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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기보다는 어떤 고통이, 나태한 슬픔이, 졸린 정체(停滯)가 크나큰 상처처럼, 공동처럼 열려있다. 그 상처와 공동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거기 그렇게 펼쳐져 있는 여린 색채의 풍경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고려 적 노래 <청산별곡靑山別曲>의 그 구절처럼 자고 깨기만 하면 눈물과 울음으로 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슬퍼서 울고 배고파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 심지어 즐거운 일이 있으면 이번에는 즐거워서 운다. 아메리카의 슈우 인디언들은 잘 울기로 이름난 종족이라 하지만 그들도 결코 우리를 따르지는 못했으리라...
가까운 예로 라디오 다이얼을 돌려보면 알 것이다. AFKN 방송을 들으면 '우는 소리'는 여간해서 들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 방송을 들으면 10분이 멀다 하고 울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사극이건 현대극이건 우리의 방송극은 울음의 경연이라 할 수 있다. 영화도 역시 우는 것이라야 상품이 된다.
오직 우리만이 그 복잡한 혓바닥의 미각을 언어로 가려 나타낼 뿐이다. 먹는다는 말부터가 얼마나 다양하게 쓰이는 것일까? '나이'도 먹고 '더위'도 먹고 '공금公金'도 먹으며, 심지어는 '욕'까지도 먹는다고 한다. 사람의 성격을 평가하는데도 '싱거운 놈, 짠 놈, 매운 놈'이라고 한다. 외국인들이 들으면 식인종이라고 의심할런지도 모를일이다.
결국 우리의 '설움'은 정신적인 것보다는 육체적인 데서 오는 것, 더 까다로운 말로 하자면 형이상학적인 '슬픔'이 아니라 형이하학적인 '울음'이었던 것이다.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많은 것을 가르켜 "손톱은 슬플 때마다 돋고 발톱은 기쁠 때만 돋는다." 라고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손톱이 발톱보다 더 잘 자란다는 데서 그런 비유가 생긴 것이지만, 그것을 더 깊이 분석해보면 그 기쁨이나 슬픔은 정신의 성장이 아니라 육신의 성장을 좌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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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슬픔(sadness)은 어원 그대로 이렇게 포식뒤에서 생겨나는 것이었지만, 우리의 울음은 포식 이전에서 허리띠를 죄며 흐느끼는 눈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눈물'은 낭만적인 것도, 시적인 것도 아니었다, 산문적인, 너무나도 산문적인 눈물, 현실 속에서 울음 일 경우가 많다.
가족을 '식구'라고 하는 것도 따지고보면 우스운 일이다. 영어의 가족(family)은 '봉사자'란 뜻에서 나온 것이지만 '식구食口'는 밥을 먹는 입이란 뜻이다. 즉, '식구가 많다'란 말은 곧 먹는 입이 많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가족도 단순히 먹는 입으로 따졌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다 같은 우연 속에 내맡긴 행위라 할지라도 '윷'은 '주사위'에 비해 한층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육면체의 주사위는 개개의 면이 각각 독립적인 운명을 나타내고 있지만, 윷은 하나하나의 윷가락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서 그 연관성 아래 비로소 결정적인 의미를 형성하게 된다.
윷가락 하나마다 엎어지고 젖혀지는 운명이 있고, 또 그러한 운명들이 합쳐진 전체의 운명이란 것이 있게 마련이다. '주사위'는 어디까지나 '홀로 있는 운명'이지만 '윷가락'은 '서로 있는 운명'이라고 볼 수 있다.
서로 관련된 운명성 -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의, 특히 그 한국적 사회풍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서구를 꿰뚫고 흐르는 인간의 힘은 한 개인의 영웅주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좋다는 말 대신에 '괜찮다'라는 말을 쓰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괜찮다는 '관계하지 않는다'라는 긴 말이 줄어서 된 것이다. 현실에 관계하기만 하면, 나라 일에 관계하기만 하면 목숨을 잃었다. 죄 없는 처자식까지도 억울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혹은 쓸쓸한 귀양살이에서 눈물을 거문고로나 달래야 했다. 즉, 관계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다. 자연을 사랑했기에 그들이 반드시 풍월을 엎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달을 사랑하는 님프(요정)의 넋이라고 했다. 달을 너무도 그리워한 까닭에 별을 시기하게 되고 끝내는 그 때문에 제우스 신의 노여움을 샀다. 그리하여 달도 별도 없는 곳으로 쫒겨나게 되고 달님은 그 님프를 불쌍하게 여겨 그를 찾아다녔다. 제우스신은 그럿을 눈치채고 구름과 비를 보내어 그들의 사랑을 방해했다. 연연한 그리움을 안고 나날이 야위어가던 님프는 드디어 숨을 거두게 되고 그 넋은 어느 언덕에 묻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풀 하나가 생겨나고 어두운 밤에 홀로 달을 기다리는 외로운 꽃이 피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달맞이꽃이다.
