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ademy 라는 영어단어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살던 한 사람의 이름에서 왔다. 그는 누굴까? 아카데모스Academos다. 플라톤이 이 아카데모스의 집에 있던 숲(정원)에 만든 학당의 이름인 아카데미가 오늘날의 '대학'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 스승을 말하는 mentor(멘토)라는 영어 단어 역시 사람 이름에서 왔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인물인 멘토르 Mentor라는 사람은 오디세이가 고향을 떠나 있을때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위해 오디세이 대신 아버지 역할을 해주는 사람인 것이다. 화학 化學이라는 단어의 기원인 chemistry의 기원에는 이집트의 나일강이 있다. chemistry라는 낱말의 기원은 alchemy다. 그런데 alchemy는 이집트 낱말 Keme 로부터 연원한 아랍어 al-Kimiiya에서 왔다. 이집트어 Keme는 해마다 발생하는 이집트 나일강의 범람으로 발생되고 검고 비옥한 침적토를 지칭하는 말로, 글자 그대로 '검은 흙'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떤 단어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 비밀스런 이야기를 제 몸속에 숨겨놓고 있다. 이책은 이 재미난 이야기를 찾아 떠났던 하나의 여행기이기도 하다.
새로운것, 새로운 사건을 만날 때 우리 두뇌의 도파민 시스템은 작동하여 도파민을 방출한다는 것이며, 도파민 방출과 성인의 건강은 관계가 깊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대개는 창조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서 도파민을 발생시킬 수 밖에 없는 사회체제 속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특정 양식의 도파민 생성 추구 메커니즘이 이미 하나의 거대한 일상 문화로 고착되어 우리의 나낱살이와 실존에 깊이 습화되어버렸다는 점에 있다. 창조성이 실현이 구조적으로 억압되거나 제한되는 이러한 사회세계에서 , 우리는 대개 새로운 테크놀로지나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상품, 기성 완제품 형태를 취한 신상품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오직 소비라는 형식을 매개로 해서만 삶의 기쁨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 중 가장 기쁘게 산다고 여겨지는 이란 거개는 신제품과 신-테크놀로지의 얼리 어댑터earrly adapor 일 뿐이지 , 얼리 크리에이터 early creator 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발견되는 이러한 현상을 의당 '기쁨의 축소화' 또는 '기쁨 형성조건의 왜소화 , 협소화' 현상이라고 불러야만 한다. ............첫째현상은 자연물질과 기성완제품으로 제시되는 제품간의 연결관계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 소멸이라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감수성 부족이라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한 감수성의 부족은 원 물질자체에 대한 실질적 지각 경험을 통해서만 발달될 수 있는 물질적 , 사회적 상상력의 부족을 함의 하기 때문이다. 후지타 쇼조가 지적하듯 " 오늘날이 '물체'는 정상적인 형태로는 더 이상 상상력의 대상이 되지 못하게 되고 " 말았다. 후지타 쇼조가 말하는, 원 물질 자체에 대한 최초의 경험으로서의 ' 생성경험' 과 같은 것은 기 완성 제품과의 ' 소여 所輿 적' 만남 에서는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경험은 " 고안과 설계이 줗여에 따라 일방적으로 제작하는 과정과는 전혀 다르다. .... 경험의 결정 結晶은 사물과의 교섭의 개별적인 형태에 따라 생겨나는 일회적 고유성을 어딘가에 내포" 하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 그 고유성이야 말로 "상호성의 흔적이며 사회적인 것의 씨앗" 이다. 이러한 말들이 지시해주는....기성 완제품의 소비를 통한 기쁨이란 이렇게 우리의 삶에 너무나도 중요한 무언가의 상실을 대가로 경험되는 기쁨이다.
둘째 현상은 신제품을 통한 욕구 충족 경험이란 으레 또 다른 신제품에 대한 욕구를 자연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원리와 관계된다. .......이 사태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는 크게 세가지이다... 하나는 이러한 욕구 충족시스템 아래에서는 누구든지 끊임없이 만족- 불만족이라는 쳇바퀴를 맴돌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하여 이 빠른 맴돎이라는 ... P39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러한 생태적, 건강적 문제발생의 가능성 때문에 소위 개발된 국가라는 국가들에서 주로 나오는 '폐기처분용 전자제품들'은 중국,인도, 가나, 나이지리아 등지의 개발 중인 국가 또는 덜 개발된 국가 Less Developed Countries (LDCs)로 폐기되거나 재활용되기 위해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 수출되고 있따는 점이다.
