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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하나의 무게로 돌아앉은 나
강 하나의 깊이로 앓아 누운 그녀
- [선禪] /허운 스님 -
"침묵은 사랑스러운 말을 고르기 위한 긴장, 성실함을 찾기 위한 더듬거림 같은 거죠. 사찰은 그 침묵 안에서 자기 존재를 볼 수 있는 각도를 갖고 있어요."
"내가 부처님도 아니고 도를 깨달은 조사祖師도 아니니 안 괴로울 수가 없지. 그러나 공空한 줄 아니까 괴로움에 발이 빠지진 않아요. 저기 보이는 옅은 구름은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흩어지짆아. 구름이란 게 인因과 연緣의 조건으로 생겨난 것이란 걸 알면 허공은 그대로 허공입니다.
중국 남송의 승려 무문혜개의 [나우]라는 선사가 있다. 내용인즉, 소가 제 근본을 잊어 이 밭과 저밭을 지나지 아니하고 이 근래에는 더욱 멍에 쓰기를 두려워한다. 외양간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살찌우는 것을 잊고 푸른 버드나무 아래에서 자연을 즐긴다. 요즘 인간사로 치자면, 호화주택에서 호의호식하며 더 높은 권위에 앉기 위해 평생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이 아니라 초탈해서 산다는 의미이다.
홍시도 찔러보면 익은 만큼 들어가지요. 수행이란 것은 자기를 잘 익어가도록 두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설익은 것을 함부로 드러내고 함부로 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경계해야지요. 어찌 보면 수행은 똑똑해지는 공부가 아니라 멍청해지는 공부거든요."
"깨달음이나 이상향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는 죽고 저잣거리에 있어요. 저는 나태해질때면 새벽시장이나 병원 응급실에 갑니다.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간절해지지요.
산에 올라 낚싯줄 드리우는 사람 내려다보니
종일토록 구구히 물결 위에 드리우네
백 개의 개울 한없는 물을 탐하며
그 자리가 근원인 줄 알지 못하네
- 용이 선사 -
"깨닫기 전까지는 눈 귀 입막고, 어떠한 생각도 소견도 내지 않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고 가질 수 있는 마음 인 것 같아요. "
사자심중충獅子心中蟲, 사자의 몸안에 있는 벌레가 사자를 다 잡아 먹는거예요.
스님이 문득 물으신다.
'태어날 때 정신 차리고 나왔나?"
그럴리 없다. 정신없이 나왔다. 그러나 기억도 안 난다. 또 물으신다. "지금 정신 차리고 사나?'
그럴리 없다. 정신없이 산다. 그러니 눈물도 안난다. 또 물으신다.
" 정신없이 죽을 건가?"
스님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정신없이 태어나 정신없이 살다가 정신없이 죽는 인생이라니..... 계속해서 이 상태라면 아마도 그 럴것 같다.
" 정신없이 죽으면 다음 생에 또 정신없이 태어나겠지."
스님은 차근차근 이번 생을 걸어가는 것이 세세생생(世世生生)을 거듭해서 깨달음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여긴다. 스님을 뵙고 삼배를 드리자 말씀 하시지 않았던가.
* 세세생생世世生生 : 몇 번이든지 다시 환생하는 일
'삼성반월三星半月이지요. 내가 어렸을 때 은사 스님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냐 하시대요. 휘어진 반달에 별 세개가 있으니 그것은 마음 심心자 였어요. 부처님은 마음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
큰 스님들에게 가서 아무리 질문을 해도 의문은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독학하고 체득했다. 눈도 귀도 입도 몸도 의식도 없다는 것을 지식으로만 새기다가 참선을 하던 중 깨우쳤다 채우지 않고 비워내니 부처님의 진리가 스며들었다. 공부는 하지도 않고 제집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스님들이나 법의를 입었다고 다 구도자인 듯하는 스님들에게 각성 스님은 말씀하신다.
"그리울 땐 마냥 걷지. 가끔 부모님 사진을 꺼내 볼 때가 있어요. 살아계셨을 때 주셨던 사랑을 아직도 내게 주고 있는 것 같아. 인연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어느날 설총이 원효를 찾아가니 빗자루를 던져주며 마당을 쓸라고 하지요. 설총은 원망의 눈빛으로 아버지인 원효를 바라보자 원효가 말하지요.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 P 88
"음식을 잘못 먹어 탈이 났다고 해서 어찌 밥을 안 먹겠습니까."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세상의 모든 것을 잘 굴려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의 씨앗안에 화와복이 같이 있으니 그것을 어떻게 잘 조절해서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인것이다.
