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그 열매를 거둘 수 없다' 는 성경말씀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내 영혼마저도 하루속히 썩어 사라질 날들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해도 그 환경이나 처지를 탓할 것이 못됩니다. 이 어린 뱀장어를 한번 보십시오. 심해에서 갓 태어난 이 어린 뱀장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산란을 마치면 어미 뱀장어가 곧 죽어버리기 때문에, 어린 뱀장어만 살아서 난류를 따라 대륙연안으로 2~3년에 걸쳐 긴 여행을 떠납니다. 이때 어린 뱀장어는 백색의 반 투명체로 , 물의 중압감에 눌러 모양이 댓잎과 같아지기 때문에 이를 댓잎뱀장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댓잎 뱀장어는 깊은 바닷속에서 태어난 자신의 환경을 결코 탓하지 않습니다. 온갖 고통을 다 견디고 차차 강어귀로 찾아들면서 몸이 볼록해지고 본격적인 뱀장어가 됩니다. 우린도 이와 같이 어린 댓잎뱀장어처럼 꾸준히 스스로의 삶을 참고 견디고 전진하려는 데에서 삶이 꽃피고 본격적인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P61
" 우리가 정원의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꺾어 꽃병에 꽂듯이 하느님도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먼저 꺾어 천국을 장식한다. 애야, 이제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 P 64
" 그건 물론 땅위의 직업을 갖는 것이지요, 땅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직업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잘 몰라요."
" 향기란 사라져야만 향기야. 무조건 멀리 간다고 해서 진정한 향기가 아니야. 향기란 살짝 스쳐 사라짐으로써 영원히 존재하는 거야. 향기가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냄새에 불과해 ." P92
원래 달팽이는 암수 한몸이므로 다른 달팽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한 몸 안에서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도 또한 하나였다. 만일 서로 사이가 나빠 싸우기 시작하는 날이면 한 몸 안에서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달팽이들은 다들 부부 사이의 금실이 좋았다.
" 낙타가 우리를 살렸는데, 어떻게 그 새끼를 죽일수 있단 말입니까?" 둘째 대상은 첫째 대상의 말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첫째 대상은 둘째 대상의 말을 묵살하고 선한 눈빛을 지닌 낙타 새끼를 죽였다. 어미 낙타가 보는 앞에서 새끼를 죽여 셋째 대상과 함께 모래속에 묻었다. 그리고 멀리 사막의 언덕을 보며 말했다. " 낙타는 자기 새끼가 죽어 사막에 묻히면 오래도록 그 장소를 기억합니다. 그래서 우리 대상들 가운데 누가 죽어 사막에 묻을 때는 낙타 새끼를 죽여 함께 묻습니다. 나중에 어미 낙타를 데려오면 그 무덤을 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낙타는 자기 새끼에 대한 모성이 강하지요. 당신도 언젠가는 나처럼 어쩔 수 없이 낙타 새끼를 죽이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 P 160
" 기다림은 우리를 결코 썩지 않게 만든다" 는 어느 젊은 시인의 말을 기억하는 한 나는 결코 썩지 않을 것입니다. P 180
" 정상에 있는 놈일수록 맛이 아주 좋아. 약효도 아주 뛰어나지. 위장병이든 신경통이든 관절염이든 아픈 데라면 두루 다 좋아. 오죽하면 골리수(骨利樹)라고 했겠나. '나무 수'자 말고 '물 수'자를 써서 골리수(骨利水)라고도 하는데,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마시고 무릎이 퍼졌다는 얘기가 있어. 도선국사가 백운산에 몇 달동안 가부좌를 하고 나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무릎이 잘 펴지지 않더라는 거야 그래서 바로 옆에 있던 고르쇠나무를 붙들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그만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그 나뭇가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그걸 마셨더니 당장 무릎이 퍼졌다는 거야." P 191
모래는 작지 않다
모래는 바위다
고통과 인내의 크기는 바위보다 크다. P 225
어느덧 많은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젊은 시인이 늙은 시인이 되었고, 마침내 사람들은 장미를 장미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장미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이 바뀌어도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게 있었다. 그것은 장미의 향기였다. P228
수평선엔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어떤 갈매기가 수평선을 입에 물고 날기도하고, 또 어떤 갈매기는 한순간에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기도 했다. 그는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갈매기들이 왜 수평선너머로 사라지는지 알 수 없었다.
