닌 거에요."

* 마음이 짠해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안 오소데가 나중에 한 행동까지 고려해보면 더욱 감동스러워지는 부분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봐도, 아무리 도박을 하고 술을 마셔도 그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피할 수 없는 것은 자식에 대한 죄책감인 것 같다. ？告？? 어째서 부모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자식에게만큼은 절대적인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p. 148

"축제 음악."

화내고 있는 오요시 너머로 화난 듯한 저녁노을이 퍼져가기 시작했다. 저녁노을에게 들려주듯이 그녀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모두 축제 음악이야."

오토시는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어깨 너머로 슬쩍 보니 오요시는 아직도 당당히 서 있었다.

"모-두 알고 있어." 그 여자는 다시 한 번 말했다.

(..)

'축제 음악'이란 혼조의 일곱 가지 불가사의 중 하나다. 밤중에 문득 깨어나보면 어디에선가 북이며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멀리서 들리는가 하면 가까워지고, 가까운가 하면 멀어진다. 아무리 해도 장소를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아도 밤중에 그런 음악을 연주한 집이라곤 없다. 그런 이야기다.

오요시의 '남자는 모두 축제 음악이야.'라는 말에 오토시는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을 놀리는 것 같은 즐거운 음악소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사랑하는 상대와 똑같다고.

오요시도 그것 때문에 괴로운 기분을 맛 본 적이 있는지 모른다.

* 훌륭한 은유, 훌륭한 해석이다.

p.194

"정말이라고 하더구나." "이타바시 여관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나쁜 추억이, 언제나 뒤에서 쫓아오는 기분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제 이런 짓은 그만두자, 돈은 이미 충분히 벌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더러운 발을 계속 씻는 꿈을 꾸면 돈이 갖고 싶어서, 가난이 두려워서 참을 수 없게 되었다는구나."

씻어라- 씻어라- 씻어라-

위협하듯이 커다란 목소리와 천장을 뚫고 내려오는 발.

오시즈 씨. 어머니. 당신은 가엾은 사람이에요. 오미요는 생각했다. 하지만요, 당신은 당신의 더러운 발로 아버지와 내 마음을 짓밟았어요. 그런 당신의 더러운 발은 누가 씻어줄까요.

"이제 잊으렴." 모시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부엌 쪽에서 젊은 하녀를 야단치는 오카쓰의 기운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정신을 빼앗겨 문득 시선을 든 오미요는, 조베에도 똑같이 오카쓰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빨리 그 무를 씻어 놔!"

오카쓰는 고함치고 있었다. 조베에와 오미요는 오랜만에 눈과 눈을 마주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 "이제 잊으렴." 모시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에서 끝냈어도 될 것 같았다. 아니면 그 전에 더러운 발은 누가 씻어줄까요, 에서 끝냈어도 크게 무리는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뒤에 오카쓰가 "무를 씻어 놔!"라고 소리치는 부분을 더한 이유가 뭘까? 아직까지 알쏭달쏭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p.200

아버지는 부처님처럼 착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부처님을 따라 냉큼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잘된 일 아닌가. 그런 사람이 가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처님이 되는 정도다.

그래서 오유는 남자 보는 눈이 엄격해졌다. 어지간해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성의 성벽이라고, 오유는 생각했다. 나를 붙들려면 아주 깊고 차가운 해자를 넘어와야 해.

이 사쿠라야에 오는 손님들은 모두 에도에서 바쁘게 일하는 남자들뿐이기 때문에, 때로는 오유에게 슬쩍 좋은 말을 던져 오거나 하는 사람도 있다. 한 번 정중하게 연서를 건네온 손님에게는 웃고 말았다. 니혼바시 도리초의 담뱃가게 행수인가 하는 사람으로, 고지식해 보이는 가느다란 눈과 긴 코를 갖고 있었던가. 오유가, '저는 읽고 쓰기라곤 할 줄 몰라요.' 그렇게 말하자 귀까지 빨개지더나 천천히 파랗게 질렸다. 오유 때문에 얼굴을 붉혔다기보다는 까막눈인 여자에게 반한 사실이 부끄러웠기 때문인 것 같다고, 오유는 생각했다.

남자란 모두 그런 법이다.

230

어느 메밀국수 가게의 사방등 불은 비가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언제나 똑같이 타오르며 꺼지는 모습을 아무도 본 적이 없다. 또 기름을 채우는 모습도 볼 수 없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오유 씨, 나는 '오스즈 아가씨가 살아있다'고 ？굔？ 것이 마님에게는 '꺼지지 않는 사방등'이 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살아가기 위한, 발밑을 비추기 위한 사방등이." (..) "십년 전의 그날, 마님은 아가씨께 어쩐지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니 오늘은 하치만구에 가지 말라고 말렸네. 하지만 친척 분들은 하치만구의 제례를 기대하고 있었고, 아가씨도 물론 가고 싶어 했어. 그래서 나리가 마님을 달래 아가씨와 친척들을 보낸 걸세. 마님 입장에서는 그 때 더 강하게 말렸다면 오스즈를 죽게 하지 않았을 거라는, 아무리 후회해도 모자란 기분이 드셨을 걸세." (..) "그러니 마님이 '오스즈는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직 그것에만 필사적으로 매달려 계시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네."

오스즈는 살아있다. 거문고를 배우고 꽂꽂이를 하고, 장래에는 이 집안을 물려받을 것이다-.

마음 속의 꺼지지 않는 사방등인가, 오유는 생각했다. 그것을, 어쩌면 꿈이나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 미야베 미유키씨의 소설을 읽으면서 

사람이 죽은 뒤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쩐지 많이 배우게 된 것 같다.

어떤 시점에서는 매우 기괴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일도

모두 이해가 가능하다는, 모든 것에는 맥락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