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식에 대한 최소한의 묵념은 하고 읽으시기를....

 

< 목차 >

작가의 말을 대신하며  :  여기는 감옥, 나는 나비다

 

1부, 꿈꾸는 청춘

5월 어느 푸르던 날 / 그 잡부 숙소를 잊지 못한다 / 깡패 큰 아버지 잘 가시라

아버지의 자리 / 봉분 없는 무덤

 

2부, 가난한 마음들

어느 비정규직의 사랑 이야기 / 동생의 행운목 / 사우나 가는 길

크리스마스에 사라진 아이들 / 한 무명시인의 죽음

 

3부, 이상한 나라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 굿모닝, 우리는 오늘도 안녕한가

이 땅에선 꿈꾸는 자 잠혀간다 / 울릉도에 기증된 기타의 진실

추도시 낭송이 폭력시위조장?

 

4부, 잃어버린 신발

대추리에서 보낸 한철 /누가 황유미를 죽였나요

작은 코뮌, 기륭 / 시대의 망루, 용산

내일로 가는 닥트공

 

5부, CT 85호와 희망버스

김진숙와 '85호 크레인'  / 희망버스를 지켜주세요

세상에 없던 버스들이 온다 / 어머니의 희망버스

희망의 근거

 

	< 가족사진 / 송경동 >   이불 밖으로 나온 발가락이 60개 였다   손가락은 하나가 부족했다 아부지 오른손 검지였다   엄니가 집 나간 명절, 서울 고모네 다 모인 자리에서 이제 말 배워가는 다섯 살 막내가 아부지 똥삼봉 들었다고 했다   쯧쯧거리던 입들 공터에 버려져 울던 막내   그래서 네 남매도 따로 놀기를 좋아했다   생각하니 아직도 다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없는 듯 하다     4천도다리 용접 불똥이 살을 김밥처럼 말아갈 때 악을 쓰며 어딘지 모를 원한에 찬 비명을 질러본 사람들은 안다. 검게 탄 얼굴이 부끄러워 발바닥을 문지르는 숫돌로 얼굴을 밀고 그 위에 덕지적지 크림을 발라본 사람들은 안다. 손톱 밑 때가 부끄러워 악수 한번 하면서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 버스 전철 손잡이를 잡지 못한 채 손을 웅크려본 사람들은 안다. 그 쓰라린 소외의 자리들을.     <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 송경동 >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방학숙제가 밀렸다고 걱정일 거예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고봉밥 한 그릇이 남아 있어요. 짜장면 몇 가락이 아직 남아 있어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엄마는 식당 찬모일, 아빠는 새벽 기계일 다니다 보니 호자 놀던 아이예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이젠 우리가 아이들의 철봉이, 미끄럼틀이, 시소가, 그네가, 동물원이 돼줄게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이젠 절대 혼자 두지 않을게요. 이젠 정말 상처 주지 않을 게요. 이젠 정말 야단치지도 무시하지도 않을게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그 해맑은 웃음을, 변덕을, 토라짐을, 칭얼거림을 돌려보내주세요     그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아니, 죽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의 시집 [저 꽃이 불편하다]를 펼치면서 어느 시가 제일 맘에 드냐, 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봄비]라는 시를 짚었다. [봄비]라는 시는 이렇다   누군가 내리는 봄비 속에서 말한다 공터에 홀로 젖고 있는 은행나무가 말한다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힘든 네몸을 내려놓아라   네가 살고 있는 낡은 집과, 희망에 주린 책들, 어두운 골목길과 늘 밖이었던 불빛들과, 이미 저질러진 이름, 오그린채로 잠든, 살얼음끼는 냉동의 시간들, 그 감옥 한 채 기다림이 지은 몸속의 지도   바람은 불어오고 먼 데서 우렛소리 들리고 길이 끌고 온 막다른 골목이 젖는다 진창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는 아잇적 미소가 젖는다 빈방의 퀭한 눈망울이 젖는다 저 밑바닥에서 내가 젖는다   웬새가 은행나무 가지에 앉아 아까부터 나를 보고 있다 비젖은 가지가 흔들린다 새가 날아간다     **** 세계 산재 노동자 추모의 날  1993년 4월 28일 태국의 심슨인형 제조공장에서 188명의 노동자들이 죽은 대형 화재사고가 일어났다. 평소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갈지 모른다며 공장 문을 잠가두는 바람에 탈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매년 4월 28일을 '세계 산재 노동자 추모의 날'로 정해 세계노동자들이 함께 산재 추방을 외치고 있다. 혀냊 13개국에서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으며, 110개국에서 매년 공동행사를 열고 있다.     