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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박덕규는 정호승 시인의 그러한 친숙한 표현 언어를 <낯익게 하기>의 방법론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표현법의 유효성에 대해 "우리의 표현 언어가 지나치게 <낯서렉 하기>로 치달아오면서 난해성과 다의성만을 옹호해왔다는 점을 반성하는 자리에서 시와 독자와의 공동체적 인식을 유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페이지 : 158 "해설 / 참혹한 맑음과 '첨성대'의 시학 / 김승희" 중에서

찬바람이 부니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던 때 읽었으나 어디에도 담지 못했던 시집에 다시 도전을 한다. 반복해서 읽어서인지 단순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시를 읽을 때가 와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다시 읽으니 이젠 내가 그때 왜 그리고 이 시들을 제대로 담지 못했는지에 대해 조금은 알것 같았다.

시가 아닌 다시 읽은'해설'에서 내가 처음에 이 시집을 제대로 담지 못했는지 알것 같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 무엇에 놀라움과 낯설음이 동반 해야 감동을 느끼는 버릇 때문에 그러할 수도 있겠지만, 난 반대로

그 익숙함에 오히려 너무 낯설음을 느꼈기에 제대로 담지 못했다는 것이 더 솔직한 이유 같다.

낯설음에 익숙해지다보니 익숙한 것을 보면서 오히려 낯설었다.

시인이 말하는 그것들이 마음까지 움직이게 하는 익숙함이 아닌 머리로만 아는 낯익음이었기에

체득하지 못하고 다만 어디에선가 들어봤기에 내가 익히 알아왔다는 착각을 했던 것들이 펼쳐지니

나에게 익숙한 낯익음도 낯설음도 아니었기에 내 감정이 당황했던 것이다.

슬픔으로 가는 길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을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페이지 : 15 "슬픔으로 가는 길" 전문

처음 뜨거운 바람이 불던 길목에선 그리 많은 시들을 시집 귀퉁이를 접어가며 읽었고, 막상 다 읽고선 어디에도 독후감을 쓰지 못했는데, 이젠 그 접었던 귀퉁이를 죄다 펼치면서 이렇게 독후감을 쓰고 있다. 한 시집을 가지고도 난 이렇게 변덕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행동이 단순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일지 아니면 얼마전 다목리에 다녀와서인지 아니면 그 몇달 사이에 내가 나도 모르게 변해서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독후감을 쓰면서 이 시를, 맨 처음에 실린 이 시를 이렇게 받아 적는것은 또 어떤 이유에서일까.

새벽편지

죽음보다 괴로운 것은

그리움이었다

사랑도 운명이라고

용기도 운명이라고

홀로 남아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오늘도 내 가엾은 발자국 소리는

네 창가에 머물다 돌아가고

별들도 강물 위에

몸을 던졌다

페이지 : 53 "새벽편지"전문

용기도 없고 외롭지도 않고 그닥 그리운 것도 없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뜨거운 바람이 부는 길목에서는 이 시에 왜그리도 화가 났던지. 허나 선선한 바람이 부니

저러한 새벽편지는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창가를 서성이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눈을 저 멀리로 던지게 된다. 그러니 보인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가을바람이

그덕에 날리는 꺽인 햇살이

차분히 내려 앉은 어둠이

그덕에 바투 앉은 달빛이

달빛에 슬쩍 고개숙인 별빛이

하늘의 그물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다만 가을밤에 보름달 뜨면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기러기들만

하나 둘 떼지어 빠져나갑니다

페이지 : 115 "하늘의 그물"전문

더운 바람이 불어오면서 닫아 두었던 시집들을 이젠 슬슬 꺼낼때가 되었다.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막기엔

시집만한게 없기 때문이다.

왜이리시간은이래저래부족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