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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카프카였던 듯한데, 하루키의 <잠>을 끝으로 잠에 매달리는 멍청한 짓을 안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더듬이를 감추지 못하겠나 보다. 안 그런척하더니 결국엔 이렇게 잠과 연결되는 밤에 관한 책을 들고야 말았다. 그리도 유명한 '기 드 모파상'의 소설이다. 그런데 난 그의 소설을 처음 읽는다.

아... 그런데... 너무 짧다.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문학동네 세계명작'이라는 이 시리즈가
일러스트와 함께하니 좀 짧아도 그럭저럭 만족하고, 그동안 읽은 <외투>, <바베트의 만찬>, <필경사 바틀비>, <변신>, <검은 고양이> 들이 워낙 좋아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모파상의 단편집도 있건만, <밤 : 악몽>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집어 들었는데, 웬열...
활자로 박힌 글자인 본문은 꼴랑 5장 분량이다. 10쪽이란 말이다. 아.. 너무한다.

나는 밤을 열렬히 사랑한다. 그것은 고향이나 애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본능적이고 근원적이며 불가학력적인 사랑이다. 나는 내 모든 감각으로, 즉 밤을 바라보는 눈으로, 밤을 들이마시는 코로, 밤의 고요를 듣는 귀로, 밤의 애무를 느끼는 온몸의 촉각으로 밤을 사랑한다.
: 7쪽 중에서

낮은 피곤하고 따분하다. 노골적이고 소란스럽다. 나는 가까스로 일어나, 마지못해 옷을 입고,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외출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을 움직이거나 어떤 몸짓을 할 때마다,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할 때마다 마치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는 것처럼 힘이 든다.
: 9쪽 중에서

나는 그렇게 밤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낮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밤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가끔은 내가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좋아하는 밤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밤이 무서워서
무서운 밤에 내가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두려워
두 눈으로 쳐다보며 제어하고 싶은 욕심에 이렇게 깨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법이다.
: 9쪽

밤을 좋아하는 그는 어제인듯한 그날에 밤을 헤매고 다닌다. 그리고 그는 느낀다.
이토록 캄캄한 밤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 밤을 마음껏 즐기는데
어느새 그는 그 밤의 한가운데로 들어갔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그는 공포를 느낀다. 그는 울부짖는다. 절규한다. 도와달라고.
깊은 한밤중임에도 그는 집집마다 문을 두들기며 소리치지만 그 어떠한 반응이 없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도 움직였던 자신의 회중시계조차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센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을까?
알고 싶어서, 계단을 찾아 아래로 내려갔다..... (... 중략...) 나는 깨달았다. 내겐 다시 올라갈 힘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 또한 여기서 추위와 ...... 굶주림과...... 피로로...... 죽게 되리라는 것을.
: 29쪽 중에서

밤의 한가운데로 어둠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그는 결국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빠져버렸다.
제목이 <밤 : 악몽>인 걸 보니 그의 이러한 경험이 악몽일 수 있다며 슬쩍 치환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꼭 꿈에서나 가능할까.

처음에 이 책을 훑어볼 때는 너무나도 짧아서 화가 날 정도였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그림을 곁들이며 읽으니, 이 글은 짧은 소설이 아닌 산문으로 쓴 시(詩) 같았다.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그의 감정에 다가가니 그가 느끼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새벽 두세시에 인공의 불빛이 없던 산길을 걸으며 달빛과 별빛에 취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10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그 시간은 바로 어제의 일처럼, 간혹 지금의 일처럼 생생하다.
오히려 그 이후인 이 시간들이 생경하거나 아득하고 가물거린다. 그렇게 그 시간은 나에게 각인되었다.
그렇기에 이리도 밤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10년 전의 시간이 있기 전의 밤은
그저 내가 견기고 지나쳐야 하고 가끔은 무섭고 두려운 시간이기만 했다면

10년 전의 시간 덕분에 밤은 나를 즐겁게도, 세상을 돌아보게도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러니 이렇게 밤의 매력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나 보다.

곧 오늘의 해가 뜰 테니 잡설은 이쯤하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