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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보는 이상 인간과 생각이라는 단어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중세 시대에 신학은 있었지만 철학은 없었다. 따라서 " 나는 생각하기에 존재한다." 는 데카르트의 말은 인간을 더 이상 신의 피조물로 보지 않고 생각하는 주체로 여긴다는 발상을 담고 있기에 대담한 것이었다.
데카르트의 이 말에는 중세에서 근대로 옮겨 가는 시기에 싹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숨어 있다. 근대적 해석에 따르면 인간은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인간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로댕의 조각상 < 생각하는 사람>을 보라. 또, 언제 봐도 경탄할수 밖에 없는 신비로운 표정의 반가사유상을 보라.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생명체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지구에서 다른 동물을 정복할 수있었던 원천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이었다.
인간의 특질을 사유에서 찾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표현 속에는 인간을 종교적으로 해석했던 중세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던 시기 특유의 낙관적 분위기가 담뿍 담겨있다. 스스로 생각 할 수 있는 인간 , 생각을 통해 지식을 얻고 그 지식으로 자연을 이용하는 능력을 지닌 인간, 곧 호모 사피엔스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의 상징이었다 P18
파베르씨는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다. 제작하는 사람이라는 뜻에 걸맞게 호모 파베르 씨는 기계와 같은 정확성을 꿈꾼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싶어 한다. 그는 자신의 생활 철학을 이렇게 요약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계에게는 체험의 기능이 없으며, 공포나 희망의 감정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런 것은 방해가 될 뿐이다. 결과에 대한 소망도 없다. 기계는 개연성의 논리에 따라 작업할 뿐이다. 그러므로 로봇의 인식력은 인간보다 더 정확하며, 인간보다 미래를 더 잘 진단 할 수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로봇은 미래를 계산함에 있어 투기를 한다거나 꿈을 꾸는게 아니라 스스로의 해답에 따라 결론을 끄집어내며 실수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로봇에게는 예감 같은 것은 필요없으니까.
< 공화국의 자동인형들 >
게오르게 그로츠, 1920 년
호모 파베르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다. 재빨리 실행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다. 역사적으로 그들이 다다른 종착역은 자동인간이었고, 그들의 이상향은 나치 제국이었다. 하위징아의 [ 호모루덴스]는 현대 사회의 호모 파베르를 비판하려는 목적도 지니고 있다.
20세기에 광풍처럼 몰아친 호모 파베르 숭배 열풍은 인류를 어디로 이끌었을까? 과연 호모 파베르는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었을까? 경제적 팽창을 위해 서로 경쟁하던 나라들은 경제적 진보에 더 빨리 도달하기 위해 식민지 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식민지 확보 경쟁이 극에 다다랐을때에 세계대전이 두차례나 일어났다.
19세기에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 만들어졌지만, 그 믿음은 20세기에 전쟁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20세기의 비극이 호모 파베르 모델을 숭상하면서 잃어버린 인간 능력에서 말미암은 것이라면, 비극을 넘어서는 방법은 그 능력을 회복하는데에서 시작해야 할것이다. 호모 파베르를 숭상하면서 인간이 잃어버린 능력은 과연 무엇일까? P 26
******* 문명은 호모 루덴스의 충동이 만들어 낸 산물
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라는 전혀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했을까? 하위징아는 문명이 호모 루덴스이 작품임을 굳게 믿었다. 그는 인류의 문명을 만들어 낸 것이 '사유'도 '노동'도 아닌 '놀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에게 호모 루덴스의 발견은 인류문명사를 다시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한 것과 같았다.
정말 인간이 만들어 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놀라운 건축물들이 있다. 사막위에 우뚝 솟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인도의 타지마할,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이스티 섬의 모아이 군상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런 불가사의한 건축물을 만들어 낸 사람이 누구인지. 도대체 왜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 중략>........................
호모 사피엔스는 사려깊다. 하지만 사려가 깊기에 행동적이지는 않다. 호모 파베르는 부지런하고 계산적이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쓸모가 있는 대상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호모 루덴스는 다른다 죽은 사람을 묻는다면 무덤의 기능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은 피라미드를 만들 수 없다. 먹고사는 문제의 직결되는 유용한 일만 하는 사람이 모아이 석상을 만들리 없다. 피라미드와 이스티섬의 석상에는 '사유'나 '노동'을 뛰어넘는 그 어떤 것이 숨어 있다. 하위징아는 그것이 '놀이' 라고 생각했다. 그가 발견한 호모 루덴스는 인류의 문명을 움직이는 숨어 있는 인간이다.