그런데 우리의 토속어로는 그것을 '도둑놈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물론 요즈음은 그 꽃을 '달맞이꽃'이라고 하나, 그것은 월견초月見草를 우리말로 그냥 옮긴 데에 불과하다. 생활에 여유가 없었떤 이 백성들은 밤에 피는 그 꽃의 자태에서 달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쓰라린 현실의 일면을 보았다. 다른 꽃들은 모두 어둠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데 홀로 깨어 피어있는 꽃이 있다면 아무래도 좀 수상하다는 생각이다. 즉 '도둑놈'이 아니냐는 것이다.
저 가냘픈 풀에게 어째서 '도둑'이란 이름을 붙여야만 했던가? '도둑놈의갈고리', '도둑놈의지팡이'...이러한 풀 이름에서 우리가 느낄수 있는 것은 사물을 보는 그 따뜻한 눈망울이 아니고 도리어 살벌하고 경계에 찬 피 맺힌 눈초리다.
'옥잠화'나 '봉선화'같은 한자식 풀 이름에는 그래도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순우리말로 된 그것은 거의 쓰레기 같은 이름들이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여우오줌', '쥐오줌풀', '코딱지나물'....그것으로도 모자라 심지어는 '개불알꽃', '홀아비X' 등 입에도 차마 담지 못할 망측한 이름들이 많다.
아름답게 생긴 꽃에 그래도 멋있는 이름을 단다는 것이 '기생풀'정도인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래야 겨우 기생과 비교한 것이다.
여름밤 풀숲에서 이슬처럼 번쩍이는 '반딧불이 '를 보고 보통은 '개똥벌레'라고들 부르고 있으니 그 상상력의 빈곤함에 스스로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수 없다.
초목이나 꽃에 대한 민요를 보아도 그렇다.
방귀 뽕뽕 뽕나무
방귀 쌀쌀 싸리나무
밑구녕에 쑥나무
가 아니면,
칼로 베어 피나무
목에 걸려 가시나무
덜덜 떠는 사시나무
말라빠진 살대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입맞췄다 쪽나무
따위의 노래다. 기껏 나무를 보고 생각한다는 것이 '방귀'가 아니면 '피'가 흐르고 , 깔고 앉고, 덜덜 떨고 하는 처참한 모습밖에는 머리에 떠오르는것이 없었나보다.
일본인을 그러니까 침략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말을 바꾸면 민족성이 그만큼 잔인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같은 소재의 설화를 놓고 비교해 보더라도 그렇다. 일본의 설화 가운데 < 시타키리스즈메>는 우리의< 흥부 놀부전>과 내용이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의 그것은 놀부가 일부러 제비의 발목을 분지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일본 것은 참새의 헛바닥을 자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무리 포악한 놀부라도 그는 감히 혓바닥을 자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역시 참새의 '혓바닥'을 자르는 것을 상상해낸 것은 일본적인 것이다. 제비의 발목을 분지르는 것과 참새의 혓바닥을 자르는 것은 그 잔인성에 있어서 비교도 되지 않는다.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일본 것은 그렇게 악독하고 잔인한 냄새를 풍긴다.
일본인들은 '죽겠다'가 아니라 '다이조부大丈夫'란 말을 쓴다. 걱정말라는 뜻이지만 그 한자가 의미하듯 사내대장부란 말에서 비롯된 말이다. 우리는 남아다. 그까짓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무사의 마음을 갖고 살려 했다.
'모로타로'가 달콤한 '경단'으로 개와 원숭이와 꿩을 꾀듯, 한편으로는 상냥한 미소를 가지고(경단),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서슬 푸른 '칼'의 잔인성을 가지고 ' 잇슨보시'는 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동아줄만을 믿듯이 "구스리 바회에 디신달 긴힛단 그츠리잇기"라고 섧게 섧게 노래 불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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