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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 하수도 > 연작 스물네편을 포함, 총 예순한 편의 시를 써서 중앙 5대 일간지 신춘문예에 각각 투고했다. 그 전에도 우리나라 잡지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신춘문예)에 최종 결선에 오른적이 있는 나는 무난히 당선되리라 자신했다. 이 정도면 박노해나 백무산, 박영근을 능가하고도 남을 것이다. 나처럼 철저하게 밑바닥 인생을 체험한 시인은 없을것이다. 시는 머리보다 가슴, 가슴보다는 온몸으로 쓰는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온몸으로 밀고 간다면 태산이라도 무섭지 않다고 큰소리칠 때였다 . P10
냉장고 앞으로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이 낙엽처럼 뒹굴었다. 그 돈으로 해장국을 먹고 바다를 보고 며칠 더 묵고 간 학은 끝내 자신의 명시< 밤기차>를 시, 서,화 를 총동원해 쓰고 그려서는 안해가 자는 안방 문고리에다 걸어놓고 갔다.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자물쇠인가 - 안상학시인편 에서-P21
우리는 그러니까 그 길 끝에서 슬픈 나그네들이었다. 가슴에 화로나 숯불을 품고 사는 짐승들은, 어떤 식이건, 그것을 차게 식혀서, 골통 담배 두어 봉다리를 품고 새벽 어스름 닭 우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또 하르를 이렇게 탕진하고 말았구나. 가슴을 칠때, 그 무엇이든 뜨거운 물만 부어주면 가슴 부풀어 속곳까지 열어주고 살 벌리는 컵라면 하나 정도만 있어줘도 비록 토굴 속이지만 진수성찬 부러울 게 없을 것이다. P 41
당신들이 라캉을 공부할때 나는 우물을 파서 '노깡(土管, 시멘트나 흙을 구워서 만든 둥글고 큰 관)'을 묻었고, 자크 데리다를 공부할 때 '자크' 달린 바지를 다렸고, 뤼시앵 골드만을 공부 할때 24골드 또는 화이트 골드로 반지와 귀걸이를 목걸이를 만들었고, 당신들이 두보를 공부할 때 두부를 넣어 매운탕을 끓였으며 이백을 읊조릴 때 이백 번, 삼백 번 망치질을 했다. 못을 박았다. 못 박혀 죽어, 거듭나려고 발버둥 쳤다. P 43
찬술먹고 더운 말 많았구나. 죄송하다. 죄송하고, 죄송하다. 이제부터 이나미 소설을, 이나미의 노래를, 본격 논해야 할 차례다. 하지만 잘못 말했다. 본게임 한번 하려는데 심판, 옐로카드 먼저 내민다. 경고한다. 다시 한 번, 횡설수설하면 아웃이란다. 레드카드 나오면 경기장을 떠나야 한다. 떠나기 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얼마나 웃기는 애기인가. 최선을 다하다니! 이건 너무 만히 봐왔던 대사 아닌가! 우리는 최악을 다해야 한다(박용하 의 시) 이나미는 최악을 다해 견디고 있다. 하수구 사이에 말라붙은 토사물처럼 , 하수구 속에서 밥을 구하는 서생원처럼, 서생원에 기생하는 벼룩며느리처럼, 이 세상을, 간신히, 정말, 숨도 쉬지 않을 만큼 최악을 다하고 있다.
아시는가, 당신네들은? 소설 쓰기의 참담함을, 소설 쓰기의 잡스러움을! 나는 이나미를 대신해 마지막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운동화 끈 물어뜯을 놈들( 이정록의 시)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겠다.P 45
애초에 노래가 없었다. 짖는 것으로 한 생애를 다 허비하고 말았다. 돌이켜보니 나도 짖고 말았구나. 깨갱거리고 말았구나. 소리 높여 울고 말았구나. 짖는 것이 노래였구나. 우는 것이 노래였구나.
병이 깊은 짐승들은 햇빛을 못 견뎌 했는데, 대낮의 희디흰 소란을 못 견뎌 했는데,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 모자나 안경이 없으면 눈물이 줄줄 흘렀는데, 피부가 바알갛게 물집이 잡혔는데, 낮에는 토굴 속에 웅크리고 누워있다가 어스름이 내리면 함께 모였다. P 46
*********< '모래시계' 테마곡 백학(Crane) >
나는 가끔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못할 병사들이
잠시 고향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백학으로 변해버린 듯하여
그들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날아만 갔어
그리고 우리를 불렀지
그래서, 우리는 자주 슬픔에 잠긴 채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잃은 건 아닐까?
