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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집 / 최승호

 

놀라워라. 조개는 오직 조개껍질만을 남겼다.

 

 

	겨울日記.2  濟州  水仙花 제주 수선화  / 한기팔   너를 알고 부터 나는 눈물이 많아졌다. 한 여자를 알고부터 나는 생각이 깊어졌다.   우리가 날로 깊어져서 겨울 들판의 빈 그림자로 만난다면   사랑아 뒷모습만 보이는 슬픈 사랑아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홀로 우는 마음이 차운 눈 속에서 하얀 꽃 한 송이 피웠나 보다.       < 죄  / 김용택 >   들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지겠고   무겁고 깨질 것 같은 그 독을 들고 아둥바둥 세상을 살았으니 산 죄 크다       < 겨울 간월암 / 김지헌>   무학대사의 내공이었을까 제 몸에 저리 큰 상처를 내고도 섬은 끄덕 없구나 마지막 무리조차 천축국으로 떠나고 왕따당한 철새 몇 마리 굴 따는 아낙네들과 함께 개펄 위에 經을 새긴다 마. 하 반. 야 . 바. 라 . 밀...... 읊조리며 철 지난 눈이 내린다       < 밤술  / 장석남 >   진눈깨비의 짧은 보폭을 따라 골목 어귀를 도는데 누군가 끄지 않은 처마 등불이 쓰다 남은 희망처럼 젖은 눈발에게도 몸을 허락하고 있었다 멀리 혹은 가까이 땅그랑대는 바람들 무릎이 닳는 동안 진눈깨비는 그쳐서 늦게 뜨는 별이, 별이 오래 동거하던 여자처럼       < 내 사랑하는 국문학적 얼굴들  / 서림 >   내가 다닌 대학에는 많은 국문학적 얼굴들이 있다. 그중 국어학 교수 얼굴들이 흔한 말로 가장 고상하고 원만하고 이른바 正品이다. 막말로 그 중 교수답다. 그 다음 고전문학 교수 얼굴들이 약간은 축 늘어지거나 모가 나거나 그렇게 조금씩 비뚤어졌는데, 이것도 막말로 정품에서 그게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즉 교수 얼굴이라 해도 크게 구라가 아니다. 건데 현대문학 교수 얼굴들은, 딱 깨놓고 말해서 이건 교수 얼굴이 아ㅣ낟. 짓눌려서 짜부라지고 모가 나서 나링 서 있고 일그러지고 찌그러져, 이건 참말로 영 교수얼굴이 아니다. 건데 건데 이상하게도 말이다. 그 짜부라질 대로 짜부라진 현대문학적 얼굴들이 진짜 얼굴로 다가오는 거 있지. 대학 다닐 땐 지긋지긋하던 얼굴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은 거 있지. 나이40 넘어서니까 그게 바로 내 얼굴인거 있지. 문득문득 그 얼굴들 막 껴안아 주고 싶은 거 있지. 건데 건데 말이다. 그보다 더한 국문학적 얼굴이 있는 거 있지, 그게 박재삼이나 김수영 같은 얼굴인데, 중풍병에 걸려 손을 덜덜 떠는 말라비틀어진 명태 같은 박재삼 같은 얼굴이나 내 詩에조차도 침을 뱉아버릴 것 같은 독하기가 왜고추 같은 김수영 얼굴이 진짜 진짜 , 진짜 얼굴로 다가오는 거 있지. 막 , 눈물나게, 다가오는 거 있지.       < 등대에 - 여수일지 7 / 권오표>   차라리 안타까운 그리움으로 서서 모딜리아니 혼자 울고 있다. 우산도 없이     < 무제 (無題) . 1   / 허영자 >   돌틈에서 솟아나는 싸늘한 샘물처럼   눈밭에 고개드는 새파란 팟종처럼   그렇게 맑게,   또한 그렇게 매웁게       < 고백성사 / 김종철 >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럽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 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 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 둔 못대가리가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十戒   / 박두진 >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떠내려가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무너지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뒤돌아 보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눈물 흘리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너를 잃어버리지 말아라. 네가 가진 너의 속의 불을 질러라. 네가 가진 너의 속의 칼을 갈아라. 네가 가진 너의 속의 심장을 푸득여라. 이에는 이로 갚고 사랑 포기하라. 눈에는 눈으로 갚고 사랑 포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