이렇듯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것들은 호모 루덴스의 충동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흔히 우리는 문화가 놀이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즉, 문화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먼저 생겨난 뒤에 그 터전 위에서 놀이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하위징아는 문화가 놀이를 낳았다는 관념을 의심한다. 오히려 그 반대, 즉 놀이에서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대담한 주장을 펼친다. 그에 따르면 "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 (29) [호모 루덴스]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하고 창조적인 메시지는 바로 노동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켜왔다는 주장이다. 하위징아는 이를 [호모 루덴스]의 앞부분에서 분명히 선언한다.
' 나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문명이 놀이 속에서 , 그리고 놀이로서 생겨나고 또 발전해 왔다는 확신을 굳혀 왔다. ' P 42
로마문화는 호모 파베르의 근면과 성실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에게 유적으로 남아 있는 로마 문화는 명예를 위한 경쟁 에 몰두하는 호모 루덴스의 작품이었다.
하위징아는 중세에 매혹되어 있었다. 그의 [ 중세의 가을]은 19세기 이후와는 전혀 다른 중세의 세계관을 탐색한다. 중세는 모험과 열정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기독교적인 삶은 중세를 완벽하게 지배하지 못했다. 고대 로마에서 찾을수 있었던 원형적인 호모 루덴스의 모습은 중세 시대 이교도적인 모습으로 변형되어 여전히 살아 있었다. 중세의 이상은 근면 성실도 사색도 아니었다. 중세의 삶은 놀이가 넘치도록 가득했다. 사람들의 놀이는 기쁨에 넘치고 자유로웠으며, 신성한 의미를 배제하고 익살로 변해 버린 이교도적인 요소로 가득했다. 또한 장엄함을 과시하는 기사도 놀이, 궁정연애의 정교한 놀이등이 있었다. (340)
***** 호모 루덴스는 생물의 욕구 활동을 넘어선다.
즉각적으로 만족되어야 하는 욕구를 따르는 활동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여기에만 만족 할 수 없다. 하위징아가 발견한 호모 루덴스는 생물적 활동을 벗어나 놀이하는 사람이다. 호모 루덴스가 몰두하는 놀이는 "집단의 안녕과 복지에 봉사하지만, 생활필수품의 획득과는 전혀 다른 방식과 수단으로 봉사(44)한다.
즉각적으로 만족되어야 하는 욕구를 넘어서는 것, 그것이 호모 루덴스가 몰두하는 놀이의 첫째 특징이다. P 54
**** '시체놀이 '하며 혼자 노는 사람은 호모 루덴스가 아니다.
인간의 놀이는 혼자서 할 수 없다. 인간의 놀이는 사회적 현상이기에 '집단'을 전제로 한다.
양쪽 모두 결투를 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성립되기 땜누에 여자가 남자에게 모욕을 당했을 경우에는 보통 대리인을 시켜서 결투를 한다. 그렇지만 굳이 여성 본인의 결투를 하고 싶다고 할 경우에는 남자 쪽에 몇 가지 불이익을 주고 결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여자가 남자가 싸울 때 남자는 신체적 우월함에 대한 불이익으로 허리가 잠기는 구덩이 속에서 여자와 결투를 해야 했다. 결투는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는 절차이지, 결투에 참여하는 사람을 물리력으로 응징하거나 보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따라서 결투의 승패는 상징적인 신체의 훼손으로 결정되었다. P 114
구체적인 목적과 결합되어 있는 앎을 지식이라 한다면, 구체적인 목적과 결합되지 않은 앎을 지혜라 부를 수 있다. 인간은 지식과 지혜를 모두 갖출때 완성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의 앎이 지식으로 환원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구체적인 목적과 결합되지 않은 질문이나 앎은 때때로 경멸당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힐난은 이렇다. " 그거 해서 뭐 할 건데 ? " 이 짧은 문장속에 지식과 지혜에 대한 현대인의 사고가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오늘날 철학자의 지위를 생각해보면, 지식과 지혜의 불균형으로 치닫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아주 잘 볼수 있다. 어떤 대학에서는 취업에 도움이 안되고 지원 학생이 적다는 이유로 철학과를 없애기도 한다. 이런 사고방식에 는 구체적인 목적과 결합한 지식만이 앎의 유일한 형태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P 115
지혜의 경쟁에 대한 흔적은 고스란히 베다에 담겼다. 베다에는 이것이 찬미가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다음 리그베다의 1권 164찬가, 10권 129찬가는 우주의 질서를 묻는 수수께끼와 같은 질문으로 되어 있다.