(우우우우~ 우우우~~)
날아가네, 날아가네 저 하늘의 지친 학의 무리들
날아가네 저무는 하루의 안개 속을
무리 지은 대오의 그 조그만 틈새
그 자리가 혹시 내 자리는 아닐런지
그날이 오면 학들과 함께
나는 회청색 어스름 속을 끝없이 날아가리
대지에 남겨둔 그대들의 이름을
천상 아래 새처럼 목 놓아 부르며
(우우우우~ 우우우~~~)
단연코, 이나미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소설을 앓고 있는 사람일것이다. 그래서 앓음다운 짐승인 게다. 어쩌면 고양이로 태어나기전에 작고 눈 까만, 초식동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않다면, 언제나 진행형인, 불통투성이 세상에서 온몸으로 울부짖지는 않을 것이다.
*********끝나지 않은 노래 / 김해자
다만, 핏물을 먹 갈아 새긴 시는 알아볼 수 있다.
눈물을 먹 갈아 조각한 시는 들을 수 있다.
살점을 치며 쓴 시는 달게 먹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잘난 체하지 않는 시
그러면서도 배운 티 내지 않는 시 .
땀 그물로 끌어올린 정직한 시,
너무 많이 아플 때는 소리 내지르는 것도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시.......
일찍이, 늦게 눈더, 늦게 세상밖으로 나와, 운좋게 수많은 가객을 만났으되, 그들은 내 스승들이었으니, 지리산을 품고 산 살마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박두규부터, 세상 서러움을 통째로 안고 사는 박남준, 내포 지방 성인 가요를 주름잡고 있는 이정록, 안학수, 통기타 하나 들고 7080 선두 주자라고 자처하는 박철, 영산이 낳은 탁월한 소리꾼 이수행. '너를 보내는 들판에 바름 바람이 슬프고' 를 호곡하는 손세실리아와 이병초, 남자라는 이유 꼭 하나만으로 세상의 짐을 모두 지고 걸어나온 안상학, 항하사, 나유타, 무량대수 의 술꾼 이경철, 이미 재 너머 골짜기에 묻힌 박영근, 윤중호를 비롯해 이 땅에 태어나 노래하나로 귀신을 불러 모으고 귀신을 울게 만드는 여러 가인들을 만났으나, 김해자의 < 부용산>은 또 다른 맛이었다.
**생산 2과 김정례(나는 < 승천>) 이라는 시를 읽고 몇 번이나 목이 메여 울컥댔다)
이 세상 모오든 노래는 고통 속에서 나온 것이다. 상처를 가진 사람만이 노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김해자의 시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앞서 간신히 몇 마디 하긴 한 것 같은데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것은 필시 오랫동안 앓아온 주부 우울증과 알코올성 치매 때문이리라),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만, 핏물을 먹 갈아 새긴 시는 알아볼 수 있다. 눈물을 먹 갈아 조각한 시는 들을 수 있다. 살점을 저며 쓴 시는 달게 먹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잘난체 하지 않는 시, 그러면서도 배운 티 내지 않는 시, 땀 그물로 끌어올린 정직한 시, 너무 많이 아플 때는 소리 내지르는 것도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시....... 김해자의 시
온 생애, 눈물을 통째로 매달고 사신 어머니, 어머니는 숨넘어갈때도 끝내 아무 말씀없었다. 바다가 이 세상 뭇 생명들을 품어 모시고도 아무 말씀이 없는 것처럼.
****먼 바다에서 온 물 봉선 / 박남준
그 눈길을 걸어 아주 떠나간 사람이 있었다.
눈 녹은 발자국마다 마른 풀잎들 머리 풀고 쓰러져
한쪽으로만 오직 한편으로만 젖어가던 날이 있었다.
