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시인의 말 
*모래장 (葬) /   지붕  /  늪의 내간체(內簡體)를 얻다  
*절벽  /  개울은 그렇게 셈해졌다. /  소리족(族)
*목성과의 대화  /  소리책 (冊)  / 죽은 사람도 늙어간다
*미안하구나  / 눈물 /  갈대/  스콜   
*비의 악기  / 비가 만드는 사면 /  자두밭 이발소 
*환승  / 소금장(葬)   /  붉은 장(葬)  /  나무장(葬)
*울란바토르 산동네, 성숙(星宿)지구   / 
*머린호르[馬頭琴]와 낙타가 우는 밤 
*한트갈에서 무렁가는 길 
*마다카스타르 섬   / 푸르공   /  징 
*누선 (淚腺)  / 검은산 그리기 /  목성의 보호 
*달 가듯이  / 달   / 단풍잎 들   / 단풍기차 
*수평선  / 넓이와 깊이   / 떨림 
*흙탕물 웅덩이   / 저건 창이야   / 담쟁이 등 (燈)
*풀잎들은 언제 사랑하게 되는가 
* 초롱꽃   / 다육식물   / 숨죽이기 - 생물계절학 
*생가 (生家)  /  쓸쓸한 우물이다    / 적석목관분  
*슬품의 식구   / 혀     / 이끼 사원   / 말씀 
* 신(神)들의 높이   / 소나무라는 짐승  
*가구가 될수 있었던 나무 스펑  / 무두웅(無頭雄)
*심해어  / 생선  / 로드 킬 

*해설 : 죽음과 형식 - 권혁웅(시인, 문학평론가)

	1.  개울은 그렇게 셈해졌다.  바투의 오체투지가 얼음장 개울을 만났다 그는 개울의 폭을 묵산한 뒤  여덟 번 오체투지 하고  맨발로 개울을 건넜다 발목까지 젖었지만 바투는 무을 밟고 걸어간 것처럼 보였다 수면의 발자국을 남기려고 결빙이 시작되었다 개울은 그렇게 셈해졌다 2. 눈물  눈물이 말라버렸다 너무 오래 눈물을 사용했다 물푸레나무 저수지의 바닥에 간당간당, 물푸레나뭇잎도 건조하다 일생의 눈물양이 일정하다면 이제부터 눈물없는 외톨이가 아니겠는가 외할머니 상가에서도 내 울음은 소리만 있었다 어린날 울긋불긋 금호장터에서 외할머니 손을 놓치고 엄청 울었다 그 울음이 오십 년 쯤 장기저축되어 지금 외할머니 주검에 현정된것을 이제야 알겠다 그 잔나비 울음이야 얼마나 맑으랴 내 어린날의 절명 눈물이었으니  3.갈대 일곱살때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금호길, 갈대 서걱거리는 금호(琴湖)라는 의성어를 날것을 들었던 그 때 새 신랑이 아니라도 십리길은 멀리 높았다 외가에서 큰집까지 지금도 그 길의 되돌이음표를 새기면 몸의 뒤축은 아프다. 아프다 못해 잘린 팔의 허공이 가렵듯 아버지에게 매달렸던 수많은 내 오른손은 이제 잡아야 할 아버지 없어 연신 가렵고 아프다 아버지 아버지라고 불러보는 , 기계중처럼 솕인 갈대가 외치는 짐승의 음성이 여리고 목쉰것도 그 때문이다.  4 달 가듯이  달이라는 짐승이 제 머리를 뚝 떼어내 앞으로 던졌다 달이 움직인다 ! 달맞이꽃 그늘은 살이 차오를때까지 환상통에 시달린다.  달이 힘겹게 움직일때  파도의 손가락들도 달의 통점에 닿으려 한다 달의 안김을 뜯어내려는 저녁 바다는  물로 된 서랍을 죄다 열었다 작은 어선의 백열등을 연결한  별자리 위에서 달을 도우는 기러기 때는 한 계절 먼저 출발했지만  아직 달 표면에 조류의 무늬는 없다.  새의 착륙을 위해 나무들은 쇄골의 수피를 벗겼다 달이 다시 움직인다 기러기때와의 거리를 좁혔다.  5. 