" 나는 너에게 지구의 가장 끝은 어디냐고 묻는다. 지구의 배꼽은 어디냐고 묻는다. 나는 너에게 종마의 씨앗에 대해서 묻는다. 말씀의 가장 높은 곳은 어디냐고 묻는다." (211)
"당시에 존재도 없었고 비존재도 없었다. 공기도 없었고 그위의 하늘도 없었다. 무엇이 싹텄는가? 어디에서 ? 그리고 누구의 보호 아래서 ? 그리고 이 깊은 심연은 물로 이루어졌을까?
당시에는 죽음도 없었고 죽음 아닌 것도 없었다. 그리고 밤과 낮의 구별도 없었다. 그것만이 숨 쉬었다. 바람도 없이 저절로, 그것 외에는 어디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
누가 그것을 알고 있으며 누가 이 삼라만상이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있음을 말할 것인가 ? (212)
메난드로스가 나가세나에게 묻는다. "알고 나쁜 짓을 한 자와 모르고 나쁜 짓을 한 자는 어느 쪽이 더 죄가 큽니까? 쉽게 대답할수 없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을 들으면 그들 주위에 있는 수많은 청중들은 귀가 솔깃할 테다. 누가 더 나쁘다고 대답할 것인가. 나가세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모르는 채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죄가 더큽니다. " 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궁금해진다. 왜 그럴까? 마치 청중들의 궁금증을 대신하듯 메난드로스 왕이 묻는다. 그렇지만 나가세나는 대답은 커녕 다시 묻는다. " 시뻘겋게 단 쇳덩이를 어느 사나이는 모르고 잡았고 또 한사람은 알고 잡았다고 할 때, 어느 쪽이 더 많이 데이겠습니까? " 왕은 대답한다. " 모르고 잡은 사람쪽이 더 데겠지요? 나가세나는 엉뚱하게 쇳덩이를 잡은 이야기를 되물은 것일까? 나가세나는 대답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르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더 죄가 큰 것입니다. " 이제야 왜 나가세나가 쇳덩이를 잡는 이야기를 꺼냈는지 분명해진다. 이말을 들은 청중들은 나가세나의 지혜에 탄복하며 환성을 질렀을 것이다. P 121
오딘과 바프스푸드니르의 지혜 거루기가 벌어지낟. 바프스푸드니르는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진다. " 인간들 무리 위로 해를 끌고 가는 수말은 무어라 불리는가? " " 동녁에서 밤을 갖고 오는 말은 무어라 불리는가?' " 거인과 신들의 영토를 가르는 강은 무어라 불리는가?" 쉴새 없이 던지는 바프스루드니르의 질문에 오딘은 질문에 못지않은 속도로 대답한다. 뜻밖의 강력한 적을 만난 바프스루드니는 약이 오른다.
이제는 오딘 차례다. 오딘의 질문에 바프스루드니르가 대답해야 한다. 오딘은 묻는다. " 현명한 거인이여, 땅과 저 위의 하늘은 어디에서 왔는가?" " 말해 보라 , 인간 위를 지나가는 달이어디에서 왔으며 해는 어디에서 왔는가?" " 종족들 위로 지나가는 낮은 누가 낳았는가 ? 변하는 달을 가진 밤은 어디서 왔는가?" " 어디에서 겨울이 오며 , 어디에서 따뜻한 여름이 오는가? " 이처럼 오딘은 질문을 끝없이 던지고 바프스루드니르는 이에 질세라 대답하낟.
