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제1관

 

베스트셀러 / 밤과 낮 / 사탕을 줄게 / 키스論

모조 숲- 길 / 새의 얼굴 / 가위 잠 / 거리의 식사 / 일요일의 정부

치과에 가자 / 연애 시대 / 어떤 새벽 / 리듬 / 모델 / 모조 숲 - 말

유령 독자 / 비행 접시 / 고양이라는 사건 / 고양이라는 증상

가족회의 / 눈의 속삭임 / 검은 고양이소셜클럽

 

제2관

 

스크린  / 모조 숲- 잠  / 내면 연기 / 음악이 분다 / 날씨와 생활

거리마술사/ 셔터 / 터널 / 뮤즈라는 새 / 비 오는 날 우리는

해변의 요리사들 / 모조 숲 - 숨 / 불면증 / 클럽 아프리카

마음의 육체 / 식사의 감정 / 사과나무정육점 / 키스앤크라이

지하식물 / 지하해변 / 스쿨 오브 락樂 / 죽은 새 / 영화적인 삶

 

제3관

전망 좋은 숲 / 구름의 건축 / 시간 / 천사 / 보행자

풀밭의 율법 / 세 사람의 산책 / 우는 사람 / 화장의 비밀

고철로 만든 정원 / 숲의 계단 / 퍼펙트 데이 / 窓

천문학자는 과거를 쇼핑한다 / 죽은 새들의 행진 / 고요한 밤

12월의 악수 / 나무 시절 / 식민지 / 모조 숲

 

작품 해설 / 황현산

의붓어머니의 사랑

 