한 사람이 너무도 미워서 괴로울 때가 있다.괴로우니 그 미움은 자꾸 덩치가 커진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결국 내게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면 괴로울리 없다. 반대로 어느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씨앗도 내 안에 있다. 나를 괴롭히는 근심도 나를 울게 만드는 불행의 원인도 다 내 안에 있는 것이니 대체 누구를 탓할 것인가. 나 자신을 위해 , 괴로움을 떨치기 위해 , 그를 향한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것이다. 나만이 나를 죽이고 나만이 나를 살린다.
" 이일이 도적이 될수도 있고 부처님의 말을 금구 일 수도 있어요.
"
" 이 생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내가 초대해서 온 것입니다. "
스님은 선방에 앉아 있던 어느 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으로만 자비를 말할 뿐 자비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방에 앉아 관념적으로 헤매이고 있기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자비롭게 감싸야겠다고 생각했다.
전기도 전화도 없는 토굴에서 살다가 사회에 나와보니 어려운 사람, 따뜻하게 손잡아줘야 할 사람, 법문을 해줘야 할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스님은 깨달음의 사회화보다는 불성의 사회화를 더 중요시한다. 깨달음의 결과물을 사회에 적용시키기보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불성을 빼서 쓰고 또 채우는 것, 그것이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스님은 도심 한가운데 앉았다.
스님과 차를 마시는 동안 문밖에서 비가 후드득 쏟아진다. 꽃들도 나지막이 모여앉아 스님의 법문을 한 잔 두잔 받아 마시니 세상이 다 말끔하다. 그래서 내 마음이 청정하면 온 세상이 청정하다고 했다. 저 깊은 산중에서도 이 도심에서도 제 스스로 아름답다고 청정한 저 꽃들을 보라.
" 힘 안드는게 어디냐?"
그러고 보니 사는데 힘 안드는 일이 없다. 먹고자고 싸는 일에도 힘이 쑥쑥 들어간다. 설렁설렁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 생에 나들이라도 온 듯 정신줄을 놓고 다니지 말란 말씀이다. 그러니까 넘어져서 무릎이나 깨고 다니는게 아니냐는 다그침이다.보조국사는 "땅에서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라" 했다. 넘어진 곳에 주저앉지 말고 그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라는 말씀인데 나는 주저앉아 히죽히죽 웃고 있었으니 그것이 철산 스님의 눈에 안 보였을리 없다. 농부는 힘들여 농사를 짓고 수행자는 힘들어 정진하는 이순간에 말이다
"현대인들이 도자기를 접하게 되면 정서적 불안이 해소 돼요. 차를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서 '일가구家口 일 茶器' 운동을 하고 있어요. 다기에 차를 마시다보면 담소를 나누게 되잖아요. 애기를 하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의식을 이해하게 되고 의식을 개혁할 수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 되어가지고 내가 나를 몰라요"
우리는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몸뚱아리를 나인 줄 알고 산다. 그러나 나라고 믿고 살아온 물질적인 육체는 내가 갖고 온 것도 아니고 본래 내것도 아니다. 입었던 옷이 떨어지면 새 옷 갈아입 듯 ,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잠시 입고 사용하는 몸뚱아리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몸을 가꾸느라 일생동안 업만 짓고 사는 중생인것이다.
"그리운 사람 못 잊는 걸 오매불망寤寐不忘이라 하잖아요. 그런데 수행에 어찌 오매일여가 안 되겠습니까. 나와 나 자신이 싸우는 것이 참선이고 수행입니다. "
" 사람마다 숙업宿業이 있어요. 그것에 끄달리지만 않으면 되는데, 그게 수행인줄 알고 끄달리면서 사는 사람이 많지요.