- 박남준 < 눈길> 전문-
머리에 서리가 일찍 내려서 그렇지 인물 좋지. 학벌 좋지. 노래 잘하지. 시,서,화에 능통하지. 도대체 뭐가 문제냐 이 말이다. 가끔 가다 술 먹고 돌아오는 길에 전봇대마다 머리를 들이박는다든지, 볼펜으로 자기 이마를 찍어 피철갑을 만든다든지, 춤과 노래가 지나쳐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16밀리미터 단편영화 같은 이 장면은 한창훈 소설집 < 가던 새 본다>에 실렸던 발문인 다음 꼭지 < 한 도보 고행승에 대한 중간 보고>에 자세히 설명해놓았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박남준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적은 거의 없다. 문학하는 사람치고 이 정도의 성격 결함(?)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P 78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간다면 박남준이 지은 죄는 평생을 다해 속죄해도 갚을 길이 없다. 그가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 중에서도 선별해서 잘난 남자를 가까이하면서(소문과는 달리 박남준은 철저하게 사람을 가려 좋아하는데 우선 순위를 매기자면 그림쟁이를 제일 좋아하고 스님들과 음악하는 사람들이 다음을 잇고 글쟁이들은 맨 꼴찌다. 글쟁이들이 맨 나중인 이유는 잘난 체를 잘하고 부담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을 이렇게 하지만 사람 인연이란 게 얼마나 독한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천성이 여린 박남준은 끈질긴 사람 인연 때문에 소주 마시면서 마음 아파하고 속으로 운다. ) 그이 얼굴 한번 보기 위해 수많은 낮과 밤을 애태운 끝에 찾아온 여자들을 물리친 비열한 행동을 생각하면 죽어 지옥가는 행로는 당연하다. 지옥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살벌한 풍경이 무섭다면 지금이라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선업(善業)을 쌓아가길 간절하게 바란다.
지금 지쳐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작은 사람은 산속으로 숨고 큰 사람은 사람 속으로 스며든다고 했는데, 지금 지쳐 있다고 권태롭다고 너도나도 숨고 떠난다면 누가 있어 다음 세기의 우리 문학을 갈아엎고 씨를 뿌려 경영할 것인가. 박남준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자신은 스스로 비겁하게 살았다고 고백하지만 그는 1980년대 한복판에 모기 같은 놈들과 맞서 싸웠다. 마흔 두살이면 한창 나이인데 벌써 8년 전 (1990년)부터 산속에 들어가 나올 줄을 모른다. 세권의 시집과 두권의 산문집은 그가 세상에 던진 울분이고 절규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것인가. 세속에 물든 우리들이 한번 들러 아, 이렇게 살아야하는데 반성하고 정신의 때를 씻어 맑고 정갈하게 내려오는 넉넉한 품을 제공하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일까. 이렇게 살다 추해지면 과감하게 세상과 결별한다는 그의 추상 같은 삶의 자세는 도저하지만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나이 아닐까...
주걱은
생을 마친 나무의 혀다
나무라면, 나도
주걱으로 마무리되고 싶다
나를 패서 나로 지은
그 뼈저린 밭솥에 온몸을 묻고
눈물 흘려보는 것, 참회도
필생의 바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뜨건 밥풀에 혀가 데여서
하얗게 살갗이 벗겨진 밥주걱으로
늘씬 얻어맞고 싶은 새벽,
지상 최고의 善者에다
세 치 혀를 댄다. 참회도
밥처럼 식어 딱딱해지거나
쉬어버리기도 하는 것임을,
순백의 나무 한 그루가
내 혓바닥 위에
잔뿌리들 들이민다.
- 이정록, <주걱> 전문-
자네, 생각이 생각을 반성한다는 말 들어보았나. 내 이야기일세, 그리하여 참 부드럽고 아늑하고 겉보기에 풍성한 곳을 많이도 찾아 다녔다네. 사근사근 혓바닥에 구르는 당의정처럼 독이 더 많이 들어있는 연애시의 마을, 자기가 쓰고도 무슨 말을 썼는지 모르는 해독 불가능한 난해시의 패거리, 요설과 장광설 하나로 포스트모던의 적자임을 강조하는 외국 입양을 못해 안달하는 어린아이같은 모임, 엄살과 광기로 얼룩진 반장들 동네, 공식을 만들어놓고 언어를 조립하는 조립식 건축업자들의 단체,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도사풍의 시, 주제만 너무 주장하다가 그 주장에 치어 저도 감당하지 못할 말을 주저리 주저리 동어반복하는 사람들까지 수업는 마을과 동네를 기웃거렸다네.