이들이 서로 던지는 질문과 대답속에서 우주의 생성과 세계의 탄생에 대한 고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있다. 신화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 이 수수께끼 놀이에는 지혜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이 숨어 있다. 또 이러한 수수께끼 놀이는 철학이 자라는 자양분을 제공했다. P 124
하위징아는 소크라테스(B.C 470 ~ B.C 399) 이전 철학자들의 세계로 부터 우리를 안내한다. 소피스트들은 철학을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라고 생각했다. 소피스트는 " 명예로운 자기 선전 " 과 " 논쟁 을 하려는 열망 " 에 사로 잡혀 있었다.
***** 그리스인들의 보드게임, 아프리아
철학을 놀이라고 생각했던 관습은 그리스인들이 주로 실내에서 하던 독특한 놀이로 이어졌다. 소피스트들의 경기는 야외에서 마치 연극처럼 펼쳐졌지만 , 그리스인들은 실내에서 현대인들이 보드게임을 하듯 말로 하는 놀이를 즐겼다.
아포리아 (aporia)는 오늘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즉 난제 (難題)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철학용어다. 그렇지만 아포리아는 본래 그리스인들이 즐기던 실내 게임이었다. 아포리아는 서로 상대방에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상대방이 대답을 하지 못하면 질문을 던진 사람이 이기는 규칙으로 되어 있기에 ,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되도록 어려운 질문을 던져야 하고, 대답하는 사람은 최대한 지혜를 발휘해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아포리아는 가벼운 놀이이지만, 때로는 목숨을 건 경기가 되기도 한다.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경우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이야기의 시초는 스핑크스가 던지는 수수께끼다. 스핑크스는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던진다. ... P 126
아포리아 놀이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딜레마에 빠뜨리는게 좋다. 딜레마는 상대방을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딜레마( dilemma)는 두가지 (di)제안(lemma)이라는 뜻이다. 두 가지 제안을 하고 , 그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선뜻 선택할수 없는 제안을 하는게 딜레마 놀이의 백미다.
소크라테스 이후의 철학자들은 소피스트들의 과도한 궤변술을 비판했다. 그렇지만 놀이의 성격은 그리스 철학의 전통으로 여전히 살아남았다. 이를테면, 플라톤(B.C , 428 ? ~ B.C 347? )의 주요저서는 서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는 단편 소설과도 같은 구성이며, [대화]는 익살극과 유사성을 , [소피스트]에서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원리들이 매우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프로타고라스]에서는 에피메테우스와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유머러스하게 펼쳐지고 있다.( 287)
하위징아는 중세대학의 문답놀이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으며, [문화사의 과제 ]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중세대학 사회의 학문적 체계에 적합한 지적 도구일 뿐 만아니라 그 세계에 알맞은 사유 형태이기도 했다. 중세의 대학은 문자그대로 기사들이 마상 시합을 벌이는 아레나, 또는 김나지움과 같은 곳이었다. 연구자는 그곳에서 진지하고도 위험스러운 시합에 임했다. 대학에서의 활동은 기사들의 활동과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봉헌의식이나 도전하고 투쟁하는 시합의 성격을 띠었다. 중세대학의 활동을 구성하는 것을 바로 종교예식의 형태를 둘러싼 끝없는 논쟁들이었다. 그것은 마상 시합과의 마찬가지로 문화를 창출하는 여러 진지한 사회적 놀이 가운데 하나였다. ( 43) P 132
일반명사와 고유명사가 있다. 나무는 일반 명사다. 지금 우리앞에 있는 어떤 특정한 나무는 고유명사다. 일반 명사가 고유명사보다 우월하고 일반 명사가 고유명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면, 실재론의 입장을 취한 셈이다. 나무라는 보편적 개념이 실재로 존재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구체적인 나무, 즉 고유명사없이 일반 명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일반 명사는 허상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명목론자인 셈이다. 쉿ㅂ게 대답할수 없는 이분법이다.