이러한 수출 활동을 어떤 활동가들은 '독극물 무역 toxic trade '이라 부른다. 따라서 이 무역의 실질적 피해자들은, 달리 말해 구--> 신--> 구제품 (욕망) 생산 - 충족 - 폐기 시스템이라는 악독한 시스템의 실질적 피해자들은 몇 푼 벌어 보겠다고이 제품들의 분해,폐기 작업 일선에 나서고 있는 , 경제적 약소국들의 경제적 약자들인 것이요, 그들의 작업터 주위의 생명체, 생명계(대기,강 등)인 것이다.
하늘은 어디에나 현존한다
심지어 어둠의 살갗 아래에도
- 비스와바 쉼 보르스카 -
은하수 흐릿 흐릿 듬성듬성
파릇한 연잎 향
촉촉히 옷자락에 스밀 때
청량한 밤기운
물처럼 매끄러이 출렁이네
일어나 창문 열고
돌아온 달에 나를 놓아버리니
- 방악 -
우 宇나 주 宙에 비한다면, 코스모스cosmos라는 서양어는 차라리 신생어다. 이 낱말의 창시자는 철학자 탈레스인데, 이 말의 기원이 되는 그리스어 Koquos 에는 '질서', '아름답게 하는 것' 이라는 두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코스모스cosmos의 본디 뜻은 '아름다움을 가져오는 것으로서의 질서나 법리' 였던 것이다.이러한 아이디어는 분명 우주가 인간과 지구 생명의 삶을 감싸는 지붕이라는 아이디어보다는 진일보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宇宙가 천계 天界라면, cosmos는 천리天理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것은 진실의 반쪽에 불과하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cosmos는 낱말의 창조되는 시기에 이르면 , 한자어 문화권에서도 '우주 宇宙' 역시 天理의 의미를 내포하게되니 말이다. P64
" 우주는 아르거스(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의 왕자)이다" 라는 바슐라르의 우주 정의는 결코 시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바슐라르의 우주정의는 결코 시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주는 항상 눈뜨고 있는 눈들의 총합인 아르거스인 것이다. ...빛나는 모든 것은 보고 있으며, 세계에서 시선보다 빛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물론 이는 매우 시적인 언명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적인 언명, 그리하여 현실적이지 않은 언명일뿐이가? 차라리 이것은 만물에 스며 와 있음을 통해서 , 만물의 존재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우주의 성질을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자연만물을 개성적 실 - 존재자로서 응시할수 있을 때, 그 응시를 통해 자연만물이 우주의 일점이요 우주의 눈들이라는 사태를 간파할 수 있을 때..내가 바라보는 자연의 일몰이 내 몸을 구성하는 입자와 같은 입자를 지닌 나의 형제라는 사태를 깨달을 수 있을 때, .......
구름이 끼면 보이지 않는 하늘, 비가 오면 온 곳이 되지만 여전히 보이지는 않는 하늘, 구름과 비가 사라질 때에야 비로소 제 실체를 또렷이 우리에게 내보이는 하늘, 물리적으로 한낱 허공에 불과한 그것을, 그러나 푸르른 색감으로 우리에게 감각되는 그것을 우리 한국어는 하늘이라 부른다. 우주가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눈에 나타난 인간의 지붕이라면, 하늘은 눈에 보이는, 눈에 나타난, 구체적인 인간의 지붕이다.
