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몇 해전 소품을 만드는 강좌에서 젊은 디자이너를 만났다. 수첩이 특이해서 물어보니 원하는 종이로 만든 수첩이 없어서 직접 만드셨다고. 한번 손에 잡으면 하나만 만들게 되지 않으니 가끔 선물하기도 한다고. 원하는 물건을 만나지 못해 직접 가내수공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쓸수록 맘에 들는 물건을 하나씩 가지게 될 때 기쁨은 그 가격에 상관없이 일상에 큰 기쁨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내 방을 둘러보았다. 올해도 쓰잘데기(?) 이쁘기만 한 것들을 다람쥐처럼 많이 주워모았구나, 마음이 조금 쓰렸다. 그래도 다 실패는 아니었는데 집 모양의 작은 티라이트 홀더는 볼수록 맘에 든다. 불을 켜면 이렇게 온기 충만한 집이 불켠 모양이 되고. 작은 굴뚝 모양은 집의 형태를 정교하게 만들면서 향을 꽂을 수 있는 홀더가 된다. 구멍이 깊이는 적당히 깊어 넓어서 꽂으면 여유가 남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타고 남은 재는 지붕 위에 가지런히 쌓인다. 티라이트를 켜고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먹다 남은 찻잎을 얹으면 은은한 녹차향이 흐른다. 적절한 모양에 기능을 더한 물건이었다.

책에서는 책상, 추사의 그림, 도자기 같은 박물관에 있는 문화재부터 작은 방, 오만원권, 루이뷔통, 뉴비틀, 도시까지 디자인은 물건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모든 것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특히 나전칠기나 옛 문양으로 만든 디자인 용품에 대한 경계적인 시선으로 꼬집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계승이란 계속적인 반복이나 재현이 아니라 좋은 것을 발전시켜 나가되, 보다 더 좋게 개선시켜 나갈 때 그 의미가 있다는 것".

박물관이나 지역에서 기념이 될 만한 것을 사고 싶지만 유물을 조잡하게 복제하거나 제대로된 쓰임도 허술하고 촌스러운 형태를 볼 때면 가슴이 답답했다. 전통문화를 돌이켜본다는 좋은 의도는 알겠지만 그 이상의 장점은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

디자인은 수려한 모양의 겉모습으로 떠오르지만 형태에 대한 고민과 그 안에 담긴 뜻이 설명될 때 긴 생명력을 갖고 우리 곁에 남는다. 오랜 세월을 이겨내는 사물과 방식들이 우리와 함께 사는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지금 삶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은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이끌어 가는 방법이라는 메세지가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