하지만 실제 과격한 것은 이 사회다. 초과 착취에 열을 올리는 자본의 숨가쁜 시계 초침을 따라가다 1년이면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로 죽어가는 사회다. 일자리를 제공받지 못하고,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복지를 제공받지 못하고 삶의 벼랑으로 밀려 아이들을 껴안고 자살하는 이들이 꼬리를 잇고 있는 사회다. 미필적 고의를 넘어 나는 그것이 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합법적인 살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살아 있다 해도 거개가 정신적 내상에 시달려야 하는 장애의 천국이다. 심리치료만으로는 감당이 안되어 이젠 미술도, 음악도, 문학도 모두 정신병 치료에 나서야만 하는 사회다. 내가 넘어서고 싶은 사회는 이런 부조리한 사회다.   당신의 머리를 짓이기고 간 것은 레미콘으 바퀴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이 땅을 돌리고 있는 저 거대한 자본의 수레바퀴 착취의 수레바퀴다   비정규직은 그냥 짓이기고 가도 된다는 무서운 경고   특수고용직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미 짜인 각본 팥죽도 진흙탕도 아니고 노동운동쯤은 그렇게 우습게 짓이겨버리고 갈 수 있다는 그렇게 짓이기고 가도 아무 일 없다는 계획된 살인 예비된 점탈   그래서 우리는 선포한다 당신의 죽음은 당신 하나의 죽음이 아님을 이 싸움은 1,500만 노동자 전체의 자존심을 건 싸움임을 800만 비정규직, 200만 특수고용직 80만 한국노총, 70만 민주노총 400만 농민, 100만 실업자, 수급자, 불량자, 자살자 이름을 빼앗기고 이 땅에서 쓰레기 인간으로 천대받는 모든 민중의 분노를 담은 결사항전, 불퇴전의 항전임을   우리는 선포한다   우리는 너희가 보낸 무지한 레미콘 바퀴하나와 싸우지 않고 우리 또한 너희의 머리를 자를 것이다 너희의 맨 윗대가리를 짓이겨 민중 앞에 사죄케 하리라 착취와 수레바퀴보다 더 거대한 노동자 민중해방의 수레바퀴로 너희를 밀어버릴 것이다     ** [너희는 고립되었다 ] 시..   조선시대 화가 최북은 오랜만에 주문을 받아 산수화 한 점을 그려주고 는 도리어 핀잔을 받았다고 한다. "아니 왜 산수화에 산만 있고 물은 없는 거요?" 짜증이 난 최북이 얘기했다고 한다. "아, 이눔아, 화폭 밖이 다 물이여, 그게 보이지 않아?" 최북은 후대에 '조선의 고흐'로 기억되는 이다. 몇 푼 그림값으로 술을 머고 돌아오다 눈밭에서 얼어죽었다. ............... 샤갈은 러시아혁명 1년후 150미터나 되는 천에 혁명기념화를 그렸다가 오히려 혁명분자들로부터 경멸을 받았다. 150미터면 가난한 노동자들의 옷을 몇벌이나 만드는지 아느냐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이시우 작가가 그의 홈페이지에 적어둔 짤막한 잠언 몇 마디 붙여두고 마친다. 아무리 봐도 그는 훌륭한 사진작가, 평화운동가, 통일문제전문기자에만 머무르지 않고 참 좋은 시인의 눈을 갖고 있다.   빛에 젖는 어둠과 어둠에 적셔지는 그 격렬한 고요   상처는 아픔이면서 교훈입니다. 용기만이 제 상처에서 교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시인은 제사장이라고 했던가. 고인의 분노가 고스란히 내게 전이 되어 손이 떨렸다. '안녕!'이라고 써두곤 한참을 눈을 감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삶의 망루에 서서   철거민들이 죽었다. 하루아침에 빼앗긴 주소지를 들고 평지에서는 오갈 곳이 없어 하늘로 망루를 쌓고 올라갔다가 아예 저 하늘로 밀려 올라갔다. 그렇다. 이 땅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가진 게 없는 자들은 어차피 이방인들일 뿐이었다. 민들레 씨앗처럼 조그만 짐보따리들을 이고 지고 평생을 떠돌다 끝내 정주하지 못하고 떠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이 지구에 잠시 세들어 사는 사람들, 어떤 시인처럼 이세상에 잠시 소풍왔다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마음이라도 편할까.   스무살 무렵 시를 처음 배울 때 '아, 이 이야기야!' 하며 감탄했던 흑인 여류시인 '니키 지오바니(Niki Giovanni)'의 시구를 잊지 못한다. 대략 이렇다. "나는 어떤 백인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대신 써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가난과 절망을 노래해 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당시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흑인 공동체 공간인 할렘에서 살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였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재개발해줄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누가 무엇을 보상해줄 수 있단 말인가. 50층 짜리 매머드 복합상가가 들어선다고 한다. 