지적 논쟁은 그 어떤 영역보다 놀이의 원리에 들어맞는다. 호모 루덴스가 단순한 베짱이는 아니었던 셈이다. 호로 루덴스는 지적놀이에서 승리하기 위해 , 상대방을 말로 하는 싸움인 논재엥서 제압하기 위해 전쟁에 나서는 병사가 칼을 갈듯이 논리와 개념을 깎고 다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호모 루덴스가 이렇듯 공부에만 몰두하는 모범생이기만 했을까 ? P 134
이렇게 해서 거인족이 늘어나자 신들의 조상인 부리(Buri)의 아들 뵈르(BOr)는 이미르를 죽였다. 이미르는 죽으면서 엄청나게 많은 피를 흘렸는데, 그 피가 바다가 되었다. 이미르의 뼈는 산과 낭떠러지가 되고, 작은 뼈와 이빨들은 돌덩이가 되었으며, 머리키락과 털은 나무와 풀이 되었다. 신들이 남은 두개골로 땅위를 덮어 하늘을 만들었고, 두개골의 뇌수를 공중에 흩뿌리자 하늘을 떠가는 구름이 되었다. 죽은 이미르의 살 속에 구더기가 생기자 구더기로 난쟁이를 만들었다. 난쟁이들은 보석을 가공하는 대장장이가 되었는데 , 신들이 난쟁이 넷을 잡아다 동서남북 네 귀퉁이를 세웠꼬, 불꽃을 하늘에 박아 별을 만들었다. P139
*** 신화는 집단의 놀이
각 지역의 호모 루덴스들이 만들어낸 세상의 탄생이야기에서 신화의 세계가 시작된다. 신화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다. 신화는 우주와 세계의 탄생을 설명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기도 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공포가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인간은 공포스러운 자연을 설명하고 싶어했다. 오늘날 처럼 자연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기 전에 인간은 신화를 통해 자연을 해석했다. 이런 의미에서 신화는 지식의 체계이기도 하다.
나아가 신화는 인간과 인간사이를 이어주는 끈을 제공하기도 한다. 신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공동의 무리를 형성한다. 오늘날과 달리 고대사회에서는 신화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없었다.
무한정 남는 시간을 활용함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는 '디아고게'였다. 디아고게는 "문자 그대로는 시간을 보내는 것, 또는 소비하는 것" (306)을 의미했지만, 귀족에게 이는 귀족의 품성을 표현할수 있는 매우 중요한 활동이었다. 디아고게를 잘 활용하느냐 않느냐가 바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연결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빈둥거림은 한량이나 백수들에게 어울리는 한심한 행동이지만, 그리스에서 빈둥거림, 즉 디아고게는 우주의 원칙이었다.
** 아름다움은 호모 루렌스의 이상
..료안지의 가레산스이 정원
바위와 자갈로만 꾸미는 전형적인 가레산스이 정원으로 , 절제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단순함 속에 다양한 풍경을 숨기고 있다. 바닥에 자갈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놓는 행위는 수양이자 놀이로, 불교 선종의 정신이 담겨있다.
우리가 만날 고대의 시인이 있다. 현대의 시인은 시를 원고지에 쓰거나 자판을 두드려 쓴다. 하지만 고대의 시인은 입으로 시를 읊조린다. 우리는 대부분 시를 도서관이나 자기 방에서 혼자 읽는 다. 그런데 고대의 시인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사람들은 시인의 시를 눈으로 읽는것이 아니라 귀로 듣는다. 입으로 시를 말하는 고대의 시인을 바테스(Vates)라 한다.
우리는 보통 '시'하면 가슴을 울리는 서정적인 단어들의 모음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바테스의 시는 우리가 으레 알고 있는 시와는 다르다. 바테스의 시는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사적인 세계에 갇혀 있는 예술이 아니라 , 오히려 집단 제례와 결합되어 있었다. 고대 시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는 미학적인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거나 미학의 관점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생각" (233)을 버려야 한다. 고대의 시는 "의례, 오락, 예술, 수수께끼, 교리, 신념, 마법, 점, 예언, 그리고 경쟁 등을 한데 뭉뚱그린 것" (233) 이었다. P 150
서사시는 읽거나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 장엄한 음악반주에 맞춰 사로 낭송되어야 했다. 서사시는 음악과 춤처럼 하나의 행동이었고 그것들처럼 공연되어야 했다. (316)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볼수 있다. 일본에는 3행으로 된 하이쿠라는 아주 짧은 시가 있다. 하이쿠는 한 사람이 시를 지으면, 다른 사람이 이에 응수하여 또 시를 짓는 일종의 놀이 형식속에서 창작되었다. 이런 도전과 응수 형식의 시 짓기는 동아시아 곳곳에서 발견된다.