눈에 보인다는 것 말고, 우리를 감싸주고 있다는 것 말고 다른 하늘의 성질은 없는가? 무엇보다도 하늘은 변치 않는 무엇이다. 하늘의 성질은 항恒이요 상常이어서, 하룻밤 자고 나도 , 하로마큼 소멸되어있는나, 역易의 세계에서 사는 나와 달리 늘 그대로 내 위에 있다. 하여 이것은 서 있는 사람大위에 존재하는 늘[ ㅡ]이자 하나[ㅡ]다 天 하룻밤자고 일어나 내가 지금 어느 세계에 있는것인지 다시 가늠해 볼 때, 하나의 뚜렷한 지표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이 하나 -늘이다. 이 하나 -늘이라는 지붕은 언제고 변함이 없다. 하늘은 또 생육하는 무엇이다. 하늘은 해와 달과 별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해와 달과 별의 빛힘이 만물에게 뻗어와 몸과 마음과 정신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하늘은 또 높은 무엇이다. 높은 무엇이되 가장 높은 무엇이 바로 하늘이다. 그저 우리를 생육하는 존재라면 마땅히 우리는 그 존재를 '오마니'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 그러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높은 존재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아바디'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이란 무엇인가? 하늘이란 아바디다. 내가 언제고 '아바디'라고 부르며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하늘이다. 아버지 사상은 그리하여 하늘 사상과 분리 될수 없었다.
이처럼 물리적으로 볼 때 분명 허공, 허것에 불과한 하늘은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 인간에게는 특정한 형이상학적 의미를 띠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고대 중국인은 물리적인 하늘을 지시하는 낱말인 天에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형이상학적 실체로서의 하늘을 지시하는 낱말이, 天과는 다른 낱말이 그들에게는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이 낱말 乾이다.
乾으로 그들이 지시한 것은 무엇인가? 일설에 따르면,이것은 해日가 솟아나 있는 곳, 초목이 솟아나 향하는 곳을 나타낸다. 생육하는 존재로서의 하늘을 지시했다는 해석이다. ..............
이렇게 고대 중국인에게 乾은 그저 하늘이 아니요, 특정한 성질을 지시하는 형이상학적 하늘이었다. 乾이 거느리는 여러성질에 대한 설명을 우리는 [주역]에서 만난다. 이 책에 따르면 , 乾
은 자연으로는 하늘을, 가족으로는 아버지를 , 동물로는 용 혹은 말을 , 신체로는 머리를, 신분으로는 왕을 상징한다. 광물로는 금속을 , 계절로는 늦가을을, 시기로는 이른 밤을, 방위로는 북서(서북)쪽을, 색깔로는 진홍을 상징한다. 또 본성으로는 존재함 Being , 굳건함, 원만형통함, 확장함을 활동으로는 줌donation , giving 을 상징한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존재요, 절대 변치 않는 존재요, 커져가는 존재요. 늘 생육하는 존재가 바로 乾인 것이다. P69
土 + 申 ,乾이 아버지라면 坤(곤)은 어머니다. 乾
이 사랑에의 의지, 사랑에의 동경을 자아낸다면, 坤
은 사랑의 따뜻함, 사랑의 부드러움을 생각케 한다. 乾ㅇ이 여기 없는 저 너머의 세계를 , 제의 세계를, 그리하여 이 세계가 따라야 하는 이상理想을 고지한다면 , 坤은 여기 있는 이 세계의 복락을 , 인간의 복락을 가능하게 하는 땅의 자애로움을 지시한다. 天
이 하늘의 형상을, 乾이 하늘의 본질, 성질을 가르키듯, 地는 땅의 형상을 , 坤은 땅의 본성, 성질을 가르킨다.
땅이 본질, 성질은 대체 무엇인가? [주역]에 따르면, 이 낱말의 坤은 자연으로는 땅을, 가족으로는 어머니를, 동물로는 암말 또는 소를, 신체로는 복부를, 신분으로는 민초를 상징한다. 광물로는 흙을, 계절로는 늦여름, 초가을을, 시기로는 오후를, 방위로는 남서(서남)쪽을, 색깔로는 흑색을 상징한다. 본성으로는 유순함, 양육, 정직공평함, 구체화를 활동으로는 수용 reception을 상징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무언가 '낮게' 또는 '넓게' 있는 것을 표상한다. 무언가 '부드럽고' '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을 표상한다. 이러한 땅의 성질, 대지의 본질을 고대 중국인들은 坤이라는 낱말에 있다.
