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시리즈로 읽던 한국 근대 소설을 조금 쉬겠다고 해놓고는 또 집어 든게 이 책이다. 이번 달에 읽어야 하는 책이었지만 어쨌건 또 근대 소설이다. 그리고 역시나 좋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알퐁스 도데의 <별>처럼 소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남자 아이들은 5학년만 넘어도 읽고 나선 너무나도 좋아하는 소설 중에 하나이다. 이 책에는 <소나기>, <별>, <산골아이>, <독 짓는 늙은이>가 실려있는데

<소나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서울에서 전학 온 소녀와 시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로, 소녀가 병으로 죽으면서 끝이 나는 슬픈 사랑 이야기이고

 

<별>은 의붓어머니와 살고 있는 주인공 남자 '아이'가 죽은 친 어미와 누이가 닮았다는 말을 이웃 할머니께 들은 이후로 심할다 할 정도로 누이를 미워하고 괴롭힌다. 누이가 떠밀려간 결혼 후에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후, 슬퍼하면서 누이를 그리는 이야기인데

죽은 어미의 얼굴을 모르는 아이의 상상속의 어미는 아름다움의 상징인데,

옆에 있는, 어미와 닮았다는 누이는 얼굴이 추함에 가깝기에 어미와 닮았다는 말에 극한의 거부하는 행동이 단순히 사춘기의 행동으로 이해하기는 좀 힘이 들었다. 이 책 뒤편에 실려있는 해설에선 "미에 대한 집착"이라고 설명을 하긴 했는데, 어쨌건 그리 미워하던 누이가 결국 떠밀려 간 결혼이 비극적으로 끝이 난 후에야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별 하나는 어머니이고 또 하나는 누이라 생각하다가도 그러면 안된다며 "누이는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머릴르 옆으로 저으며 눈을 감아 눈 속의 별을 내몰았다."라며 끝이 나는 소설을 나는, 주인공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끝을 맺었다.

 

<산골아이>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여우고개에 대한 옛날 이야기와 반수 할아버지가 호랑이에게서 아이를 찾아온 이야기를 싣고 있는데, 추운 겨울 날 따뜻한 화로 앞에서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떠오르는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독 짓는 늙은이>는 조수와 바람나 집을 나간 마누라 때문에 병이 난 독 짓는 늙은이의 마지막 독 짓기가 주된 이야기이다. 하나 뿐인 아들마저 양자를 보내야 할 정도로 힘든 삶을 결국엔 마감을 하는 마지막 장면은 죽음에 대한 거부가 아닌 초월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감동이 밀려왔다.

 

	그러나 송 영감은 다시 일어나 가마 안쪽으로 기기 시작했다. 무언가 지금의 온기로써는 부족이라도 한 듯이. 곧 예삿사람으로는 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데까지 이르렀다. 그런데도 송 영감은 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덮어놓고 기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마지막으로 남은 생명이 발산하는 듯 어둑한 속에서도 이상스레 빛나는 송 영감의 눈은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열어젖힌 곁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늦가을 맑은 햇빛 속에서 송 영감은 기던 걸음을 멈추었다. 자기가 찾던 것이 예 있다는 듯이. 거기에는 터져나간 송 영감 자신의 독 조각들이 흩으져 있었다. 송 영감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단정히, 아주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렇게 해서 그 자신이 터져나간 자기의 독 대신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페이지 : 177 "독 짓는 늙은이" 중에서

 

군더더기 없는 단편들이 좋았다. 짧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게 할 말만을 제대로, 그러면서도 감정을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장편을 편애하는데 요즘 단편들의 맛에 푹 빠져 있다.

 

겉 표지에 실려있는 그림이다. <소나기>의 한 장면이다.

요렇게 귀여운 두 아이의 사랑이 슬프고 아프게 끝이 나서 아쉽지만 그래서 이 이야기가 여운을 더 오래 남기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소나기>를 읽으면서 <엽기적인 그녀>의 영화 내용이 생각하서 자꾸 웃음도 나온다.

엽기적이었던 그녀는 <소나기>소설의 마지막을 소년의 순장으로 끝을 맺었는데, 그 때는 그 장면을웃으면서도 어이없어 했는데.

하여간 좋은 건 아무리 반복을 해서 읽어도 새롭고 좋다는 것을 새삼 되새겨본다.

 

 

 

견우가산체로묻히는장면을그때는웃을수만은없었는데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