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화보 : 삶에 대한 신념과 의지의 예술

작품론 : 고독한 나그네의 꿈 . 이형기

작가론 / 영혼의 안식을 위한 소요 . 임헌영

조병화 연보

 

시

목련화 / 후조 / 추억 / 소라/ 낙엽끼리 모여 산다 /

임해 교실 / 하루만의 위안(慰安) / 봄 / 황혼

서산 나귀 /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 차창 / 비는 내리는데

파리 / 솔개 / 홍콩 / 죽음으로 직행을 / 고독하다는 것은

지금 너와 내가 /  공존의 이유 / 낮과 밤 / 한 걸음

소망 / 편지 /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의자 / 해인사

기로(岐路) / 롱아일랜드 강용홀(姜鏞訖)옹 댁 /

전화 / 편지 / 시간 / 청춘에 기를 세워라 / 사랑은

오산 인터체인지 / 호수 / 연인 / 어느 해수욕장

벗 / 자유상(自由像) / 어머님, 너무 멉니다 / 해마다 봄이 되면

하리잔 / 홍반(紅班, 데카)을 미간에 찍은 여인들 / 꿈

종달새 / 안개로 가는 길 / 손 / 네오로맨티시즘 /

어느 존재 / 절벽 / 난(蘭) / 나의 노래 / 때때로 나귀는

겨울나무 / 사랑, 혹은 그리움 / 사랑 / 이오니아 바다의 돌

천적(天敵)  / 먼 그 약속 / 혜화동 / 입원 일기

노변의 꽃들 / 서울로 가는 도야지들 / 바닷가 여인 /

지금, 이 깊은 밤에 / 돈 / 해 / 염적(炎寂)/ 가을길

크레믈린 궁내에서 / 옛 장터 / 늘, 혹은

세월 / 가을 / 고궁에서  / 길은 / 안개

무지개 / 지금 나는 / 모래밭의 발자국 / 황홀한 모순

나의 생애 / 작은 보따리 / 낙타의 울음소리 / 내일

고요한 사랑 / 꽃을 파는 어린 소녀 / 파이프를 청소하고 있노라니

밤중에 걸려 오는 전화 는 / 나의 존재 / 개구리의 명상 .1

개구리의 명상 39 /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 그리움을 남기면서

길 위에서 / 세월의 속도 / 피 묻은 지폐 / 어느우화

고향 / 살이 있는 것이 공기처럼 / 물망초 /

환자가 누워 있는 침실 / 정물 / 시인(詩人)의 사랑

인간은 죽었다 / 이별이 / 병실은 태고처럼 / 고승과 시인

 민들레꽃 / 내게 당신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

멸망의 삼단논법 / 나무 / 신(神)은,

무상(無常) / 여행 보고 / 혜화동 로터리 / 연회(宴會)가 끝나면서

나의 생애/ 고요한 귀향 /  꿈의 귀향 / 늙는다는 것은

오늘도 이렇게 / 시(詩)를 살다 보니 / 묵은 편지를 버리며

어느 노인의 유언 / 차에 흔들리며 / 고요한 참회

인간 존재만이 녹색(綠色)이로다 / 예술(藝術)의 뿌리 / 마지막 노자

 

산문 / 나의 문학적 고백

나의 습작기 시절

* 부록 : 육성 CD (  시낭송 / 조병화 )

 

 