* 숙업: 지닌 세상에서 지은 여러가지 선악의 업
지기 때문에 , 유한하기에 아름답지요. 생명은 지렁이에게도 하나,바둑이에게도 하나 올챙이에게도 하나 나에게도 너에게도 하나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지요.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뭘까요? 죽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중생을 구제하지 않으면 스님은 스님이 아닙니다. 선방에 앉아 있기만 하면 아무리 깨달았다고 한들 무슨 소용입니꺄. 저 깨닫지 못한 중생의 아픔은 누가 덜어주나요. 승僧 , 사람 인人 변에 일찍 증曾자가 있으니 사람이 일찍 된자, 즉 스승아닙니까. 그 스승의 길을 간분이 부처님이잖아요."
계율을 보면 자신의 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깎지 말라고 했다. 스님이란 자는 공부도 혼자하고 밥도 혼자 탁발托鉢해 먹으니 남에게 부탁할 일, 머리 숙일 일이 없다. 그러나 한 달에 두어 번 머리를 깎으며 머리를 숙이라고 있는 계융이 아니겠냐는 말씀이다. 그러니 머리 숙이고 살라는 말씀이다.
책 속의 글귀는 자라지 않아요. 그러나 사람 가슴속에 심으면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 계속 자라지요. 어려서는 글자로만 보였던 구절들이 어떤 인연을 만나 알게 되고, 늘 변화무쌍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 다른 나무들의 이파리는 다 낙엽이 됐는데도 수양버들 이파리는 아직도 남아 있어요. 왜일까요? 부드럽기 때문이예요."
"진짜 마음은 바꿀수가 없잖아요. 진짜 마음은 빌릴 수도 없잖아요."
" 심심할 때가 좋은가, 감사할 때가 좋은가?"
알 수 없다. 심심한 것도 감사한 것도 나쁘지 않다. 스님이 허허 웃으신다.
" 감사한 것은 그 동안의 불행이 사라진것이니 감사한 것이고, 심심한 것은 걱정이 없으니 행복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심심함 다음엔 무엇이 올까요? 심심하니 쓸데없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밖으로 나가 놀게 되니 불행이 찾아옵니다. 그러니심심할 땐 화들짝 놀라 자신의 상태를 알아 차려야 해요. 이미 불행을 잉태하였으니 참회로써 그것을 감사함으로 옮겨 놓아야지요."
"펄쩍 펄쩍 뛰어 다니세요. 몸을 쉴새 없이 돌리세요. 신도들이 찾아와서 살기 팍팍하다고 하면 백팔 배를 신나게 시켜버려요. 뼈에 사무치도록 무언가 노력해 본적 있어요? 무르팍이 까지도록 일심으로 절해봐요. 그렇게 해서 껍데기를 다 걷어내고나면 본래 내모습이 나와요. 그러면 아픈 곳에 약을 많이도 필요없고 단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된단 말입니다. "
" 어느 철학자의 말이 요즘들어 생각이 많이 나요. 젊을 대 늙은이의 사고와 행동을 할 줄 알아야 하고 나이가 들어선 젊은이의 행동과 실천력이 필요하다고 ."
" 수행이라는 것은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생사의 고통에 직면하지 않으면 발심이 힘들어요. 중생의 괴로움과 아픔을 외면하고서는 수행도 힘들지요."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자신이 금덩어리라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실천한 분이 부처님입니다. 자기를 바로 보아 금덩어리라는 것을 알고 살자는 것이 큰 스님이 늘 선사로서 우리 중생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
스님은 자유인이 되어 주유천하周遊天下하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살아왔다. 자유는 무언가에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서 벗어나는 것이라 말씀하시더니 문득 바랑을 걸머지신다.
"난 내가 참 어벙하다고 생각해요. '무념無念'이니 꾀가 없잖아요. 자신의 모습을 아는 사람은 꿈이 있어요. 꿈이 있는 사람은 모방이 없어요. 모방이 없다는 것은 창의가 있다는 것, 즉 지혜가 있다는 것이지요."
스님은 우리에게 하루쯤은 '조건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하신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거창한 꿈을 꾸면서 모든 것을 가지려고만 하니 불만만 쌓이고 결국 방전이 디어 제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건 없는 날'을 정해서 그날이라도 고요 속에서 충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비우는 것이라 하신다. 스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비우고 세상을 바라보기를, 그렇게 강해지기를 기도한다.
" 우리가 지구에서 볼 때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해가 지지요. 변함없는 진리에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뜬다는 것은 생生이고 진다는 것은 사死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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