	제 1관 연애 시대   빈 의자가 연인들을 발명했고, 연인들은 카메라를 발명했다.     < 일요일의 정부>   거리의 종탑들은 말수가 줄었다지만, 이 골목의 종소리는 힘이 넘쳐 따귀를 날리고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 습관처럼 이불을 말립니다. 비가 오면 연못이 되고, 눈이 오면 눈썰매장이 되는 여긴 당신의 테마파크. 병원과 담을 쌓고 아버지만 부르다 죽은 엄마는 당신 이름 석자를 유연으로 남겼지만, 당신은 생면부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는 당신의 치부, 신도들의 세금을 다 털어도 어림없어요. 나를 입양하려면 당신의 피눈물을 투자하세요. 이를 테면 나는 만인의 자식. 진료실 의자에 무릎을 모으고 앉으면 의사님의 아이. 총알택시 안에서 눈을 질끈 감을 땐 기사님의 아이, 얼굴ㅇ을 붉히며 마음의 용돈을 받을 땐 우체부님의 아이, 콩닥콩닥 가슴이 뛸때 마다 죄를 고백하거라. 두 손을 모으고 죽은 엄마는 보이지 않는 죄를 유산으로 남겼지만, 당신은 귀머거리 보스. 그리고 나는 섬섬옥수의 종족. 두 손을 비벼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죄는 정전기처럼 발생하지도 않고, 망원경으로 긁어모은 별들과 현미경 속의 아름다운 벌레들을 죄라고 확신할 수가 없어요. 헬멧에 박힌 머리를 굴리며 일요일마다 당신은 관광을 다니고 나는 두 손의 용도를 궁리합니다. 이를테면 나는 만물의 하수인. 사료 한 줌의 통행세를 길 위에 뿌리며 고양이 각하와 동행합니다. 화분 몇 개의 주민세는 덜컹이는 창문에 사는 바람 각하의 몫이고요. 지붕 위에는 허공을 경영하는 미확인 비행각하도 살지요. 나는 그들의 취임식을 거행하며 손이 닳았습니다. 그들의 포스를 넘보지만 말고 나를 고용하려면 당신의 심장을 지급하세요. 스릴과 로맨스를 패키지로 드릴게요. 이를테면 나는 각하들의 정부, 만국공용의 성감대. 죽음의 상속세가 유예된 사람들은 침대를 타고 월요일의 망명길로 서둘러 떠나지만, 오늘 밤은 우리의 것. 하느님 각하, 눈 뜨고 기다리면 끝내주는 순간이 옵니다. 틀에 박힌 얼굴을 내 품에 묻어요. 내가 죽여줄게요. 감쪽같이 입 닦을게요.     < 치과에 가자 >   얼음이 녹는 속도만큼 우리의 마음도 녹아   오늘은 주머니를 털어 치과에 가자 납작해진 이빨을 뽀족하게 갈고 물컹해진 잇몸에  기둥도 세우고   드릴같은 혀로 핥아 주는 침針의 스케일링 우리들의 혼례   은행나무를 털듯 은행銀行을 털듯 이빨을 털어 치과에 가자   경관들이 거리를 엎지르고 불법무기소지죄로 체포해야겠소 우린 사랑을 나눴을 뿐! 혓바닥을 길게 뽑아 포승줄처럼 몸뚱이를 묶고 물어뜯긴 젖꼭지에서 피가 나도 우린 사랑을 나눴을 뿐!   밀랍경관 좀비경관 복제품들이 기차로 오토바이로 배달 되고 빈 상자가 모두 거덜 나도록 택배원 발바닥에 불이 나도 우린 사탕이나 빨며 치과에 가자   가지런한 이빨처럼 구치소들이 진열되고 때아닌 폭설처럼 치석이 쌓이는 거리   오늘은 무덤을 털어 치과에 가자 젖 먹던 힘 죽을 힘 다해 입을 벌리고 피아노 건반처럼 숨넘어갈 듯 혀망치로 이빨을 두드리자     < 리듬 >   텔레비젼은 창가에 기대어 쪽대본을 연기하고 딱딱한 열 손가락은 물렁거리는 자판 위에. 주방에는 자장가처럼 흐르는 칼질 소리.   잠깐만 기다려. 맛있는 비빔국수를 만들어 줄게 자기야. 먹고 자면 살찔 거야, 얼마나 좋아.   엉킨 면발이 담쟁이처럼 부푸는 입속의 수쳇구명. 하품을 틀어막아도 자꾸만 잠이 와.   깜박거리는 커서는 혼자 총놀이를 하고 델키 한 방이면 몰살되는 글자들은 울지도 않아. 주방에는 비처럼 흐르는 칼질 소리.   빗물에 부르튼 흉터와 굳은 살. 나무벽이 각설탕처럼 녹아내리는 오후   커서처럼 멈춘 두 눈만 깜박깜박. 꿈꿀 대 눈알 굴리는 소리 들어 본 적 있어? 뇌가 쓸모없는 기억을 청소하는 소리야 그건.   텔레비젼은 창가에 기대어 눈물을 말리고 눈알처럼 구르던 나는 나무도마 위에. 아무도 없는 주방에는 칼질 소리.       < 모델 >   난 당신이 좋아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어. 