한때는 그 사람들과 들고나면서 만고풍상을 겪었지만 결국 문학이란 사람살이에서 오는 눈물겨움 아니던가. 잘 드러나지 않는 그늘의 , 배면에 깔려 있는 , 생명있는 것들의 안쓰러움 아니던가. 모시고 섬기는 일에 너무 인색해. 모두들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착각하는 것이지. 지금 내 말도 내가 그런 과정을 거쳐오면서 부화뇌동했다는 고백을 하기 위함일쎄. 왜 자기 안에 절을 못짓고 산으로 가는가. 왜 자기 집안에 고산준령을 품고 강을 보듬어 바다를 끌어안을 생각을 못하고 떠나기만 하는가. 물론 각처시언(各處詩言)이고 각처시담(各處詩談)이니 기행사나 풍경시가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닐쎄 . 풍화 했으되 뼈는 남아 있어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 거 뭐라. 밖에 나가서 찾다 찾다가 못 찾고 헨맨 끝에 스승께 물어보았더니 지금 당장 집으로 가보거라 맨발로 뛰어나와 반기는 사람이 바로 부처니라 했던. 일상의 작고 사소한 부분을 시에 담으면 좀팽이라고 무시하고 멀리 떠나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풍광을 노래하면 크고 장엄하다고 착각하는데, 이것 참 큰 병폐 아닌가.
먼저 이곳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 먼저 이곳에서 부딪쳐서 피 흘리고 해결하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면, 섬기고 모시지 않으면 거기 가서도 별로 얻을 수 없다는 말일세. 설사 얻는다 하더라도 사흘 밥 굶어 얻어 입은 양복저고리에 불과하겠지. 오래전 중국의 어떤 천재 화가도 그랬다네. 가장 그리기 쉬운 것이 귀신이었다고 말이야. 귀신을 본 사람이 별로 없으니 당연한 이치겠지. 그럼 무엇이 가장 그리기 어려우나물었더니 개나 말이라고 답하더래.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자주 보는 것들이라 자칫 잘못 그리면 욕 먹는다고 말일세. 소인은 산으로 숨고 대인은 사람 속으로 스며든다는 말 자주 들었겠지. 그리하여 소소한 일상을 노래하는 작품 이 가장 쓰기 어려우며 어려운 만큼 가장 크고 장엄한 노래일 수 도 있다는 말일세. P 120
단순함이 어머니 마음이다. 채색의 마지막 경지가 하얀색이라고 들었다(백자는 청자의 완성이란 말도 있다). 어머니 마음은 가을 햇살처럼 맑은 국물이 우러나올 때까지 세상 모든 만물을 쓰다듬는 마음이다. 문도 잠그지 않고 밑반찬에 소주 대(大)병 하나 손닿기 쉬운 곳에 놓아두는 마음이다. 집을 비워도 오신 손님 섭섭지 않게 대접하는 맨 나중의 마음이다. P 122
허벅지와 아랫배의 터진 살을
마른 들녘을 적셔나가는 은빛 강
깊고 아득한 중심으로 도도히 흘러드는
눈부신 강줄기에 딸려 들고파
나 문득 취수장의 물처럼 소용돌이 친다
- 이정록, < 강 > 부분 -
어미가 되어서야 새끼가재들은
물 밑바닥이 자신의 방패였음을 안다
붉노란 알을 한 아름 웅크린 모든 어미들이
이 땅을 짱짱하게 다져왔음을 깨닫는다
- 이정록, <가재 >부분 -
어둔 방에서 울고 계셨다
이목구비가 사라진 어머니는
커다란 외짝 젖통 같았다
너무 많이 빨아올려서
꼭지가 아스라이 솟구쳐 있었다
- 이정록, < 쓰라린 젖꼭지> 부분 -
그러나 달빛 내리는 뒤뜰 정한수 앞에 서면, 팽행해지요 뒤산 대나무처럼 말이에요 온몸이 아랫배인 대나무들은 선 채로 평생 푸른 기도를 올리지요
- 이정록, < 대나무> 부분 -
****삶은 이렇게 큰 현실이다
이면우 시집 < 그 저녁은 두번 오지 않는다> 교정본을 백여 번 반복해서 읽다. 소금기둥의 열므과 발가벗은 겨울을 건너온 남자에게 가을은 너무 가볍다. 낙엽 하나만으로도 먹고살 만하구나 P131
닭이 울었다. 닭이 울었다는 사실은 귀신이 물러갔다는 신호이다. 그러나 나는 붙잡고 안달한다 시의 귀신이여, 내게 더 오래 머물다 가거라. 늦잠을 자도 깨우지 않으마, 밥 주고 술주고 여자까지 붙여줄테니 부디 이집에서 오래 머물다 가거라. 닭은 단칼에 때려 잡으먀, 새벽은 단칼에 무릎 꿇게 할 테니. 항복문서 받아 올테니. 제발 나가지 마라. 박용래 시집을 겉표지 너덜거릴 때까지 끼고 일하러 다닌 시인에게는 일찌감치 수건을 던졌다. 인정하마. 내 잘못 살았다는 것을. P 143
그대를 보낸 뒤
내내 노심초사하였다
행여
이승의 마지막일지도 몰라
그저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기만 해도
갈비뼈가 어긋나고
마른 갈잎이 흔들리면
그 잎으로 그대의 이름을 썼다
청둥오리 떼를 불러다
섬진강 산 그림자에 어리는
그 이름을 지우고
벽소령 달빛으로
다시 전서체의 그 이름을 썼다
별자리들마저
그대의 이름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바꿔 앉은 밤
화엄경을 보아도
잘 모르는 활자들 속에
슬쩍
그 이름을 끼워서 읽고
폭설의 실상사 앞 들녘을 걸으면
발자국,
발자국들이 모여
복숭아뼈에 아로새긴 그 이름을
그리고 있었다
길이라면 어차피
아니 갈 수 없는 길이었다
- 이원규,< 뼈에 새긴 그 이름 > 전문 -
