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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아름다운 병 >
아프니?
안녕 눈동자여, 은빛 그림자여, 사연이여
병이 깊구나
얼마나 오랫동안 속으로 노래를 불러
네가 없는 허무를 메웠던지
그런
너의 병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어떤 무늬인지 읽지 않았으니
아무 마음 일어날 줄 모르는데
얼마나 많은 호흡들이 숨죽이고 있는지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압력
휘청, 발목이 잘려나간 것처럼
한없이 무너지고 싶다
밥 먹어
너의 아름다운 병도 밥을 먹어야지
별다방 아가씨가 배달 스쿠터를 타고
전화번호가 적힌 깃발을 휘날리며 지나간다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참혹한 욕망이 문지방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돌아가자
너의 아름다운 병을
검은 아스팔트까지 바래다주려 간다
가면, 오래오래 흐린 강 마을에서
집의 창을 만지는 먼지들과 살 너와
돌아서면 까맣게 잊고
이미 죽은 나무에 물을 뿌릴 나는
거리위 - 독주에 취해 더 깊은 병을 볼 거면서
먼 길로
일부러 먼 길로
너의 아름다운 병을
오래오래 배웅한다
<Jabir, Geber,gibberish, 미친 이론가 >
이 뻔한 비유들-
(가끔 거울을 보면 내 전 생애의 얼굴이 보인다)
거울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는 시들지 않는 정원에서 홀로 시들어간다
비인간적인 것들을 노래하며
하나를 말하지 않기 위해 불만에 찬 당나귀처럼 쉴 새없이 떠들어댔다
구름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물의 날들을 머금고 있는 것일까?
지겨운 상징들을-
단 한 번 만이라도
이 세계를 명징하게 바라볼 수 만 있다면
(나는 거울에 침을 뱉으며 잔인하게 나를 살해했다)
아, 나무는 어디 가고 여기는 왜 그늘만 우거졌을까
나는 새로운 욕망에 사로잡힌 거지
순간 속에서 찰나에 취해
정원에는 사철 꽃이 만발했으나
일기 속에 나무들은 그냥 먼 길 같다
나는 왜 아무것도 기억 할 수 없는 걸까?
나는 홀로 부패의 길을 걸어 지하의 정원에서 잔다
죽은 장미는 어디에서 피어나는가?
불멸을 피해 시들어가는
돌아오는 길인데도
이 길은 늘 처음 가보는 길이다
(설레며 다가서게 하는
어두운 솔 한가운데- 거기는 흐린 오후다)
누벽에 기대어, 진부한 이름들을 신중히 받아 적으며
내 주머니에서 먼 바다의 해류가 만져진다
처음과 끝이 없는 외길의 미궁에서
대왕 문어가 심해에서 낙심한다
아주 태연하게
나는 경악에 찬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끓고 있는 검은 솥단지에는
그 밖에 또 무엇이 들어 있나?
하나를 말하지 않기 위해서
그 하나를 말하기 위해
어항속에서 투병 중인(물고기)
너의 잠 속은 이렇게
(고요하구나)
< 꽃들은 세상을 버리고 >
목련화 그늘 아래서 아니면, 인적이 끊긴 광화문쯤의
오피스 환기구였는지도 몰라
그대와 나라고, 하면은 금방 아닌 것 같은 그대들
술잔에 붉은 입술을 찍어
어린애 손바닥만한 꽃의 육질을 열어
좋은 안주로 삼았었지
그대는 '깜찍이 소다'를 마시고
짐짓 취한 척
성냥을 건네주던 그대의 손을 혹은, 라이터
스치며 지는 꽃잎처럼, 흐르던 穀雨
淸明도 지나고 雨水는 이미 오래전 일
그날 잊지 않으려
마음속으로만 무수히 되뇌던 시를
취한 듯, 꿈인 듯, 끝내 적어두지 못해
다시는 꽃이 진 나무 아래를 찾지 못하는 冬至
小雪과 大雪 동안은 놀고
가장 긴 밤에 나는 하염없이
잠든 나무의 이름을 찾아 헤매었지 잠든나무?
(우리는 누구나 서로의 슬픈 미래를 본 적이 있다)
단오에는 내가
어떤 향기로 그대의 머리를 감겨주었던가?
