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례 >

 

제1부

 

序詩  / 白露  / 바람아  / 너  / 이름 / 그리움

나의 노래 / 사람들의 마음  / 갈대  / 新綠을 보며

내 친구의 양계 / 불빛을 찾아  / 그물 / 시흥의 봄

후꾸도 / 어느 늦가을 저녁 / 標的 / 먼동 / 바람이 불면

의자  / 정님이 / 후회

 

제2부

벌판으로  / 찬비 속에서 / 면 회 / 光 州 / 여름 속에서

고요한 가을 / 다시 형님에게 / 대숲에서는 / 오늘을 울자

갈 길 / 南 녘 / 서울길 / 노래하는 딸들 / 가을이 와도

야음 / 빗소리 / 솔  / 引 火

꿈一場  / 텔레비

 

제3부

새벽 들 / 대 침 / 귀 이야기 / 각설이 / 出奔(출분)  * 奔 : 달아날 분

책벌레에게 / 靑盲의 소리 / 가까이 / 밤길 / 형수를 위하여

1974 / 새벽까지  / 귀 향

 

제4부

눈이 내린다 / 소문을 듣고  / 먼 곳으로 간 친구는 낮달이 되어 떠돌고

한강을 지나며 / 반짝이는 것은 무엇인가  / 덕석몰이 / 서영분양

매형  / 어느 辯士  / 옥례 / 滿月 /

머슴 고타관씨 / 마천동

 

제5부

타작 / 오빠 / 마부의 꿈 / 부역 / 흉년 / 삼밭

누룩 / 사할린에서 돌아온 어느 동포  / 푸른 눈과 미늘기 목장

강냉이 / 고추밭에서 / 매미  / 1942년, 침략자의 경기장에 뛰던 수말들

소금 / 採炭(채탄) 

 

* 跋文(발문) - 이성부

* 後記

 