수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또 수평선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연달아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 졸졸 시내가 흐르는 그런 평화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일까
그는 매일 바닷가로 나가 수평선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수평선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P 248
"내가 네 발보다 큰 신발을 사준 것은 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 였다. 그건 항상 여유를 가지고 살라는 뜻에서였다.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바쁘게 세상을 사는 것보다는, 조금 헐거운 신발을 신고 좀 여유 있게 걸어다니며 세상을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P 252
하인은 주인의 채찍질이 끝나자 마당 한구석에 고개를 쳐박고 하염없이 울었다. 하인은 아무리 꽃으로 만든 것이라 할지라도 채찍은 채찍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p 254
개구리의 몸에도 개똥벌레와 똑 같은 반딧불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개똥벌레는 배에 루시페린이라는 물질이 있어 공기가 들어오면 그것이 반응을 일으켜 빛을 내는데 , 개똥벌레를 많이 잡아먹은 개구리의 몸에서도 그 물질이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개구리는 신이 나서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소리쳤다.
"우와! 나도 이제 별이 된 거야. 내 몸에서 빛나는 이 별빛을 좀 봐! 너희들보다 더 아름답지 않니ㅏ?"
개구리가 별들을 보고 그렇게 정신없이 소리치고 있을 때였다. 두꺼비 한 마리가 개구리의 몸에서 나는 불빛을 보고 가만히 다가와 그만 개구리를 덥석 삼켜 버렸다. p 256
'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는 속담이 왜 생겼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날씨가 나빠지면 땅 위의 벌레들이 낮은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제비도 벌레를 잡기 위해서는 자연히 땅 위에 닿을 정도로 낮게 날아다닐 수 밖에 없스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늘이 캄캄해지면 새들이 바쁘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 그것 또한 비가 올 것을 대비해 새들이 급히 먹이를 구하러 나온 것입니다. " P 258
젖가슴은 사람들이 자기를 젖무덤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듣고 기분이 아주 나빴다. " 왜 하필이면 무덤이야. 무덤은...."
젖가슴은 그날 저녁 거울 앞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젖가슴은 잘 익은 과일처럼 여전히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 이렇게 아름다운 가슴을 무덤으로 표현하다니, 사람들은 전부 돌았어.!" 젖가슴은 새삼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젖무덤은 그런 젖가슴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젖무덤은 조용히 젖가슴에게 다가가 타이르듯 입을 열었다.
"너는 인간의 가슴이 결국은 인간의 무덤이라는 걸 모르는 구나. 인간들은 자식이 죽어도 가슴에 묻고, 부모가 죽어도 가슴에 묻는다. 넌 어째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가?"
종메는 종을 칠 때 사용하는 나무 봉으로, 나는 지금까지 종소리를 낼 때마다 종매한테 무수히 얻어맞은 셈이었다. 그렇게 종매한테 얻어맞을때마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내 몸에 상처가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P 290
"너무 완벽하면 무너지는 군. 좀 허술한 구석이 있어야 해."
김씨는 밭두럼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중얼거렸다.
유채꽃이 그 말을 듣고 바람에 흔들거렸다. 유채꽃은 바람에 온몸을 내맡겨야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P 303
" 해마다 잎도 나기 전에 꽃부터 먼저 피는 나무들이 끼치는 폐악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봄은 그들에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봄을 알리는 것 또한 그들만이 아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개나리나 진달래니 철쭉이니 목련이니 하는 꽃들만 보고 봄이 온 것을 먼저 압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꽃들의 사회에서 평등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는 지적이 줄곧 있었습니다. 이 땅에 봄이 오는 것은 몇몇 특정한 꽃들의 명성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그 어느 꽃나무도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개나리에게 묻겠습니다. 개나리는 이제 봄이 오면 잎보다 먼저 꽃이 피어나서는 안됩니다. 이 약속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
"네".... P 364
" 선생님 , 그런데 그때 왜 한사코 손으로 두 눈을 가리셨습니까?"
"하하, 그게 그리 궁금한가? 나는 나를 때리는 학생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어. 수양이 모자라는 내가, 나를 때리는 학생의 얼굴을 본 이상, 그 학생에게 늘 나쁜 감정을 가지게 될 게 아닌가? 그래서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그랬네 ."
학생들은 김교사의 말에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다. P 370
|
같은책 다른리뷰 | 이 책에 대한 다른 리뷰도 읽어보세요.
어른을 위한동화
이전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