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1부 누군가의 호흡

* 에로스와 아우라

* 그 주홍빛 ...

* 서른 개의 질문 중에서

* 머리 없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 가로수 논쟁

* 가로수 -로봇 프로젝트

* 숨 쉬는 일에 대하여

* 감정의 건축술

 

2부 맨몸, 거울의 몸, 타인의 몸

* 이상의 절벽과 거울

* 사랑의 기술: 김수영의 [ 사랑의 변주곡]

* 무엇이었어요, 당신? 허수경의 [ 그 , 그림 속에서]

* 타인의 흔적 : 심보선의 [ 인중을 긁적이며]

* 회귀하는 '맨몸' : 문태준의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

* 불안, 시를 쓰는 기분: 심지아의 [이웃들]

* 깊이의 무한함과 몸의 순간: 이장욱의 [핀란드]

* 새로운 생명파 : 김중일의 [체온의 탄생]

* 나의 수난극 : 정재학의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 '귀 없는 토끼'라는 감각 기계 : 김성대의 [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 신(新)에밀: 김승일의 [에듀케이션]

*'그것'이 '있다' 황인찬의 [그것]

* 물결과 숨결 : 성동혁의 [그 방에선 물이 자란다]

 

3부  쓴다, 쓴다, 쓴다,

* 쓴다. 발 없는 새처럼, 빛나는 쟁기처럼 : 최승호 시인과의 대화

* 이장욱은 어디에 있는가

* 희미한, 너무나 희미한, 그는 '거의 모든 세상'이 되려 한다: 조연호의 글쓰기

* (어디선가)(누군가)(무엇인가)쓴다: 김언의 [소설을 쓰자]

*문제는 거울이 아니라 주체다 : 황성희의 [엘리스네의 집]

* 언니와 물고기와 계단의 시간 : 이영주의 [언니에게]

 

4부 시를 쓰는 것과 시를 말하는 것

* ' 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 김수영의 [시여 침을 뱉어라 ]

* '여성 - '되기' 와 ' 시 - 하기 ' : 김혜순의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

* 김춘수가 '산문시'를 가지고 사유한 것들 : 김춘수의 [한국 현대시 형태론]

 

 

 