자기 작품이 얼마나 부실하면 안면이나 돈이나 술로 팔아보려고 할까요. 자존심은 뒤주에 숨겨놓았습니까? 이런 판국이니 중앙문단 사람들이 지역 문학인을 깔보지 않을수 가 없겠지요. 물론 지역에 있는 문인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극히 일부겠지만 이 부끄러운 현실을 부인할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 한번 발표하면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가. 다자기 현시욕이고 출세하지 못해 안달하는 소인배들이나 하는 너절한 풍경들입니다. 작품이 좋음녀, 그것보다는 자기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 저절로 알아주게 되어 있습니다. 떳떳하게 청탁 받고 좋은 대우 받고 발표하게 될 날이 오게 되어 있는데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스빈다. 평생을 걸고 이랗고 작품을 쓰다가 정 알아주는 이 없고 발표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무덤 속으로 가지고 가든지 자손들에게 나 이렇게 떳떳하게 살았노라 유품으로 물려주는, 장인 정신을 가진다면 무서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왜 이렇게 부실하고 허하고 자존심이 없는지 우리 모두 짚고 넘어가야 하빈다. 무엇보다 족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오래 견딜줄알고 또 그냥 잊힐 줄도 알아야 하빈다.
또한 지역문단 의 병통(반대로 생각하면 발전할 수 있는 대안)중의 하나가 우물안 개구리식 문학을 한다는데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역에는 각 시,군단위로 문학단체가 한두개씩 꼭 있고 일년에 한 두번 문집을 내는데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정말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중고등학교 학생 눈집에 실린 학생들의 작품보다 수준이 낮은 작품이 수두룩 합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까요?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활발한 토론과 합평없이 무조건 작품을 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학 단체 내부에서 신입 회원을 아무런 절차없이 마구잡이로 끌어들였기 때문 입니다. 문집에 한 두번 자기작품이 실리면 그 사람은 자동으로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됩니다.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었고 지역사회에서 지위도 어느정도 올랐고 공부도 남만큼 해서 오랫동안
작품을 발표했는데 무슨 얼어죽을 토론? 개뼈다귀 같은 합평? 이러니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발전이 없습니다. P 171
풀은
아내의 땀으로 자라는지
뽑은 자리 돌아보면 어느새 무성한 숲
풀뿌리에 지친 호미질 끝
이 여름 다가도록
바다보다 깊은 콩밭 가운데서
백로처럼 움직이던 수건 쓴 머리
땀에 진 까만 얼굴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민들레 꽃씨처럼 가벼운 몸
三伏 불볕에 녹아
아득한 우주로 증발했는가
돌아오지 않아 찾아나선
어스름 밭고랑
일 녀내내 거친 손
분신으로 남은
닳고 닳은 호미자루 옆
아내는
쇠비름 노란 꽃으로 가녀리게 피어있다
- 정낙추, < 아내 > 전문 -
새의 그림자가 길게 끌고 가는 것은 누구일까
땅거미가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은 무엇일까
붉은 옷의 승려가 사는 서녘에서는
마지막 시체가 연기를 피워올리고
떠난다거나 다시 돌아온다는 것도
이미 먼 세상의 일이다
서른세번, 망자를 거두는 종이 울리면
어렵사리 네가 붙잡은 나마저 사라진다
- 송기원,< 저녁> 전문 -
윤회랄까, 재생이랄까, 선생님 시에 자주 나오는.... 왜 하필 시죠? 젊었을때는 풀어내고 나이 먹으면 응축시키라는 말도 있는데, 저희들은 시를 통해 뭐 하나 건지려고 애를 쓰는데요. 선생님 작품에서는 오히려, 제발 거기 까지 나가지 말고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말라가는 메시지를 읽었어요. 시는 경전이 아니다. 시는 희로애락이고 오욕칠정이다. 어떤 시인도 여기서 벗어날 수 가 없다. 오히려, 비 시적인 것이 시를 이끌어 나가는 식, 비문이 명무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비유나 상징이니 이런 것들은 개도 물어가지 않느다. 우선 있는 그대로 보는것 ,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 간섭하지 않는 것, 시체가 됐든 독수리가 됐든 까마귀가 됐던 파리, 개미가 됐뜬 키 작은 나무가 됐든 뼈가 됐든 봄 꽃비가 됐던 여름 안개, 가을 낙엽이 됐든 꾸정모가 되어 내 피를 빨아 먹든 말든 그대로 놔 두는 것, 원래 상태로 건드리지 않는것 ! 집 지을겨고 하지 말 것 ! 그냥 집이 길이 되어 한없이 돌아다니게 할것 ! P 199
나도 한때는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자식이고자 했네.
