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점에서 세계사의 내러티브로서의 이슬람은 끝났다고 말해도 그럴 만하다. 틀린 말이지만, 그렇게 말할 만하다. 서양에서 밀려온 역류가 무슬림 사회를 교란했으며, 더할 나위 없이 깊은 고뇌와 고통스러운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세속 근대주의자들은 서구의 흐름에 맞게 그들 사회를 재편성해서 영적인 혼란을 진정시키자고 제안했다. 알아둬야 할 것은, 여전히 대부분의 근대주의 지도자들이 스스로를 무슬림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다만 '무슬림'이 무슨 의미인가에 새로운 발상을 도입했을 뿐이고 여전히 특정 국민들에게 미치는 특정 서구 세력의 지배력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달라진 점이라면 신이 내린 임무를 수행하며 보편 공동체인 이슬람을 활성화하려는 열성 무슬림으로서가 아니라, 진취적인 반식민주의자로서 그런 활동을 벌였다. 이 엘리트들은 서구의 기준과 이상으로 서구를 잡아서 성과를 거두려고 했으며, 그렇게 하면서 은연중에 서구의 가설 체계를 인정했다.
대중의 지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간 세계 전역에서 전통의 종교적인 이슬람은 이제 잠잠했다. 패배했고 제압당했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대체로 학자나 성직자를 별나고 예스럽다고 여겼다. 울라마, 경전 직해주의자, 기적을 파는 사람들, 정통파 '신봉자'들, 이들이 수 세기 동안 다르 알 이슬람을 지배하며 무엇을 창조했던가? 그들이 창조한 것은 차를 만들거나 비행기를 발명하지도 못하며 서구 세력에는 더구나 대항하지 못하는 구닥다리 사회일 뿐이었다. 실패한 그들의 세계관은 이제 신망을 잃었으며 이제 대중은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려는 참이었다. 미래는 세속 근대주의자들의 손에 있었다.
: 478~479쪽 '제15장 세속 근대주의자의 부상' 중에서

 

사파비 왕조는 후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정당성이 부족한 왕이라면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할 다른 힘의 원천이 필요했을 텐데 사파비 왕조는 어디에서 그 힘을 구했을까? 그들이 의지할 곳은 군대밖에 없었다. 이 무렵 사파비 왕조의 군대는 유럽인 군사 전문가들이 무장하고 훈련시키고 '자문'도 해주는 군대였다. 요컨대 페르시아는 사파비 왕들이 유럽인 그리스도교도의 도움을 받아서 대중과 긴밀한 무슬림 종교학자들을 압박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당연히 이는 문제가 발생할 만한 구도였다.
: 367쪽 '제12장 서구가 동쪽으로 오다

 

한 가지 확실히 해두자. 유럽이 이슬람 세계로 침투한 것은 결코(1990년대에 나온 표현을 사용하자면) 문명의 충돌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식민화 기간 동안 '유럽 문명'은 '이슬람 문명'과 한 번도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이는 바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열쇠다. 사실 1500년 이후로 서유럽인은 주로 교역상으로서 동쪽의 이슬람 세계로 왔다. 무엇이 그보다 덜 위협적일 수 있겠는가? 교역은 사람들이 전쟁을 벌이는 대신하는 것이다. 교역이라니, 그건 사실상 평화의 동의어가 아닌가!
: 351쪽 '제12장 서구가 동쪽으로 오다' 중에서

 

많은 종교가 그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부패했지만 너는 탈출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슬람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부패했지만 네가 변화시킬 수 있다."이는 무함마드가 설교를 하던 추기부터 내재된 사상이었을 테지만, 우마르는 이슬람의 이러한 방향을 확고하게 다져서 철통같은 궤도에 올려놓았다.
: 105쪽 '제3장 칼리프조의 탄생' 중에서

 

 

다시 말하지만 이슬람은 그저 하나의 믿음이나 신앙 체계가 아니라, 식이요법이나 운동 프로그램처럼 어느 모로 보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다. 이슬람은 실천이다.
: 165쪽 '제7장 학자, 철학자, 수피' 중에서

 

 

하지만 이슬람에서는 격리된 영혼의 개인적인 구원이 아니라 완벽한 공동체 건설을 강조한다. 사람은 구원받아야 하는 죄인이 아니라 복종하라는 명령을 받은 존재다. 이 세상에 아무 죄 없이 태어났으니 가장 고귀한 존재로 올라갈 수도, 가장 타락한 존재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수피 교단의 제자들은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놓은 상태로 고양되기 위해 수피즘에 입문한다. 육체를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를 오직 알라에 집중하기 위해 의식을 행한다.
: 272쪽 '제10장 부활' 중에서

 

 

기대에 부푼 이란인들은 투표소에 나가서 무함마드 모사데크라는 이름의 세속 근대주의자에게 총리의 권력을 안겨줬다. 모사데크는 이란의 가장 귀중한 자원인 석유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되찾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는데, 취임하자마자 그 공약을 지켜서 브리티시 페트럴리엄의 임대차 계약을 취소했고 이란 석유 산업을 국영화한다고 발표했다.
시도는 좋았다.
미국 중앙정보부, CIA가 즉시 움직여서 '미치광이 모사데크'(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그를 이렇게 불렀다)를 저지했다. CIA가 자금을 댄 이란 군대의 한 파벌이 1953년 8월말에 피비린내 나는 쿠데타를 벌였고, 거리에서 수천 명이 죽었으며 이란의 가장 중요한 정치인은 가택에 연금되어 다시는 집 밖에 나오지 못했다. 그 대신 CIA는 리자 샤 팔레비의 아들(그의 이름도 리자 샤 팔레비였다)을 이란 왕으로 복원시켰다. 젊은 샤는 미국과의 조약에 서명하여 이란 석유를 '관리'하는 일을 석유회사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맡겼다.
: 520~521쪽 '제17장 조류의 전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