	< 고독하다는 것은 >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요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 황홀한 모순 >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 훗날, 슬픔을 주는 것을, 이 나이에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기쁨보다는 슬픔이라는 무거운 훗날을 주는 것을, 이 나이에   아, 사랑도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것은 씻어낼 수 없는 눈물인 것을, 이 나이에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헤어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적막   그 적막을 이겨낼 수 있는 슬픔을 기르며 나는 사랑한다, 이 나이에   사랑은 슬픔을 기르는 것을 사랑은 그 마지막 적막을 기르는 것을.     <연회(宴會)가 끝나면서 >   연회가 시작되고 가슴에 꽂아 준 장미 한 송이 연회가 끝나자 소용없이 되면서 버리기가 애처로워 집으로 가지고 와서 작은 유리컵에 꽂는다   작은 유리컵에 꽂은 꽃을 애처롭게 며칠 보다간 아주 시들기 전에 꽃잎을 하나 하나 따서 두툼한 책갈피 사이에 눕힌다   이제 며칠이면 물기 하나 없는 납작한 미라로 되어 있으려니 이 고요한 꽃잎의 미라는 언젠가는 하나하나 미지의 독자들에게 편지 답장에 끼여 먼 곳으로 가려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 이 꽃송이 한 송이 애처로움이 어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눈물이 아니라.     < 늙는다는 것은 >   대수롭지 않은 말을 하다가도 어느 말 한 마디에 걸려 눈물이 나서 말을 이어가지 못할 때가 많아진다   혼자서 책을 읽다가도 어느 화면, 그 상황, 그 말에 말려들어 가족 몰래 눈물을 찔금거릴 때가 많아진다   길을 가다가도, 그 장면, 그 상황, 그 말이 머리에 떠오르면 부질없이 눈물이 고여 길을 멈출 때가 많아진다   웬일일까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인데 밥을 먹다가도 이야기를 하면서도 단상에서 강연을 하다가도 애국가를 부르다가도   늙는다는 것은 이러한 것이런가 이렇게 연해져서야   아, 내겐 느끼는 것이 모두 눈물이어라     ** " 인간은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방황하는 것이다 " - < 파우스트 > -     *** 나뭇잎도  떨어져서      겨울이 되고 보니      아! 사랑도 다 갔구나      ......      ......    < 블란서 시인 고티에 >    자기 것이 아닌 그 생명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에겐 애착이 생긴다. 그리고  그 애착은 또 우리에게 숨 가쁜 일을 저지르게 만든다. 실상 인간이 갖는 일체의 집착은 생명에 대한 이 애착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집착을 버리고 빈손의 나근로 살고자 하는 조병화가 그 생명을 "잠시 빌려 쓰다 돌려 두고 가는 "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사리의 당연한 귀결이다. 말은 집착을 버린다 했지만 실제로 그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집착을 버리자면 잊어야 하는데 잊어야 할 대상이 서로 마음을 주고 받던 정다운 사람일 땐 고통이 너무 크다. 그러나 한번 만난 사람은 언젠가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사리를 깊이 통찰하고 있는 사람은 만날 때 이미 헤어짐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 일세     < 남남.30>   열어도 열어도 모자라는 마음 보여도 보여도 모자라는 마음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는 마음   아, 너와 나의 깊은 외로움은 너와 날 모르게 한다 너와 나의 깊은 노여움은 너와 날 모르게 한다 너와 나의 상하기 쉬운 깊은 하늘은 이렇게 너와 날 모르게 한다   슬픔은 그에게 지난날에 대한 망각 다음에 오는 혹은 망각현상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정서의 하나로 삶의기본감성이 되어 준다.   슬픈 유령처럼 떠도는 입김아래 끝없이 연속하는 사람들이 부질없이 밤을 기다리는 것은 슬픈 채 돌아간 사람들을 위하여서는 아니다. ...... 약하기 때문에 강한 것이 생명이라 알았다 그러기에 원래가 삶이 슬픈 것이었고 슬픈 삶의 환멸의 흥분을 나에게 주고 간다                          < 호올로>     슬픔의 이유를 이 시인은 " 알아 갈수록 슬퍼지는 것"(<남은 우상을 위하여 '>) 이라 해명한다. 과거와의 단절. 외로움, 슬픔으로 이어지는 이 시인의 정서는 그 현실적 연계점을 '밤'과 '창'이라는 모순된 시어에서 찾고 있다. '밤'이 어제와의 단절로서의 망각을 상징한다면 '창'은 망각속에서 다시 그리워짐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미래지향성 의미를 지닌다. 이 시집 전편에서 빈도수가 꽤 많은 이런 일련의 술어들- 밤, 슬픔, 창 -은 그 극적인 정서의 고양과 효과 를 위해 '비'를 동원하기 일쑤이며, 사실 조병화 시엔 비가 많이 내린다. 즉 이 시인은 밤과 비를 즐겨 자신의 입장과 심경에 비겨 노래를 하는 한편, 인위적인 것으로는 그와 대조적으로 창으로 긍정적인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미래지향성 입장을 나타낸다.   나 아닌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다 행복치 않은 나를 위하여 행복치 않은 곳을 방황한다 내 무서운 미래를 잠시 잊어버리기 위하여 무서운 곳으로 점점 깊이 기어 들어간다.   - < 낙엽수 사잇길을 걸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