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노님이 왜 그들의 사랑을 우노님의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를 해요. 그들은 그냥 그들의 사랑을 하는 거잖아요.

 

그렇다. 그냥 소설의 인물을 만나는 것인데도 난 그놈의 썩을 도덕이니 윤리니 이래가며 침튀기며 열을 냈었다.

작년에 했었던 독서 토론에서 <서가의 연인들>이라는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 난 왜 그리도 열을 냈던가.

 

이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은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있었던 양로원에 가서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마침 주말이라 바다를 가고 관심이 있던 여자, 마리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여러 사람하고 엮이다가 얼떨결에 사람을 죽인 주인공은 왜 그러한 살인을 했냐는 말에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355쪽)'고 대답한다. 그는 수감되고 법정에 세워지고 무수한 공판이 이어지고 결국 사형을 받는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선량하다거나 성실하고 다정하며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를 파렴치에 무신론자에 무책임한, 인간 이하라고 법정에서 증언한다.

 

읽는 내내 이리도 짧은 소설이 강렬한 인상을 주다니... 하면서 놀라며 읽었다.

읽기는 후다닥 빨리도 읽어나갔으나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그리고 다른 책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특히 '니체'의 글이 읽어지지 않았다.

 

허무로 출렁거리고 우울로 울렁거리는 이 소설이 이상하게 난 단비처럼 느껴졌다.

 

주인공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서 주인공 자신은 소외된다.

아랍인을 살인한 죄로 수감되어 법정에 선 그는 아랍인을 살인한 죄 보다도

하나밖에 없는 늙은 어머니를 양로원에 버려두곤 자주 찾아가지도 않았고, 관을 지키면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셨으며, 장례식 때는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행동으로 평가받고 판단된다. 그의 죄목은 과연 무엇인가.

객관적이라며 증인이나 증거를 들이대며 그를 몰아세우는 검사나 그를 변호한다는 변호사나

꼬라지가 역겨워 읽는 내내 짜증이 지대로였다. 게다가 그들 옆에 빌붙어서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남의 인생에

이러저러한 잣대를 들이대며 자신은 최소한 주인공보다는 우위의 인격이라도 갖고 있다는 듯 떠들어대는 인간들의 모습으로

뚜껑이 제대로 열리는 경험을 했다.

 

어쩌면 예전의 나라면- 사실 지금도 그닥 나아진 인격으로 갈아탄 것은 아니지만 - 주인공의 행동을 책속의 등장인물처럼 판단하며 평가했을 것이다. 어쨌건 그가 한 사람을 죽인 것은 '사실'이고 명백한 증거까지 있는데, 형량을 제대로 주고 싶은 검사의 심정을 발휘하며, 그의 행동에 상식과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며 열을 냈을지도 모른다.

 

바로 눈앞에 있는 한 인간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면서 얼어 죽을 '본성'이나 '본질'이라는 단어를 주워삼키면서 말이다.

 

 

사실 변호사 자신도 제대로 된 사실에 집중하기보다는 주인공을 위한답시고 변호를 하는 행동에만 집중한다.

 

 

 

니체는 '영원회귀'라며 수레바퀴처럼 생은 반복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수레바퀴처럼 반복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또 반복될지 모르는 지금이 후회 없기를 바라고, 그래서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고 즐기는 것이다.
사실 끝이라고 믿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리할 것이지만, '아무것도 없다'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던지 없던지

이 생애에서는 알 수가 없을 터인데, 그것에 매달리기보다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진정'과 '원하는'것에 앞서는 '나'를 제대로 세우고 싶을 뿐이다.

 

 

 

 

오래간만에 깊에 빠져들어 무한한 기쁨을 느꼈던 책이다. 그리고 덕분에 순식간에 니체의 책을 놓게 만들었다.

 

한 동안은 니체의 글은 좀 쉬면서 소설에 빠져볼 생각이다.

 

 

타인의시선과평가에휘둘려지리멸렬하게되지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