바람이 꽃잎을 날리던 立夏와 小滿사이
白露와 霜降의 햇빛도
소용없이 빈 마당에 떨어지는 가좌아파트 베란다
꽃들은 세상을 버리고
봄을 잊은 나무는 괴롭게
저절로 깊은 세상을 열어두겠지
< 天上列次分野地圖 >
영랑호에서 낚시를 한다
나는 사람이 호수에 빠져 죽으면 조개가 그 살을 먹고
자신의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물조개는 먹지 않았다
영랑호에서 낚시를 한다
물풀들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조용한 바람을 타고 번져가는 들풀처럼
부드럽게 휘감아오는 저 죽음의 춤
아직도 내가 은근한 부름에 소스라차게 놀래는 건 그 때문이다
영랑호에서 낚시를 한다
그러다 밤이 깊으면, 東宮靑龍七宿를 타고 三垣28 수를 여행한다
자미성으로 칠살성의 악함을 제압시키고, 거문성의 폭력성을 잠재운다
내가 영랑호에서 낚시를 하는 이유는
간절히 고래고기가 먹고 싶기 때문이다
봉황은 미끼만 따먹고, 남쪽 하늘로 날아가고
큰 암소가 거북의 껍질을 쓰고 나타났다
나는 영랑호에서 민물낚시를 하며, 이게 무슨 뜻인가
생각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태양성과 타라성이 같이 입질을 하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매년 동지의 밤마다
누군가 노새를 끌고 영랑호에 와서
환생을 일고 가는 것은, 좀더 이상한 일이다
나는 영랑호에서 낚시를 던져놓고
식구들이 걱정하는 하는 줄도 모르고 노래 부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낚싯대가 썩어 있고
기다리는 짐승이 왔지만 누군지 알지 못한 채
비늘 한 장만 달라, 수수께끼처럼 남겨져 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식구들이 내 새끼, 저 새끼 한다
비늘의 첫 페이지를 연다
< 聖者는 맛있다 >
히말라야에 가면
하시시를 피우며 깨달은 체하는 聖者가 있다
이들에게 도를 물으면
하시시를 권한다
나는 이 聖者들을 데리고 외옹치 바다로 갔다
오징어 덕장이 있는 해변에서 소주를 마시며
동해의 파도들이 달려와 가장 먼저 부서지는
외웅치의 절벽 위에서 놀았다
한 聖者가 기타를 치는데
거의 절정이다
바로크적인 장식음들이 빛과 한 현을 이루더니
나중에는 바다에 모핑했다
파도가 聖者를 이고
아오모리 해변으로 오호츠크 해로 떠났다
우리는 발을 구르며 기뻐 날뛰었다
거울을 깨서 서로의 몸에
'아름다운 신의 이름으로 '라고 적어주었다
한 수피는 '등대'라고 새겼다
절벽 위에는 별빛도 일찍 내려와
젖은 수염에서 반짝였으므로
아무도 목마르지 않았다
땀과 빛의 육체를 걸고
우리는 서로의 먹이가 되었다
聖者는 맛있다
* 지하도의 광인 - 시청 앞 지하도를 걷고 있는데 한 광인이 "하나님은 명령이고 계시이지 니네들이 연구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나는 그 별안간의 소리를 듣고 문답을 나누는 걸인들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 그 이후로 늘 지하도의 광인에게 청해서 들었다. 그는 성서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으며 말씀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易과 물리에도 밝아 야훼의 분노를 증명하는데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불현듯 내 이름을 물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내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고, 그러자 광인은 신에게 생의 마지막 자비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외옹치 바닷가에 데리고 가서 절벽 밑으로 밀어 죽었다.
< 목련나무의 기억 >
아무도 그 나무의 만발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다
잠시 동안의 그늘은
꽃을 본 늙은이, 이미 한 시절 다 보내버리
(性을 알 수 없는 노파의 것이므로)
꽃은 향기를 거두고, 이제 매미가 울게 하라
도취와 광란의 숲으로
애야, 풍금을 가져오너라
네가 꽃을 보았으면
이 노래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빈 의자는 생각한다
언젠가, 우리가 돌아가야 할 먼 미래에
의자에 앉아 잠들어 있을
자신의 모자에 파묻힌 늙은이
그 갓 태어난 시뻘건 늙은이에게
어떤 노래를 지어 바쳐야 할지
그리고 나뭇잎 사이에서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던 아이가
바람은 어디서 데려오지요?
하고 , 묻는다
하는, 모습이 아주 우습다
그 길 모퉁이를 돌아 올라가면
일곱 계단 위로 낡은 의자가 보일 것이고
담배를 피우는 아이가 물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나무를 알지 못했다
미래로 돌아가는 길
밤꽃 하얗게 핀 나무는 늙었다
< 거꾸로 서 있는 마을 >
밤을 바라보는 눈은 아름답다
아무 곳도 응시 하지 않는 막막함
어찌해야 할까, 나는 어찌해야 할까?