	< 바람아 >   바람아 너희 나라엔 누가 있는가 난 저물면 산에서 내려와 문고리 두드리는 커다란 그림자가 있는가 뒷문 열고 기침하는 늙으신 어머니가 있는가 밤새도록 대밭에서 끄덕이다 땅 끝으로 사라지는 반딧불이 있는가 아버지가 있는가 바람아 너희 나라엔 얼굴도 없는가 서서 멈출 발자욱도 없는가 풀섶을 헤쳐가는 소리 죽인 눈도 없는가 떨리는 가슴 닳을 다음 땅은 없는가 바람아 너희 나라엔 아무도 아무도 없는가                                     < 1976>     <너>   불러다오 밤이 깊다 벌레들이 밤이슬에 뒤척이며 하나의 별을 애타게 부르듯이 새들이 마지막 남은 가지에 앉아 위태로이 나무를 부르듯이 그렇게 나를 불러다오. 부르는 곳을 찾아 모르는 너를 찾아 밤 벌판에 떨면서 날 밝기 전에 나는 무엇이 되어 서고 싶구나 나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 걷고 싶구나 처음으로 가는 길을 끝없는 길을       < 그리움 >   두고 온 것들이 빛나는 때가 있다 빛나는 때를 위해 소금을 뿌리며 우리는 이 저녁을 떠돌고 있는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등불 하나 켜든  이 보이지 않고 등불 뒤에 속삭이며 밤을 지키는 발자국 소리 들리지 않는다 잊혀진 목소리가 살아나는 때가 있다 잊혀진 한 목소리 잊혀진 다른 목소리의 끝을 찾아 목메이게 부르짖다 잦아드는 때가 있다 잦아드는 외마디소리를 찾아 칼날 세우고 우리는 이 새벽길 숨가쁘게 넘고 있는가 하늘 올려보아도 함께 어둠 지새던 별 하나 눈뜨지 않는다 그래도 두고 온 것들은 빛나는가 빛을 뿜으면서 온 것들은 빛나는가 빛을 뿜으면서 한번은 되살아 나는가 우리가 뿌린 소금들 반짝반짝 별빛이 되어 오던 길 환히 비추고 있으니   < 1976>       < 불빛을 찾아 >   아직은 잠들지 못한다 앞서간 형의 밤길 너무 오래고 한 다리 어둠에 빠져 외다리로 걷고 있을지라도 어디선가 타고 있을 형의 불빛을 찾아 아직은 더 함께 이 벌판에서 캄캄하게 술 마시고 노래 불러야 한다. 우리가 함께 누운 벌판, 그대로 벼랑이 될지라도 이 세상의 끝이 되어 형의 발자욱 이미 찾을 수 없을지라도 형과 같이 걷지 못했던 스스로의 발자욱들 되밟고 돌아갈 수는 없는 것 뉘우침의 서로의 뜨거운 발밑에 누워 밤의 늦은 고요 등성이에 누워 용서 받기 위해 더 크게 노래 불러야 한다 땅 끝까지 스미라고 땅 끝의 새벽까지 스며 새벽 힘찬 발소리 들려오라고 벼랑더러 들으라고 하늘더러 대답하라고 찬 흙에 볼 비비며 노래 불러야 한다. 우리들의 숨결에 더운 불빛이 일 때까지                                          < 1976>   < 후회 >   한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 새벽을 후회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밤에 일어나 밤을 후회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의 후회가 모든 밤을 깨울 수 없고 한 사람의 후회가 모든 새벽 밝힐 수 없는데도 후회는 또 밤을 흔들어 한 사람과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사람들을 서로 깨워놓고 오래오래 자기처럼 잠 못 들게 하다                                            < 1976>     < 南 녘>   南쪽 끝은 서러워라 떨리는 손 밀리어 밀리어 떨리는 자유 안고 마지막 와 닿은 변방   눈뜨고 팔려가는 촌년들 치마로 낯을 가리고 돌아보는 거리 나 예까지 오고 말았구나 굴레 쓴 말들 피를 보고 뛰는 거리 재갈을 물고 딸을 팔고도 더욱 씩씩한 입들 오늘은 귓볼 같은 눈이 내려 고요히 덮는구나   촌년아 툇마루에 엎드려 신음 묻은 붕대를 빠는 촌년아 애비가 나오는 光州까지 눈보라 속을 또 걸어서 갈 것이냐   쇠방울 눈을 단 청년들 희번뜩이며 두고 온 나라의 꿈에 얼어붙은 곳 오늘은 또 먼 곳서 피 흘린 사내 하나 등에 업혀 찾아드는 눈 속에 묻힌 南녘     < 가을이 와도 >   가을이 와도 분명한 사람들은 손 들어야  할 곳에서 분명하게 손을 들고 너무도 분명한 곳을 가리키며 망설임도 없이 분명한 코로 길을 건너가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다 돌아보는 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번만 돌아다보라 분명한 자들이여 돌아온 가을은 그렇게 분명하지만은 않다 등뒤로 빠져나간 어떤 가을은 벌판으로 가서 깨밭의 참깨들을 털다가 쌍눈깔의 밭주인에게 뒷다리가 붙잡혀 몰매를 맞는다   가을이 와도 기교주의자들은 더욱 기교적으로 밥을 먹고 기교적인 파란 똥을 눈다 큰 입을 벌려 파란 똥은 이 시대의 최상의 아름다움이라고 떠돌다 기교 최상의 잡지사에서 만나 밤이슬에 젖은 목을 잦혀 탄성을 지른다 그러나 기교주의자들이여 바라보아라 돌아온 가을은 그렇게 기교적이지만은 않다 그대들의 기교적인 웃음에 놀라 창 밖으로 뛰쳐나간 어떤 가을은 거리의 술꾼들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얻어맞고 통금이 지나도 일어서지 못하고 피를 흘린다                         < 1975>     < 야음 >   사람들이 다 잠들기를 기다려 옆집 기계는 야음을 타고 재빨리 돌기 시작한다 털털거리는 발동기 소리는 야음을 틈타 시 한 편을 써볼까 하여 깔짝거리는 내 머릿속을 뚫고 들어와 노오란 플라스틱 젓가락들을 한바탕 쏟아놓고 식식 거린다 올빼미 같은 옆집 주인은 내 골통 속으로 자기네 젓가락들이 새나오는 것도 모르고 야밤의 한밑천에 단단히 흘려 기름을 축이고 숨가쁜 목을 조여 새벽까지 털털거리다 본전도 못 뽑고 기계보다 먼저 곯아떨어진다                                                      < 1975>   < 빗소리 >   출렁이던 가슴들 하나로 외쳐 거기까지 다다르자 했더니 간밤의 먹구름에 뿔뿔이 흩어지고 나 홀로 남아 갔던 길 되짚어오다 갈밭새 후들기는 빗소리 듣는다 이 자슥아 이 자슥아 철썩철썩 내려치다 뽀오얀 볼로 갈대머리 쓰다듬고 가는 카랑카랑한 참빗소리 듣는다  < 1975>     < 새벽 들 >   오금동에서 송파로 넘어가는 방파동 들머릿집, 늙바리 색시와 함경도 주모가 육백을 치다 부둥켜안고 잠든 단칸방에 숨어, 우리는 얼굴을 잃어버린 놈들끼리 어울려 며칠째 술을 마셨다. 이것도 저것도 쌍놈도 배운놈도 답답해 문을 차면 가슴을 주고 싶은 바보 같은 허허벌판, 한때의 터벅머리를 싣고 쏜살같이 모퉁이를 돌아나오는 트럭뒤에서 새파랗게 질린 새벽이 우리를 보자 고개를 돌리고 떨었다. 하나 남은 노모를 묻고 온 삼동이는 주먹을 치켜들고 술상을 엎고, 큰길까지 나갔다가 쫒겨온 고물상 張은 바람벽에 머리를 박고 숨을 죽였다. 한바탕 난장이 끝나고 나면 다시 뜨거워지는 지랄같은 얼굴, 갈 곳 없는 얼굴위에 그리운 눈들, 주모를 깨워 밖으로 내쫒고 정신없이 제 팔을 물어뜯다 돌아보면 옆구리를 치는 어김없는 손, 입을 막는 그 손 앞에서도 내 마음 앞에서도 나, 약해질수 없구나, 목덜미를 얼싸안고 새벽길로 끌려나서면 넉달째 못 받은 노임도, 한칼에 눈 부릅뜨고 넘어지던 심장도 한번 더 잊어버려야지. 밤길에 채어 눈밭에 엉덩방알를 찧으면서도 외팔이, 왜 이렇게 흥겨운 것이 많다냐. 건초더미 위에서 허옇게 썩은 달이 하나 모락모락 떠올라 끝내 이기고 낯들을 정답게 비춰주었다.   <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