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병년, 엄마 주연, 윤영, 윤서, 윤지.

다섯 가족이 단란하고 화복하게 살고 있는 집 안으로 원하지 않았던, 생각하지

못했던 여섯 번째 식구가 들어왔다.

아내가 막내 윤지를 낳은 지 삼 일 만이었다.

 

“뇌병변 1급 판정을 받은 아내는 입과 눈의 기능을 잃었다.

시력은 건강해도 자율신경을 잃은 탓에 눈도 뜨지 못한다.

눈을 뜨지 못하니 볼 수 없고, 구강이 건강해도 입을 열지 못하니

말할 수 없다. 손과 발의 기능도 마찬가지다. 오직 듣는 기능만

살아있을 뿐, 그럼에도 들을 수 있어 웃는다.

듣기만 해도 좋아한다.“

 

여섯 번째 가족은 고통이었다.

작은 교회의 목사요 공 잘 차는 아저씨였던 병년은 아내를 지키는 간병인이 되었고,

세 아이의 엄마이자 아빠인 엄빠가 되었다.

막내 윤지가 엄마의 손길과 목소리, 따뜻함을 느껴본 것은 겨우 삼 일 뿐이었다.

윤영과 윤서 역시 엄마의 품이 주는 넉넉함을 누려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 커갔다.

엄마, 아무리 불러도 엄마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일어나야지, 학교 가야지, 밥 먹자.

교회 가야지, 예배 드려야지, 기도하자. 찬송 부르자.

여보, 힘 내세요.

아내의 사랑 가득한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아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뻔뻔하게 자리잡은 것은 고통이었다.

가족들의 마음과 생활에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도 가족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고통이었다. 고통은 너무도 당당하게, 끈질기게, 악착같이 아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고, 가족들의 마음과 생활에 붙어다녔다.

 

“내가 중년에 들어서던 해에 아내가 병으로 쓰러졌다.

불시에 찾아온 질병은 내 삶의 방식을 뒤바꾸어놓았다.

이전에는 나를 돌보던 아내가 이제는 내가 돌봐야 하는 아내로 서로의 역할이 바뀌었다.

질병은 아내와 나 사이를 부부 관계에서 환자 - 보호자 관계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먹여주고, 돌봐주고, 씻겨주고, 안아주고, 자세를 바꿔주고, 침을 닦아주어야 하는

보호자가 되었다. 그러나 남편인 나는 아내와 더불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병상에 누운 아내를 집에 가만히 두면 환자가 된다. 그러나 비록 병들었어도 배우자로

인정하고 다양한 삶의 영역으로 함께 동행하기 시작하면 환자가 아닌 동반자가 된다.“

 

고통을 여섯 번째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언제든지 아내를 일으켜 주실 줄을 믿지만 지금은 병든 아내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병든 아내를 품고 사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아내에 대한 신실함을 지키려 애쓰며 살아가기로 했다.

고난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질병이 주는 짐으로부터 벗어나는 힘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더욱

예배를, 찬양을, 기도를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아내와 함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도록 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않기로

했다.

병든 아내를 돌보는 것보다 병든 자신의 영혼과의 싸움이 더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며 더욱

말씀으로 성령으로 삶을 주관하게 하기로 했다.

아픈 엄마를 사랑하는 아빠,

가정을 지켜주는 아빠.

힘들지만 이웃을 섬기고 교회를 세우는 아빠의 모습을 윤여, 윤서, 윤지에게 보여주며

살기로 했다.

결혼하여 건강하게 8년을 살았고, 아픈 가운데 8년을 보낸 아내.

지금껏 건강하게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긴 생활을 살아가야 하겠지만, 고통은 길어지겠지만

더 큰 사랑으로 고통까지 감싸안으며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오늘도 담대하게 고통에 맞서서 살아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윤영과 윤서, 윤지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을 듣고 또 들으며 살아가기로 했다.

“아빠, 우리는 가난한데,

우린 왜 이렇게 행복하지?“

 

‘아빠, 우린 왜 이렇게 행복하지?‘(김병년)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