캔버스를 두눈에 끼고 당신을 만났어. 무릎 위에 잠든 당신의 이마 위로 치렁치렁 드리우는 검은 붓털. 헤어져 돌아와도 당신을 그리고. 꿈에서도 당신을 마구 그리고, 방안엔 그림이 넘치네. 우르르 당신을 몰고 나가 화랑에 팔았어. 딴청을 부리는 당신을 그리고, 멀뚱히 뒤돌아보는 당신을 그리고, 난 당신이 좋아서 광장에 팔았어. 캔버스가 필요해서 떨이로 팔았어. 당신을 많이 팔수록 난 캔버스 부자, 당신의 부자, 난 캔버스 왕국을 차릴거야, 당신의 왕국, 산맥처럼 불끈 불끈 이젤을 세우고 나무의 왕국 송충이의 왕국 구름의 왕국도 차리겠지. 난 당신이 좋아서 당신을 몰래 벗기고, 당신을 몰래 덧칠하고, 새벽마다 나이프로 북북 당신을 찢네 .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당신. 그런 당신이 좋아서 난 삐딱하게 흉물스럽게 그림을 자꾸 그리고, 난 당신이 정말 좋아서 나를 그리는 당신을 보고 싶어졌어. 당신을 그리다 말고 포즈만 생각했어. 어느 날 우뚝 두 손을 멈추고 옷을 훌훌 벗었네. 당신이 나를 그리고 나를 팔고 나의 왕국을 차려줬음 좋겠어. 무지개가 뜨지 않는 지하 단칸방이라도 좋겠어. 그러면 우린 같은 왕국에 있을가. 난 당신이 좋아서 당신 몰래 벗고, 당신 몰래 화장하고 , 캔버스 속에 자꾸 불어나 살이 툭툭 터지네. 그런 나를 엉거주춤 바라보는 당신. 그런 당신이 좋아서 난 삐딱하게 흉물스럽게 포즈를 자꾸  바꾸고, 해일과 모래의 협연을 들려주는 휴일의 기상청에 귀 기울이네. 한없이 꿰매진 밤과 낮의 해안선 처럼 , 그러면 우린 정말 같은 왕국에 있을까. 누군가 그걸 알려주려면 그가 우리를 그려 줘야 해. 그만이 우리의 왕국을 차려 줄 수 있어. 난 당신이 좋아서 누군가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로 했어. 포즈를 취하다 말고 누군가만 생각했어. 낯선 그에게 머리털 붓을 한 자루 건네주네. 당신을 잠시 미루고 그에게 그림을 가르쳤어. 그가 우리를 그리고 우리를 팔고 우리의 왕국을 차려 줄거야. 거리의 입간판과 고양이와 음식배달부에게도 붓을 꺼내 주네. 파르르 캔버스에 찍히는 살 한점이 일파만파 밀고 가는 우리의 왕국. 난 당신이 너무 좋아서 온몸엔 물고기가 넘치고, 뻐끔 뻐끔 뼈대 위로 솟구쳐 오르고, 누군가 우리를 겹쳐 놓고 소금같은 첫눈을 뿌리네. 그러면 우린 평생 부패하지 않는 연인처럼 식욕이 넘치고, 광장에 끝없이 펼쳐진 사각의 캔버스들을 의기양양 돌아보네. 그러다 잠깐식 잃어버린 붓을 찾아 흩어지는 우리. 소금기가 마르는 창가에 서면 환하게 들키는 몸속엔 구멍이 참 많아. 서로의 붓이 닿을 수 없는 거리. 그런데 이상하지. 우린 언제부터 여기 서 있었던 걸까. 창 밖에 사람이 없는 날엔 우린 왜 잠만 잘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당신인 듯 나인 듯 낯익은 행인이  천천히 다가오네. 우리를 빤히 마주 보다가 사각 창틀을 똑바로 세우고 지나가네.     < 유령 독자>   약물을 체크하고 간호사는 돌아갔다 뇌주름을 편 유니폼이 하얗게 펄럭였다   파킨슨병을 앓는 무표정한 노인이 벽에 붙어 내려다보았다 길이가 다른 두 개의 팔을 잔물결처럼 떨면서 시계추를 질질 끌고 있었다   팔꿈치를 탁자에 스치지도 않고 문병객들은 흩어졌다 꽃을 안고 오는 사람이 있었으나 두리번두리번 화병을 찾다가 떠나갔다   여자의 맞은편 시트 속에서 봉분처럼 돌아누웠던 사람이 일어나 공중의 갈고리를 끌어내렸다   두 사람은 링거 병에 꽃을 꽂았다 흩날리는 꽃잎들이 마르지 않는 핏방울마다 달라붙었다 외계어처럼 몸에 섞인 피의 누수漏水   피만 보면 호들갑을 떠는 야간 문병객들은 응급 수혈한 연애에 대해 흡반처럼 귀를 모았다 달아오른 귀를 깨물며 그가 대신 속삭였다 내 피가 더럽니   어둠의 폭설이 내리고 몰려다니던 발자국들은 파묻혀 울음소리마져 갇힌 수요일의 동물원처럼   빈가지에 입을 모으고 두 개의 혀로 물고 당기는 한 그루의 時 천천히 마지막 행을 향해   두 사람은 입술을 포갰다 침이 섞인 얼굴로 서로를 낭독하였다 종지부를 