저 나무를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내 눈은
어두운 목소리- 나는 아주 처음 듣는 낯선 가락을
흥얼거리며 부르고는,
어디서 온 곡조인지 나도 몰라 하는구나
너도 먹는 괴로움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별들의 노래
빛은 아름다워라
물속에는 처음 보는 잠이 있으니
흉몽인지, 길몽인지
모든 길들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줄 아는 천형을 새기고
지상의 나무들은 땅속을 만지고 있지
더듬어 지하의 수맥에
손을 씻고 있네 저 나무들
빛과 그림자의 계절
자그만한 비밀이라도 , 아는 자는 슬프리
땅이 스스로 자신의 말을 덮듯이
집은 언제나 안개에 덮여 있네
< 해변 여관 >
해당화와,
해변에 버려진 떡과 명태 눈깔에 대한 숭배
나는 향과 불에 취해, 푸른 발자국 사이에 젖어
붉은 살 송어처럼 노래 부르고 있다
온몸이 귀가 되어
너를 향해 열려 있는 이 하루 종일
저 바다, 미망을 딛고 넘어오는
설픈 그리움 하나 없는 오랜 항해
너는 해당화, 붉은 해당화와,
사라져버린 너의 샛노란 축제
바람의 길이여, 부디
이 푸르름 속에 나타내어라
온갖 잡종과 교배의 방식을 숭배하는
내 귀는 아직도
심연에서 웅크린 채 다시 떠다니고 있으니
없는 길을 보여다오
나의 푸르른 누벽에 새겨진 목쉰 향내와
모든 환각의 존재를
그리고
너의 끝없는 몸을 더듬을 수 있게
* 何如歌 - 어렸을 때 옆집에 양키를 닮은 또래 애가 있었다. 동네 친구들은 그 애가 양키와 교접해서 낳은 애라고 수근거렸고,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그 애는 자기 엄마를 닮아 있었다. 엄마가 양키처럼 생겼다. 우리는 그 애를 튀기라고 불렀다. 우리가 튀기라고 부르면 그 애는 울면서 우리에게 돌을 던졌다. 튀기는 놀림이었고, 멸시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주변을 돌아보면 온통 튀기 아닌것이 없다. 하이브리드한 세계. 나는 이것을 탐구했다. 그래서 때로는 내 시가 세계보다 더 하이브리드했다. 만수산 드렁칡 같은, 얼크렁 설크렁 섞여 있는 것들.
< 벚꽃 핀 술잔 >
마셔, 너 같은 넌 처음 봐
이년아 치마 좀 내리고, 말끝마다
그렇지 않아요? 라는 말 좀 그만 해
내가 왜 화대 내고 네년 시중을 들어야 하는지
나도 한 시름 덜려고 와서는 이게 무슨 봉변이야
미친년
나도 생이 슬퍼서 우는 놈이야
니가 작부ㄴ지 내가 작부ㄴ지
술이나 쳐봐, 아까부터 자꾸 흐드려진 꽃잎만 술잔에 그득해
귀찮아 죽겠어, 입가에 묻은 꽃잎이나 털고 말해
아무 아픔도 없이 우리 그냥 위만 버렸으면
꽃 다 지면 툭툭 털고 일어나게
니는 니가 좀 따라 마셔
잔 비면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지 말고
술보다 독한 게 인생이라고?
뽕짝같은 소리하고 앉아 있네
술이나 쳐
또 봄이잖니
< 단장 >
먼지들에게 色을 칠해주었다
먼지들은 너무 수줍어 다가가면 가볍게 피하기만 해
꼼꼼한 입자들을 섬세하게 세어가기도 하며
그러다가 아무 아쉬움 없이 數를 잊고 같은 먼지에게 세번씩이나
다른 色을 입히기도 했다
그러니가 방 안이 온통 무지개다
푸른색 먼지들이 장롱 밑에 쌓여 있고
모서리마다 보랏빛 먼지들이 먼저 한시름 놓고 있다
아, 그대의 노란 속눈썹이.....
오래 먹지 않은 빵에 푸른색 곰팡이가 더없이 먹음직스러워
우리는 금방 늙어버렸으나
이상한 늙음을 즐거워했다
아름다운 폐허가 총천연색으로 피어 있는 그대와 나의 방
잠든 그대 콧속에 노란 유채 들판으로
무지개가 강에 나와 물을 마시고 있다
너의 몸 속 어딘가에 있다는
샌프란시스코
먼지들에게 색을 칠해주었다
너의 빛은 너무 아름다워
내 몸은 투명하게 시들어가고
먼지들만 가볍게
햇살 가시 위에서 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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