'왜' 이 낱말은 대지의 이러한 본질을 지시하기 위해 적합했던 것일까? 坤이 숨기고 있는 뜻은 대체 무엇일까? 坤은 土와 申의 합성자로, 일설에 따르면 土는 땅속에서 땅 위로 순이 돋아 올라옴이요, 申은 음기의 오그라들고 펼쳐지는 활동이다. 앞엣것이 생명의 발흥이라면 뒤엣것은 생명활동의 모태라는 것이다. 생명이 발흥하도록 하는 생명의 모태인 어무이 자궁이 坤이라는 말이다. 만일 이 가설이 옳다면 坤은 곧 곤모 坤母요, 坤의 본질은 곤육坤育이겠다. 요컨대 坤은 생명의 어머니 = 대지를 상징하며, 이 낱말 坤에서 어머니 母이 이미지와 대지 地의 이미지는 서로.........
鳳은 상상의 새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새이긴 새이되 무언가 특별한 새인것이다. 그러나 鳳이 곧 봉황 鳳凰은 아니다. 상상된 새의 수컷을 봉 鳳이라고 하고, 암컷을 황 凰 이라 할 것이니, 鳳은 이새의 수컷이다. 정현이 쓴 [정전]에 따르면 鳳은 그 서정 상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 새다. 이롱이 신선 격인 새인 것이다. [이아 爾雅] [석조 釋鳥] 편에 따르면 " 鳳이 앞은 기린이며, 뒤는 사슴이다. 뱀의 목에, 물고기이 꼬리에 용이 무늬에 , 거북의 등에 . 제비의 턱에 닭의 부리에 오색을 갖춘 새로 동방군자의 나라에서 달아온다." 또 다른 문헌에 따르면 鳳은 "동방군자의 나라에서 날아와 사해 四海이 밖을 날아 곤륜산을 지나 지주의 물을 마시고 약수터에 깃을 씨고 저녁에는 풍혈 風穴에서 자는데,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다고 전해진다. " P116
아브라함 헤셀은 무은 無恩 ingratitude 이야말로 현대 문명의 불협화음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무은이 무경이 no- Wonder와 관계있다고 한다. 경이의 감각이 소멸됨에 따라 자연 恩의 감각 역시 쇠퇴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경이없는 삶은 무가치한 삶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바로 행복의 시작이라고 그는 말한다. 행복의 원천도 경이요, 恩의 원천도 경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경이의 감각을 상실하고 만 현대인은 불행한 존재라는 진단이기도 하다. P142
숫세계를 숫세계로서 느끼는 나의 실존 역시 단 한번도 존재 한 적이 없는 숫된 실존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의 내 숨은 나의 첫숨이요, 샛숨이요, 햇숨이요, 숫숨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런 숨 쉼의 주인인 내게 나타나는 세계는 지각과 이성으로는 완전히 파지될수 없는 깊이의 신비가 숨배어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만 '창조하고 있는 ' 세계의 쪽 그림 역시, 가만 생각해 보면 한없이 신비스럽다. 그 신비스러움의 한 원천이 바로 그 그림의 숫됨이다. 순간순간이 처음의 붓질인 것이요, 처음의 나타남 인것이다. 시시각각이 그림이 그려지는 첫 순간인 것이다. 그러한 첫순간을 첫숨의 임자인 내가 바라보니 내게 그림으로서 나타난 '내 -앞에 - 있는 - 세...