	그 소녀에게는  그것이 투쟁이었을 것이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기 위한, 너의 눈빛을 피하지 않기 위한 투쟁. 그것은 너에게 질문을 던지고 너의 질문을 받아 안기 위한, 너에게 쉽게 절망하지 않기 이한 , 너에 대한 사랑을 어렵게 지속하기 위한, 결국은 너에게로 가기 위한 먼 길 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생각하면 모든 길은 너무나 멀면서도 깜짝 놀랍게 가깝다. 시는 사랑의 신발이자 사랑의 몸처럼 끊임없이 움직인다. 시는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옆을 본다는 것, 너의 침대를 본다는 것, 너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는 것, 그/그녀의 투시 불가능한 생의 옷자락을, 피부를 만진다는 것, 나를 벗어나서 길을 잃는다는 것, 그 모든 시의 동작에 고통과 용기와 기쁨이 함께 하길......  P 29     *** 8 글을 쓸 수 없었던 때 시가 찾아오지도 않고 시를 찾을 수도 없을 때가 있따. 시가 잘 안되더라도 쓰고 버리고 쓰면서 시를 찾아야 한다고 선배들은 말했다. 써 보려고 해도 잘 써지지 않고 그래도 어떻게든 썼는데 버려야 하는 원고들만 쌓일 때, 나는 그 지루함을 잘 참아 내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까지 시를 쓰는 일에 있어서 의도적이고 자바적인 공백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 한 달, 두 달을 못 쓰고 지내게 되는 때는 왕왕 있었다. 세 번째 시집 [타인의 의미]를 내고 나서는 6개월가량 시를 못 썼다. 시를 미루고 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길을 잃는 시간, 헤매는 시간, 헤매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 찾고 있는 것이 있었을 텐데....., 길을 잃어버리는 방식이 새로운 길을 찾는 방식이라면, 나는 더욱 무모해져야 하리.  P 36     얼마 전에 제 얘기를 들은 시인 최승호 선생이 이를 테면 백화점 에스켈레이터의 거울을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에스컬레이터의 벽 거울이 낮으면 거울의 세계에서는 머리 없는 사람들이 우르르 올락고 내려가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머리 없는 사람을 보았겠지요. 그런데어째서 우리에겐 머리 없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는 걸까요. 제가 그랬듯, 착시(錯視)라고 또는 거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거울 속의 머리 없는 사람이 거울 바깥의 머리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일것입니다. 착시도 아니고 거울의 문제도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지 않았기에 '머리 없는 남자'는 사라져 버린 것이죠. 내가 당연하게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과 어긋나는 사태를 맞닥뜨렸을 때 나의 앎과 믿음을 의심하는 것보다 먼저 내 눈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문제로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일 겁니다. 내가 잠시 잘못 보았다고 , 헛것을 보았다고, 귀신을 보았다고 생각해 버리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의 지평은 변경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기지(旣知)의'앎'을 폐기하고서라도 '감각'(이를테면'눈')을 좇아가는 시적 모험이 있습니다. 문학적인 행위는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실을 질문 속으로 데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보다 훨씬 큽니다. 현실은 언제나 현실 이상(以上)입니다. 착시 속에서, 거울들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현실이 불쑥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착시도 거울도 아닌 현실의 맨살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알고 있는 현실이 거대한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끝끝내 의문을 남겨두는 것, 질문의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 문학적인 대답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머리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어느 날 녹색 그늘이 짙은 가로수 길에서 머리 없는 사람을 따라가다가 머리 없는 사람의 그림자를 놓쳤을 때, 문득 내게는 여러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가로수와 가로수의 간격은 법으로 정해져 있을까. 발과 발을 모으고 서서 뽀족한 자세로 그런 생각을 해 가로수와 가로수의 사이는 다정한 곳일까 무서운 곳일까 달리는 자동차와 달리는 자동차의 사이에 대해 생각하고 치여 죽은 것들과 죽어가는 것들로부터 너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경적소리가 되고 싶어 모두 빨리 대피해야 합니다 이 도시를 텅 비웁시다   -[ 가로수의 길 ] 부분 -  P 43     **** 가로수 논쟁 ..... 과학적인 의견과 시적인 의견은 어디서 어떻게 교차합니까? 자본의 관점과 생태론의 입장과 예술의 포인트는 각각 어디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어쨌든, 은행나무와 버즘나무는 전체 가로수 수종의 80 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교목입니다 가로수 수종의 단순성은 풍경의 단순화를 가져옵니다. 바야흐로 가을, 서울에서 가을의 풍경은 은행잎이 물드는 속도와 노오란 은행이파리들이 은행나무를 떠나는 양태가 그 인상을 주도합니다. 환경미화원이 담당하는 일정한 역할 또한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낙엽의 양과 노동의 양은 , 그리고 감정의 양은 어떠한 상관 그래프를 그릴 것 같습니까? 가을에는 가을의 감정을, 11월에는 11월의 감정을, 오후 3시에는 오후 3시의 감정을..... , 어쩐지 너무 많은 것이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   P 45       데리다는 네우마에 대한 [음악사전]의 정의를 위와 같이 옮겨놓았따. 데리다가 루소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는 바를 좀더 따라가 보자. 네우마를 "미분절된 언어, 즉 공간적 간격이 없는 음성 언어" 의 모델로 상정해 볼 수 있다. 간격, 차이, 불연속성, " 자연적 표현에서 이러한 차연을 없애는 데 가장 적합한 듯이 보이는 것은 숨결이 아닌가? 말하고 노래하는 숨결, 언어의 숨결이지만 미분절된 숨결 말이다. " " 네우마는 순수한 모음화 (모음의 발성)이고 , 미분절되고 말이 없는 노래의 형태로서 , 숨결을 의미한다. 그것은 신의 영감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고 신에게만 호소할수 있는 것이다. "  " 신만이 신 자신을 베풀어 주는 대리 보충으로 부터 면제되어 있"으므로 P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