드러내듯 입을 다물고 꽃잎이 아물고 피딱지들이 몸에서 떨어지자   약물을 체크하고 간호사는 병실을 둘러보았다 시신을 들어낸 시트 자락이 하얗게 펄럭였다   해가 뜨고 나면 창밖에 나비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손을 흔들면, 가볍게 문질러 지는 고무구름 속으로 가루가 되어 훨훨 사라졌다     < 고양이라는 사건>   길에서 데려왔으니 내가 주인인 거죠 밤과 낮을 끌고 다니는 방울 목걸이는 누구의 목을 매겠다는 암시입니까 자명종처럼 울리며 나를 깨우는 방울 소리 비린내가 덜 마른 내 귀를 깨물고 그는 달립니다 펼쳐 놓은 책을 껌처럼 씹으며 구겨진 원고지를 공처럼 걷어차며 바닥을 활용합니다 식탁에 앉아 침대에 누워 눈높이를 맞추는 그의 사탕 눈알이나 훔치는 나는 손이 모자란 좀도둑 인류가 멸망하면 텅 빈 빌딩들을 꿰차고 고양이들은 날아다닐지도 모른다는데 그건 영상을 보기전에 내가 이미 눈치챈 거죠 나의 보폭과 시야를 넘어 머릿속까지 그는 들락거립니다 밀림의 입양아 타잔처럼 태생을 숨기고 종횡무진 천장에 꼬리를 매달고 번지점프를 하며 허공을 활용합니다 거울 속에 빠뜨려도 꿈속까지 따라오는 그의 나비 걸음이나 흉내 내는 나는 발이 남아도는 무용수 껴입은 털을 긁어내느라 욕실에 납작붙어 있습니다 등을 구부리고 허벅다리를 벌리고 반복적으로 혀를 놀립니다 울컥울컥 털뭉치까지 토하고 나면 요령처럼 흔들며 나를 끌고 가는 방울 소리 그는 배설물처럼 나를 모래로 덮어 수면 상자 속에 넣어둡니다 아침이면 노예시장으로 끌고 가 거리의 고양이들을 불러 모읍니다     < 내면연기>   그렇게 우물거리지만 말고 이리 와 무릎에 앉아 보렴 대화 말고 휴식이 필용한 일요일 오늘은 말을 배우지 않아도 돼, 맘껏 멍멍거리렴 아저씨는 길게 누워 배터리처럼 소파에 꽂혀 있네   이웃집 니키는 아침부터 몸을 뒤집네 그녀는 너무 성숙해서 소리를 지르지 않네 그녀를 움직이는 건 타오르는 고백이 아니라 매뉴얼 침묵 속에서도 작동이 되는 일거수일투족   생명이 없다고 해서 진짜가 아닌 것은 아니야   영화에선 배우들 대신 피 흘리지만 관객들은 모르지, 우리가 울지 않는 건 당신들과 닮았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야 대사가 없는 우리에게도 시나리오는 있네   화면과 객석 사이 아무도 배역을 바꾸거나 엔지를 내지 않네 트랙을 달리는 아이들처럼 주고 받는 대본을 손에 꼭 쥐고   배우들은 노출연기의 달인, 관객들은 눈물연기의 천재 그리고 우린 신체 변형의 전문가들 타이어의 속도와 칼의 각도를 분석하고 색과 화면을 연구하지 극적 효과를 위해 숨도 참을 줄 알지   아무도 서로의 연기를 의심하지 않아 의심하지 않고도 몰입할 수 있다는 건 쓸쓸한 일이야   리얼과 반전이 묘미라지만 내면연기의 진수를 우리가 보여 줄까 봐 안절부절 카메라는 최대한 멀리서 잡는 법   * 니키 : RObert Parigi의 영화 [ Love Object]에 나오는 리얼돌. *이텔릭체는 [ Love Object]       < 날씨와 생활>   검은 수녀 둘이서 귓속말을 나누며 지나간다 입을 살짝 가리는 간지러운 손으로   주머니에 넣어 둔 초콜릿처럼 애인은 녹아 새로 착용한 계절을 더럽히고   사람들은 정지했다 앞서 가던 늙은 바람이 바닥을 뒹굴며 경련했다   야간 산책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커플링처럼 손목에 개 줄을 감아쥐고 날씨를 끌고 다니며 안녕하세요   딱딱하게 굳은 김밥을 씹는 사람들 사이로 냅킨 같은 구름이 흩날리고 풀밭은 떨어진 밥알 같은 새들을 떼어 허공에 털어 댔다   개 줄을 놓친 사람들은 나무 벤치에서 잠들었다 코드가 엉킨 기류를 타고 까맣게 타들어 가는 어둠 속에서   메스를 꺼낸 번개가 사람들을 뒤집었다 목덜미가 번쩍 벌어지고 녹이 슨 경첩처럼 목이 꺾이고   붉은 비가 떨어졌다 풀들이 몸을 젖히고 받아 마셨다   아침 일찍 출동한 경관이 이부자리처럼 벤치를 수습했다 덜 마른 풀밭에서 뛰오놀던 아이들은 고꾸라졌다 엄마들이 달려와 무릎의 피부터 닦아 주었지만 혼자 자란 아이들은 엎드린 채   길 잃은 