첫눈은 고향에서 온다 - 신대철 -
봄은 예수,
그 수의들로 부터 순교한 식물들을 들어올리네
그들의 입은 감사 속에 열려, 입맞춤을 원하네
장미와 튤립의 타오름은 하나의 램프가 그 안에 있음을 말해주지
한 잎이 떠네, 나는 떠네
투르키스탄산 비단과도 같은 바람의 아름다움 속에서
솔솔부는 바람에 향로는 불꽃을 틔우네
-루미
다윈에 따르면 인간을 도덕적 인간으로 진화시킨 것은 특히 과거를 반추 反芻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시간이라는 관념(의식)의 탄생 역시 이 반추 능력으로부터 온 것으로 보인다. . 변화라는 관념은 과거 경험을 반추할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발달 된 것으로 보이는데, 시간관념의 뿌리에 있는 것은 변화관념이기 때문이다. 지나가고 만 경험의 밝은 변과 어두면에 대한 반추를 통하여 최초의 인류는 도덕 감각을 습득하는 동시에, 과거 -현재-미래라는 기초적 시간관념을 내면화했을 공산이 크다. 그런데 장회익이 지적하듯, 반추능력과 매개되어 발생되는 이러한 시간 관념이 없이는 인간의 자기 정체성 획득과 주체적 삶의 영위한 애초에 불가능하다. 과거 경험이 혀재의 경험으로 통합되고, 이것이 미래의 비전으로 확장되며, 다시 이 비전이 현재의 내 경험에 영향을 미치고 내 정체성을 형성하는 '자기 정체성 형성'의 경험은 오직 과거 내 경험의 어두움(좋지 않았던 점)과 밝음( 좋았던 점)을 반추하는 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능력, 미래의 상태를 상상하는 능력- 이러한 위대한 인간 능력들의 뿌리에 있는 것은 바로 '반추하는 능력' 인지 모른다. 인간이란 무엇이냐? 인간은 무엇보다도 '반추하는 동물이다.'
시간이 무화無化 된 곳에, 시간을 해탈한 존재는 있다. 시간이 있는 곳에, 시간에 쫓기는 존재는 있다. 이렇게 시간은 질곡이요. 구속이다. 때는 때(오물)인 것이다. P156
'순간 瞬間' 이란 무슨 말인가? 이것은 말 그대로는 '극히 짧은 시간' 이다. '짧음' 이라니? 이는 벌써 길이를 지정하는 사고의 반영이다. 순간은 無 그 자체인가? 아니면 순간에도 길이가 있는가? 순간의 의미를 중시한 불가 佛家에서는 순간을 지시하는 여러 말들과 그 말들이 지시하는 시간의 길이를 소상히 적어 놓아 우리를 적이 놀라게 한다. 이를 테면 '갑자기'의 다른 말을 '홀연忽然히' 인데, 이 '홀연히' 의 홀忽은 10의 -5인 시간을 말한다. '수유간 須臾間(須臾) 역시 극히 짧은 시간인데, 구체적인 10-15인 시간을 말한다. 10-16인 시간은 순식간 瞬息間'이라고 할 때의 순식이며, 10-17 시간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이라는 뜻의 탄지 彈指다. 이러한 탄지의 10분의 1이 되는 시간이 바로 '찰나 刹那다. P154
찰나의 경험은 시간 무화의 경험이요, 시간 해탈의 경험이요, 시간 단제 斷際의 경험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영원의 경험과 유사하다. 영원의 경험이 아니라면 찰나의 경험이란 도대체가 무의미한 말읻. 본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시간의 속성이란 '계속사라져감 ' 인데 , 찰나의 경험, 시간 단제의 경험속에서 우리가 느껴는 시간의 속성이란 ' 영원성'이다.
대체 무슨 말인가? 찰나 속에 영원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장난이 아닌가? 시가 아닌가? 대체 언제 찰나가 영원이 되나? 어떻게 찰나가 영원이 되나? 시간단제 時間斷際가 되면 절로 되는 것은 시간기재時間旣在다. 시간단제가 시간을 끊음이라면 시간기제는 시간이 쌓이는 것을 말한다. 저수지에 물이 쌓이듯, 물탱크에 빗물이 쌓이듯, 시간은 시간단제의 경험자에게 쌓여온다. 쌓이는 시간의 다른 표현은 터져나오는 시간이다. 끊어져 이제는 쌓이고 터져나오는 시간을 오올히 경험하는 것, 이 시간에 오올히 살아있는 것을 일러 현존 現存(Presence)이라 한다.
시간을 고대 그리스인은 '크로노스라 불렀다. 그런데 그들은 이와는 다른 시간이 있었음을 알았다. 양적인 시간 흘러가고 마는 시간이 아닌 시간, 즉 질적인 시간, 심리적인 시간을 그들은 '카이로스'라 불렀다. 말하자면 카이로스는 '음미의 세계'를 열어주는 시간이다.