현대판 재개발의 대부분은 이런 공동체의 무덤 위에 세워진 학살의 증표일 뿐이다. 생각해보라. 서부 개척시대에 미합중국 대통령이 인디언 추장에게 땅을 팔라고 했다 한다. 인디어 추장의 답장은 아름다웠다 " 이 하늘과 땅과 자연은 우리의 것이 아닌데 어떻게 팔라 하냐"는 대답이었다. 이윤만이 목적인 기업과 정부는 우리의 모든 삶의 국민들을 분절해 상품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오만은 정신병일뿐이다. 어떤 살인자보다 더 파괴적이고, 집단적이고, 폭력적이고 , 계획적인 타살 음모일 뿐이다. 용산 철거민들은 그런 우리 사회의 오만과 폭력에 이해 계획적으로 살해되었다.     마음은 있되 전문 문학인이 아닌 건설일용노동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초인을 요구하는 살인적인 노동,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어울리는 장시간 노동, 하청에 재하청을 타고 내려오며 뜯겨진 쥐꼬리 임금, 일거리를 쫒아 전국팔도를 떠돌아야 하는 작업의 성격은 건설일용노동자들에게서 여유와 문화를 빼앗아 간다. 학생들에게 찾아오는 방학처럼 1년에도 몇 번씩 쉬어야 하는 대마치 기간(일이 끊겨 쉬어야 하는 시간)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기간이 오히려 건설일용노동자드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눈앞에 닥친 생계의 위협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다 들린다. 삶은 늘 도망치고 싶은 저주의 대지로만 여겨진다. 한시라도 미래에 대한 공포를 잊고 싶은 치욕과 모멸의 시간이다. 그런데 그런 삶을 스스로 기록해내야 한다니. 써봤자 온갖 삶의 비루함으로 가득 찬 글일것이다. 하지만 최경주는 끈덕지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냈다. 오히려 당당하게 썼다. 너무도 생생하게 자신에 대해 주변에 대해 썼다.  그의 글속에서 사람들은 추문이 되어 버린 도덕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간교한 생활의 법에 충실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의 글이 자꾸 전태일 평전의 후속편으로 읽혀졌다. 전태일 평전이 평화시장 어린 노동자들의 평전이라면 , 이란주의 [말해요, 찬드라]가 이주노동자들의 평전이라면 , 최경주의 글은 비로소 세상의 볕의 쬐게 되는 건설일용노동자들의 평전이다. 사회민주화가 거의 완성된 양하고 , 전태일 열사의 삶이 영화로 만들어진 지도 벌써 10여년이 지났지만, 이제야 그들의 삶이 기록물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사회적으로 묻혀져 왔고 철저히 소외당해 왔다.   길쭉한 방은 열댓 명이 누워자면 팔이 꼭 끼어, 잘 때는 팔에 지퍼를 달아 떼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날마다 할 정도로 비좁았다. 옆사람에게 짓눌려 팔이 저리고 어깨가 아파도 옆으로 돌아누우면 자리가 더 좁아져 다시는 바로 누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좀처럼 돌아눕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중략 ) 신발장도 방에 있었고, 세숫대야, 수건, 칫솔 등 젖은 물건으로 늘 축축하던 방에는 빈대가 들끓었고, 경상도,전라도,제주도등으로 오사리 잡탕들이 모여 있던 그 방에는 애초 그들이 고향을 떠날때 싸들었던 보따리보다 더 컸을 청운의 꿈이 슬라브벽에 얼룩진 빈대 핏자국처럼 흔적만 얼룩 덜룩 남기고 있었다. 아이들은 몸을 긁적이면서도 빈대가 득실거리는 담요를 서로 잡아당기며 짧고 고단한 청춘을 빈대에 피를 빨리듯 사그리뜨리고 있었다. (중략 ) 100원짜리 옥수수 식빵을 사다가 밤중에 이불을 덮어쓰고 쥐새끼처럼 빵을 파먹던 성자, 태숙이들, 자면서도 "잘못했으예" 잠꼬대를 하며 흐느끼던 영숙이, 미숙이, 상남이 들. (중략) 설날 보온밥통 선물을 들고 모처럼 뿌듯하게 찾아간 고향집 아랫목이 너무 따듯하고 갑자기 너무 맛있어서 휴가 지나고도 이틀을 더 눌러 앉았다가 출근하자 마자 유리성 안에서 빰이 붓도록 얻어터지고 "엄마 회사가 무섭다. " 밤새 눈물로 편지를 써놓고는 부치지 못한 채 그 무서운 곳으로 날마나 향하던 어린 옥선이, 태자, 미숙이, 딸끔이 들. 결국 나는 그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되어주지 못한 채, 내 스ㅡㅅ로 에게도 아무것도 되어주지 못한 채 짐가방보다 더 큰 설움과 두려움만 한보따리 안고 그곳을 나와 해운대 백사장의 아이스크림 장사, 신문배달, 우유 배달 등으로 전전하게 된다. - [그 시절의 이력서] ([소금꽃나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