바람이 다가와 핥아 줄 때까지 초콜릿만 생각했다 검은 수녀들이 귓속말을 흘리며 지나갔다     < 터널 >   그래서 우리는 전진했는가 질주하는 총알들처럼 나란히 줄을 서서 앞지르기는 금물입니다 뒤돌아서도 안됩니다 나트륨램프가 별사탕처럼 박혀 있는 몸 아침과 저녁을 구분할 수 있는가 얼굴이 가려워서 잠시 멈췄을 뿐 미안하지만 나는 충돌한 기억이 없어요 피를 흘리는 당신에게 당신이 지금 밟은 껌 자국은 내 혈흔이었다고 친절한 경험으로 위로하지만 예의는 여기까지   그래서 우리느 ㄴ정지했느가 차선을 바꾸어도 뒤통수만 따라니는 만난 적도 헤어진적도 없는 계절 속에서 열린 듯 닫힌 듯 빠져 나갈 수 없는 몸 입구와 출구를 구분할 수 있는가 새들은 앞 뒤에 무더기로 쌓여 있다 질주하는 시간을 작대기처럼 꽂고 피를 흘리는 나에게 암실에 도착한 당신은 노을 속에서 인화한 나를 친절한 추억으로 돌려주지만 예의는 거기까지     <  세사람의 산책>   당신이 민하씨하고 부를때 나도 함께 그녀를 부르는 느낌이야. 그녀의 뒤척이는 이불이 왼쪽 끝자락부터 걷히는지 오른쪽 부터 걷히는지, 횡단보도를 건널때 내가 부르면 뒤돌아보는지 나도 궁금해지는 느낌이야. 당신이 우리. 하고 입술을 내밀 때 나도 두근두근 두 사람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 혹시라도 들킬까 봐 테이블 밑에라도 숨어야 할 것같은 느낌. 여의치 않으면 눈이라도 질끈 감아야 할 것 같은 느낌 . 그래서 손이 떨려 땀을 닦던 손수건을 떨어뜨리고 당신이 이런, 하면 바닥까지 내려가 동그란 등을 섬처럼 밀어올릴때 도벽처럼 몰래쓸어 보고 싶은 느낌. 당신이 여기하며 손수건을 훨훨 털어 건넬때 그녀의 손에 내 손을 얹어 당신 손끝을 스치는 두 겹의 느낌. 손수건이 해처럼 가볍게 떨어지고, 그래서 손과 손사이 지평선처럼 갈라질때 허공은 뜬 손은 양 날개가 찢어지는 느낌. 장난꾸러기 당신이 안녕, 하고는 그녀가 입가에 매달려 지켜보는 이빨들을 베란다 창문처럼 꽉 닫을때 그녀를 안고 구천지하로 함께 떨어지는 느낌. 당신이 아뿔싸, 하고는 달려와 그녀를 어깨에 떠메고 기어올라 갈 때 밑도 끝도 없는 계단이되어 두사람을 끌어올리는 천근만근의 느낌. 당신이 그녀의 허파에 깊숙이 혀를 찌르고 인공호흡을 할 때 아아 그녀의 입술에 벤다이어그램처럼 내입술을 이리저리 포개는 느낌. 그렇게 입을 맞추는 당신의 등위로 올라가 먹지처럼 당신을 문지르면 그녀의 내장까지 고스란히 내몸에 복사되는 느낌. 당신과 함께 눈을 뜬 그녀가 나를 두고 천천히 멀어질 때 천둥 같은 뒤통수를 전봇대에 번쩍번쩍 박아대는 느낌. 다시 얼굴을 뒤집는 햇살처럼 천연덕스럽게 두 사람을 미행하는 느낌. 어느 날 날짜를 세던 당신이 걸음을 멈추고 열두 계절을  초대하는 천 일의 만찬,녹기시작한 눈사람처럼 파르르 입술을 떨며 러브샷을 외칠때 빵을 나르던 민하씨가 조용히 달려온다. 포도주를 따르던 내가 당신의 늘어진 귓볼을 빨며 그녀를 슬쩍 곁눈질하는 느낌. 그러면 내 혀에  녹아들던 당신도 바람의 곁눈질하는 그낌. 그러면 내 혀에 녹아들던 당신도 바람의 곁눈질 속으로 영영  달아날 듯 한 그 느낌.     < 비행접시  / 이민하>   냅킨 아래 표정을 들키지 마세요 식사후 가지런히 내려놓는 젓가락 처럼   몇 개의 치아를 입속에 치켜들고 인사합시다 웃을 땐 송곳니와 덧니를 잇몸에 넣어요   필요하다면 내 입술을 베끼세요   빈 접시가 날아가듯 네 개의 발이 공중에 떠 있는   고양이는 말을 아낍니다 바람속에서 뒤집는 몸이  대화의 전부입니다   이륙과 착지 사이에서 한 칸 씩 미끄러지는 커터칼 발톱   필요하다면 내 사랑을 오리세요   당신이 움켜잡은 건 몇 칸의 기록 그보다 먼저 활자를 나르는 빈칸들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우리는 배치됩니다   떠날 땐 죽은 피와 생피를 담장에 묻어요 몇 방울의 혈액을 입가로 뱉으며 인사합시다   솜이불 속에서 가지런히 일어나는 발가락 처럼 러그 위의 날들을 숨기지 마세요   공중에 뜨고 나면 흔적도 없는 바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