그렇게 세상에 도움도 주리라 믿었네 .
평생의 끄트머리에 이른
내 마지막 바람은
단 하루라도 세상에 누가 안 되는것
나를 무는 모기며 쇠파리
한 마리에도
부끄러워 눈길을 피하네
-송기원, < 단하루라도 > 전문-
어릴 적 누님을 부둥켜 안고 울면서 듣던 밤바람 소리 속에는 멀리
웃녘으로 겨울장사를 떠난 어머니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호노자서 듣는 밤바람 소리 속에는 캄캄한 저승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어머니와 누님의 목소리가 함께 섞여 있습니다.
아득한 곳에서 홀된 그대가 듣는 밤바람 소리 속에는 어머니와 누님을 부둥켜 안은 내 목소리도 함께 섞여 있을는지요.
- 송기원, < 밤바람 소리> 전문 -
방식이야 여러 가지겠지, 발자크 같은 경우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썼다잖아. 한번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모든 사회생활을 중단하고 심지어 연인까지 만나지 않았다는군. 문제는 얼마나 열렬하게 자기 희생을 감수하면서 문학을 할 수ㅜ 있느냐는 거지. 어떤 것도 절대적 관계느 ㄴ없는 법이야. 우리 때는 문학이 절대적이었지. 오죽하면 신춘문예에 당선 소감에 '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은 나무' 이렇게 썼겠어. 새로운 세대에게는 이렇게 하라고 강요 못하지. 나는 목매달고 싶어 애를 쓰고 있어. 발돋움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어. 이번 소설에서는 독자들의 본능을 건드리고 싶었거든. P 216
나무의 향기는 나무의 피 냄새다 나무는 왜 죽어서도 불이 되려 할까 어째서 나무는 여름부터 봄까지 불을 피우려 하는 것일까 무엇이 한사코 재가 되면서도 불을 피우게 하는 것일까 불을 만들기 위해 나무는 더욱더 단단하고 견고하게 물을 감싸고 돈다 나무는 물의 자식, 불의 어머니 - 물로 만들어진 불의 합성을 들으면서, 나는 재로 허물어질 사람들을 생각한다. 재속에 감추어진 한줌 불을 지키기 우해 추운 겨울에도 나무를 키우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겨울을 지키는 , 얼름을 감싸는 나무들을 생각한다 가슴속 옹이로 남은 상처를 해체 이후의 옹벽 처럼 눈부시게 다스리는 사람들, 몸에서 나는 가장 숭고한 향기 땀과 피를 온 세상엣 피워올리는 낮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무는 죽어서도 따듯한 피의 향기를 남긴다
- 유용주 , < 화톳불> 전문-
땅 서마지기만 있으면 보수주의자라고 햇는데 농촌은 기본적으로 보수층이지요. 산과 나무와 물과 땅이 얼마나 큰 빽입니까. 이런 든든한 빽을 가진 사람들이 변혀을 원하겠습니까. 자연은 원래 그 자리에 있는 존재이지 변하는 어떤 것이 아니잖습니까. 사회적으로 사는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꾸 도시적인 안목으로 농촌을, 신세대가 원하는 농촌을 , 논리적으로 무장한 어떤 운동적인 시각으로 농촌을 보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P 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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