떨림   잎도 없이  꽃만 핀다 단 한 송이 꽃을 피우는 앉은 뱅이 꽃들이 있다 티벳 얌드록 호숫가의 초원은 일망무제, 슬하(膝下) 꽃들로 빼빽하다 먼지인지 햇빛의 미립자인지 그 사이로 주저않은 것은 호수의 수면위로 내가 너무 높거나 복잡해서였다 설산도 낮이면 호수 속에 머리넣고 면벽하는 땅, 꽃들의 높낮이가 고스란히 떨림이고 스카이라인 인 곳                    6. 풀잎들은 언제 사랑하게 되는가  밤새워 달렸던 새벽 초원이 몸 살기 털어내며 내 곁에 왔다 오른쪽 비워두고 해쓱한 왼쪽 뺨만 자꾸 부볐다 염료통이 쏟아지자 초록 활주로 , 복사뼈까지 잠기는 초록물 위에서다 내 몸의 처음과 끝도 풀잎의 체온 빌려 발묵(發墨)하는 행서체 넓이이다 초록 저울 위에서 구름의 무게가 종일 바뀌었다 지평선 휴게소의 일몰까지 찰랑거리는 피륙은 내 시선이 닮고픈 초록 서슬의 직조이다 풀잎들은 언제 사랑하게 되는가 고요의 거울 속에 초록의 목발이 가득했다면  초록 거울안은 방금 고요와 입 맞춘  동성애 풀잎들이 가득 누워있다   7.다육식물  더위 먹어 죄다 풀죽은 한낮, 다육이 한 무리 싱싱하다 비문(碑文)의 그늘 밖 다욱이는 빳빳하다 직립이다 햇빛을 날름 삼키는 놈이다 햇빛의 생살은 흔한 가시 하나 없이 맛있다 그을음 부분을 빼고 졸깃한 부분만 먹었다 줄기마다 볕물이 잘 들어 발그랗다 높은 음자리표의 다욱이 귀고리가 있다면, 혀는 볕의 온도를 핥아 보는 중이다. 사금파리 위를 걸어다니는 맨발도 누군가 만지고픈 살갗이다 싱싱하다  햇빛의 광합성을 먹는 다육식물이다.  8. 슬픔의 식구  슬플 때 나를 위로 하는 건  내 몸이 먼저다  미열이 그 식구다 섭씨 39도의 편두통은 지금 염료를 섞고 있다 내 발열은 치자꽃대궁 같은 것 치자꽃 노란색 열매는 종일 위염을 생각하고 있다 햇빛의 양철 지붕에 세운 내 미열 학교에서 아픈 위도 명치에서 질문한다 붉은색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쓰라린 위를 향한 몸의 집착은  슬픔의 입성을 꿰차는 것이다 식구 없는 슬픔도 참조하도록! 자꾸 속삭이는 적나라한 열꽃, 자꾸 넘치는 치자꽃물의 강우량에 물드는 쪽으로 미열은 운동한다 어께도 등도 치자꽃 가득 핀  슬픔의 악보여  9. 혀  입술 안쪽 유일한 짐승인 혀는  눈도 손발도 없이 온몸으로 꼼지락거리는데 그 몸 어딘가 꿈틀꿈틀 천 개의 활주로가 있다는데  그 많은 공지 위로 수생의 버짐꽃이 피고 진다는데  혓바닥 빌려 한 켠에서 쟁기질한다는 이야기는 또 무어냐 헛바닥에 자두 돋는 뽀족한 가시 울타리 잘라내고 단순해지자 내 입속에 혀가 있는게 아니라 혀 아래 내가 기대어 쉰다는 느낌 처럼  10. 적석목곽분   녹나무는 아니지만   욕조에 누우면 잠들고 싶어서라도  나는 지금 적석목관분 안에 누운것이다 운명이 있다면 뜨거운 물은 금방 딱딱해져서 굳기름으로 바뀔 것이고 수증기 사이 희미한 불빛의 온도는 깜빡이다가 차가워지리라 곧 관 뚜껑이 만년설보다 더 두텁게 닫히고 돌이 쌓여진다 해도 아래가 편편한 덧널무덤의 편안함은 외면하기 싫다 깜빡 잠이 들었는지  부식이 진행되었는지 손발 마디마디가 저리다 느낌도 욕망도 없는 식어버린 물이 지하 일백 미터 아래에 욕조를 묻어버린 듯  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