음악이라는 단어가 유래된 그리스어 무시케(mousiche)는 현대 의 음악보다 폭넓은 의미를 지녔다. 뿐만 아니라 아폴론과 뮤즈가 관장한ㄴ 기술, 예술, 장인의 솜씨 "(303)등을 포괄하는 단어였다. 즉, 무시케는 신의 선물이었따. 그리스의 신들은 슬픔이라는 감절을 알아야만 하는 인간들을 동정했다. 신들은 인간들이 생의 고민에서 잠시 벗어나 쉴수 있도록 뮤즈의 수장인 아폴론과 디오니소를 인간의 친구로 어울리게 했다. 인간은 친절한 신으로부터 음악의 리듬과 하모니를 선물받았다. 음악의 리음과 하모니는 인생의 슬픔에 지친 인간들에게 위안을 준다. 그리스인들에게 무시케는 가장 바람직한 디아고게였다 따라서 무시케는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음악인들에게만 한정된 활돌이 아니라 자유민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활동이었다.
음악은 무엇인가 닮는다. 경쾌한 리듬은 잎새 위를 구르는 물방울을 닮았고, 장엄한 리듬은 광활한 바다의 파도를 , 잔잔한 리듬은 고요한 호수의 물을 흉내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음악이 사물을 닮았따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음악이 닮은 사물의 힘이 음악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된다고 믿었다. 음악을 통해 우리는 음악이 모방하는 감정을 배우게 된다. 음악을 연주하는 인간은 시간을 떼우기 위애 장난을 하는 한량이 아니라 가장 바람직한 파이데이아를 수행하고 있는 호모 루덴스 였다.
**다층구
상아를 조각헤서 만든 작품이다. 상아의 겉면을 깎고 속을 파서 그 안에 공을 만들고, 공안에 계속 공을 만드는 식으로 작업했다. 각각의 공이 모두 분리되어 있는데, 제작 방법은 알려진 바가 없다. 인간의 손놀림의 경지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놀라게 하는 작품이다.
산업은 오래 걸려 도달하는 지혜보다는 다장 생산에 응용할수 있는 지식을 고집한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지혜에 도달하는 수수께끼 놀이가 설 땅은 없다. 오늘날 수수께끼라는 문답놀이는 "레크레이션"(219)으로 퇴행한다.
중세이후 연설과 논쟁이 사라지고 철학이 고독한 독백으로 후퇴하게 되면서, 철학에서 놀이의 성격은 거의 사라졌ㄷ. 고대의 아카데미와 중세의 대학에서는 지혜를 겨루는 논쟁을 하기에 목소리를 높인다면, 근대 대학의 전형적인 풍경은 침묵이 지배하는 도서관이다. 호모 루덴스는 대학을 논쟁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놓지만, 호모 파베르는 대학에서 빨리 지식을 습득하고 그 지식을 산업적 이윤으로 전환하기 위해 책에 코를 박는다. 에라스뮈스(1466~1536)가 [바보예찬]에서 비판했던 놀이 정신을 상실한 주석가의 모습은 19세기 근대 대학을 장악한 지식인의 모습 그자체다.
지식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사람,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학문연구에 다 소진해 버리고, 가장 아륻다운 시절을 밤샘과 근심 겆겅과 끝없는 노고로 다 날려 버리고, 남은 삶마져 조금도 즐겁지 않게 보내 버린, 그런 사람을 한번 생각해 보라. 그는 늘 인색하고 난처해 하고 침울하고 우울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가혹하며 남에 대해서는 귀찮아 하고 지긋지긋해하는, 창백하고 수척하고 병약하고 눈곱이 끼어 비틀어지고 늙기도 전에 머리가 벗어진, 요절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주겅도 상관 없다. 여태껏 한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지 않은가 ! 바로 이것이 현자의 한심한 초상이다. P188
< 에라스 뮈스>
에라스뮈스는 놀이 정신으로 충만한 지식인이었다. 그러한 면모는 그의 저서 [바보예찬]에 잘 드러난다. 여기서 그는 우매한 여신의 자기 예찬을 통해 불멸한 비판과 풍자를 보여준다. 하위징아는 오늘날에는 안타깝게도 그와 같은 지식인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P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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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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