이 '시간 아닌 시간' 이 경험 될 때, 창밖이 꽃나무는 어제의 꽃나무가 아니요, 어제는 감지하지 못했던 숫된 매력의 임자로, 숫된 존재자로 내게 드러난다. 이는 그것을 새로이 보는 나의 시선에 붙들린 이요, 나의 시선을 새로이 붙드는 이다. 시선의 ' 홀연 새로 붙듦 - 붙들림'의 경험속에서 내가 가만 느껴보는 것은 저 나무의 개성적 잎가지요, 저만의 개성적 소리요, 그 모양, 빛깔, 소리가 총체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저만의 깊이'다. 내가 그냥 지나가고 말 때에는 내 갈 길을 방해하던 하나의 대상물이었던 이것은 , 내가 저에게 집중 할 때에 비로소 자신의 실상을 내게 드러내 준다. ............(중략)......
그렇다면 시간의 경험과 관련한 우리의 과제는 지극히 단순한 것이다. 매순간 그 모든 사물을 최고의 상태로서 음미하는 것, 즉 " 사물들이 그 최고의 순수 에너지 상태에서 생기 넘치는 힘을 결합하는 곳에 늘 현존하는 것"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을 영원의 지평에 잇는 것.
우리의 마음을 영원의 지평에 이을 때 우리가 실제로 체험하는 것은 마음의 무한한 드넓어짐(빔)과 고요해짐과 맑아짐(太虛太淸)이다. 어느 순간 불현듯 체험되고 마는 이러한 마음의 적경寂境을 노래한 한 시편을 함께 읽어본다. 소위 호주죽파이 창시자 소소선생 문동의 작품이다.
책덮고 뜰아래 내려가니
뜰엔 물처럼 넘실대는 달빛
소슬한 가을 기운 옷깃에 가득번져오고
솔그림자 땅에 그득하구나!
온갖 벌레밤 운행 재촉하며 우는데
기러기 한마리 찬 기운의 시작을 가만 일러주는 구나 !
아, 이마음의 고요함, 세상혼미를 끊어 냈구나
그 뉘있어 이 아름다운 맛을 함께 할 수 있을까
-문동,<보월 步月>
우리가 현재 라고 부르는 순간으로 일순간 전화되어 버리는 (버릴) 것이 바로 미래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는 없는 것이요. 환상이 개념이다.
그러나 현재라는 개념 역시 허망하고 환상적이긴 마찬가지다. 지금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바로 그렇게 생각되는 순간에 , 이미 약간 변형된 순간으로 우리에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물리학자들은 , 현재 우리가 보는 것은 ' 이미 발생된 것들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볼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빛 때문인데, 빛이 우리의 시야에 도달하는데는 일정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를테면 우리가 볼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빛때문인데, 빛이 우리의 시야에 도달하는데는 일정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이를테면 우리가 방금 달을 보았다면 , 그달은 그것을 본 시점이라는 현재의 달에서 약 1.5초 전의 달이라 한다. 해의 경우에는 오로지 실제로는 약 8분전의 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P168
미래라는 관념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이 '행위하는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되어감 becoming' 으로써만 '있는 being 존재자 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는 늘 미 未- 성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의 존재됨이 바로 사람에게 미래를 가장 중요한 시간을 만든다. 행위 또는 되어감의 존재자, 제 존재 미성취의 존재자인 사람은 '아직오지 않은 시간'인 미래로 자신을 능동적으로 투기投企함으로써 산다. 능동적 투기의 다른 말은 능동적 선택이다.
우리의 삶이란 ,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지적했듯, 무엇보다도 "미래와의 만남"인 것이며, "우리는 미래와의 관련선상에서 , 말하자면 미래를 발견하고 나서야 비로소 현재와 과거를 발견하는 존재인 것이다. 삶은 '미래화"인 것이다.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이 무시무시한 기능의 지평은 거대한 입을 벌리고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허무가 되어) 잡아먹히느냐, (내가 희망이 되어) 잡아 먹느냐- 이것을 결정하는 궁극적 힘은 과연 내가 나를 믿느냐인 것이다. 조금 달리 말하면, 과연 내가 나를 아느냐 인 것이다.
|
같은책 다른리뷰 | 이 책에 대한 다른 리뷰도 읽어보세요.
낱말의 우주
이전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