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사토 겐이치는 왠일인지 작품의 재미나 완성도에 비해 그다지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지 못하는 작가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본 작가 특유의 가벼운 문체에 날카로운 통찰력을 담는 형식을 취하면서, 추리 소설의 장점을 접목시키는 재능을 지닌 작가입니다. 그러나 만약 저자가 가진 재능이 그 정도에서 끝났다면, 그보다 뛰어나거나 그 정도 되는 사람은 부지기수였을 것입니다.

 

그가 가진 진정한 매력은 중세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통찰력입니다. 그는 일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중세 시대의 문화나 시대상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입니다. 그러한 재능은 같은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왕비의 이혼'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그가 풀어내는 세계 속을 가만히 흘러가다보면,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과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이 보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문장력을 뽐내듯이 배경을 시적으로 화려하게 묘사하는 능력이 아니라, 시대상과 그 속의 인물들을 향한 자신만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철저한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저자의 그러한 통찰력이 꽃피우는 곳은 바로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은 아마도 실제 인물로, 사학자들에 의해 기록되기로는 훌륭한 기사였습니다. 싸움도 잘 하고 예의도 바른, 기사도의 상징같은 인물 말이죠.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사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겁많고 평범한 인물에 가까웠다고 말이죠. 실제 인물과 상상속의 인물과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작가는 완벽에 가까운 한 명을 창조해냅니다. 평가하자면, 그는 완벽하다기 보다는 잘생긴 외모를 이용해 여자나 후리는 망나니 난봉꾼 '성직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은 그 '완벽한 인물'의 영향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관심이 가는 인물이 바로 이 '성직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확고한 자기 철학을 가지고 '은혜를 베푼다'는 명목 아래 부녀자들을 마음껏 농락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악행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는 커녕, 바로 그 죄책감이라는 굴레에서조차도 초월한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신앙인인 저로서는, 그의 주장하는 신학이 개똥철학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그런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서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갖춰야 할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마치 이러한 그의 모습은 완전한 자유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일견 있습니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책이지만, 정말 재미있는 책입니다^^

카르티에라탱, 사토겐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