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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인들은 종이가 아니라 나무를 깎아서 지도를 쓴다고 한다. ....< 중략>.... 에스키모인들에게는 '훌륭한 ' 이라는 단어가 필요없다고, 모든 존재의 목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훌륭하게 존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는.....
**이기호의 <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달력에서 하루가 없어지는 느낌, 가습기가 뿜어내는 수증기처럼 영혼도 조금씩조금씩 보이지 않게 증발하는 것 같다.
" 그럼 비밀을 가르쳐 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잘 기억해두기 위해서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서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잘 기억해두기 위해서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 여우가 말했다. " 하지만 넌 그걸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너는 영원히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
" 나는 내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해두기 위해서 어린 왕자가 되내었다.
바로 이 부분을 , 나와 내 친구들은 어린시절 같이 읽으며 어린 왕자가 여우의 말을 따라하듯 되뇌었다. 그리고 세뇌되었다. 내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건 내가 소비한 ' 시간 ' 때문이라고 내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나는 '영원히 ' 책임이 있다고.
........< 중략>... 물론 좋은 말이다.......누군가와 청춘의 한자락을 함께 보냈다고 해서....그게 아까워서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게 바로 매몰 비용의 함정. 매몰비용에 대한 집착이다.
얼마 안남은 치약튜브를 쥐어짜 쓰다 보면 오늘이 마지막 같은 날이 있다. '오늘 짜낸 이게 마지막이겠군. 하긴 그 만큼 쥐어짰으니 이제 더 나올 것도 없을 거야.'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방향을 바꿔 한번 더 짜면 또 나온다.......< 중략 >... ' 아닌 관계' 도 이런 치약 같은 게 아닐까? 억지로 노력하고, 쥐어짜고 또 참으면 관계가 한동안은 유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가 됐든 그 관계는 결국 끝난다. 꼭 남녀사이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이런 관계들이 있는 것 같다.
***버트 베커랙(Burt Bacharach )의 " A House is not a Home "
** 세상에서 죽어라 해도 어떻게 안되는 게 뭔 줄 알아? 누군가에게 가는 마음이야. 더 죽어라 애써도 안 되는게 뭔 줄 알아? 누군가에게 가서 오지 않는 마음이야. 혹시나 혹시나 했던 마음까지 다 뽀개버리니 이제 속시원하냐, 이 나쁜 놈아!
*** 연애란 게 이런거다. 밀고 다이고, 고백도 주고받고, 더러 이벤트가 있기도 하지만, 연애도 결국은 일상이다. 생활인으로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 서로의 일상을 걱정하고 챙겨주는 것, 서로의 일상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그래서 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일상이 되는 것. 매일 먹는 밥처럼, 매일 쓰는 핸드폰이나 노트북처럼, 상대방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 그런 게 , 연애다. 그래서 불륜이 괴로운 거다. 사랑하는 사람의 일상이아닌 비밀이 되어야 하니까. 일상을 나누는 그 소소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니까.
프랑스의 소설가 안나 가발다(Anna Gavald)의 <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는 떠난 남자와 버림 받은 여자, 떠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떠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낸 남자의 이야기다.
아무리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도 혈액의 90퍼센트가 물이듯이. 인생의 90퍼센트는 별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들로 채워진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 수 있는 거다. 특별한 일들을 기억하고, 힘들었던 일들을 잊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또다시 특별한 일들을 기다리면서..... P 87
오히려 불쑥불쑥 찾아오는 슬럼프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준 책은 정미경의 단편소설 < 밤이여, 나뉘어라> 다. 이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은 백야가 계속되는 노르웨이 오슬로 근교의 '운자 크레보'라는 작은 마을의 여름이다.
밤새 어둠이 오지 않는 , 하얀 밤이 계속되는 백야, 예전에 영화에서 보고 상상할 때는 참 신기하고 멋있을것 같았는데, 몇 년 전 함부르크에서 직접 겪은 백야는 신기하기보다는 공포스러웠다. 독일인 친구들과 야외카폐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날이 밝은데도 이상하게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었다. 뭔가 섬뜩하고 비현실적이었다. 하늘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거나 들뜨지 않는 화장을 한 여자의 얼굴처럼 뽀송뽀송하고 투명하기만 한데 , 노천광장을 가득 매운 사람들은 하나 둘 지쳐갔다. P 89
** 김도연의 단편 <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은 8년만에 다시 만난 연인의 , 리얼하다 못해 구질구질하고 너덜너덜한 재회를 보여준다.
** '가을 방학' <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 취미는 사랑>, < 곳에 따라 비>, 좋은 노래가 정말 많지만 ,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 속아도 꿈결>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하며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 봉별기>라는 이상의 소설 제목이 노래에서 톡 튀어나왔다. 처음엔 잘못 들었는 줄 알았다. 더 놀라운건 후렴구였다. < 봉별기>의 마지막 장에서 기생금홍이 헤어진 남자를 만나 은수저로 소반을 딱딱 치며 부르는 구슬픈 창가를 산뜻한 후렴구로 만들어 귀여운 목소리로 노래했다.
산책길을 떠남에 으뜸가는 순간은
멋진 책을 읽다 맨 끝장을 덮는 그때.
인생에 속은 채 인생을 속인 채 계절의 힘에 놀란 채
밤낮도 잊은 채 지갑도 잊은 채 짝 안 맞는 양말로,
산책길을 떠남에 으뜸가는 순간은
멋진 책을 읽다 맨 끝장을 덮는 그때.
이를테면 < 봉별기>의 마지막 장 처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버려라.
***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지면서 전세계적 베스트셀러로 돌풍을 일으킨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자서전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보면 그녀의 그 모든 변화의 시작은 바로, 이탈리아를 배운거였다. 그녀의 일과 이탈리어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냥 좋아서, 배워보고 싶어서 삶의 절망 속에서 이탈리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그 모든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 영화를 안봐서 영화의 설정은 모르겠는데, 뉴욕에서 먼저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그 매력에 빠진 나머지 이탈리아로 떠난다)
*** 최민석의 < 쿨한 여자>를 읽으면서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생뚱 맞은 동지의식 또는 안도감을 느꼈다.아마도 나의 서성가림은....SNS시대의 이별의식? 이별한 누구나 거쳐가는 통과의례? 그 옛날 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그리워했던 처녀, 총각의 시대에도, 오늘날 SNS의 시대에도, 이별을 치유하는 건 시간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방문횟수가 줄고 점차 서로를 의식하지 않게 된다.점점, 바람 없는 강에 나룻배가 지나가듯이 천천히, 그렇게 멀어져 간다.
그는 더 이상 , 음식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쓸데없이 명랑한 척하지 않는다.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의식해서 글을 쓰지도 사진도 올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 간다.
끈적거리지 않고, 쿨~하게 , 빛의 속도로 이별했지만 실제로 이별을 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자꾸 서로의 온라인공간을 찾아가 서성이게 된다. 스토킹을 하듯이 매일 들락거리면서, 몇 줄 안되는 글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 이리저리 해석하면서,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의 출렁임에 멀미를 하면서....그렇게 나를 포함한 SNS 시대의 수많은 남녀는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낸시의 경우는 후자 속하는 것 같다. 자신의 기억을 사랑하기에. 잠자고 있던 기억을 환기시켜준 도널드는 다정하게 맞이했지만, 그 기억을 망가뜨리는 도널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지은의 노래 <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 의 가사처럼. '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단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날 바라보는 게 아니고 날 바라보고 있단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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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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