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단편 3작품이 실려있는 단편집이다. 어려울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수업 때문에 읽은 책이라서 그냥 넘길 만도 한데, 열 뻗쳐서 잠을 못 이루게 만든 작품이 있어서 독후감을 쓴다. 우선 줄거리.

* <어떤 솔거의 죽음>
폭군인 성주가 자신의 잘남을 그림으로 그려 성문 앞에 걸어놓으려 화가를 부르고, 그에 불려간 솔거는 성주를 있는 그대로(내면의 추함까지 고스란히 드러나게) 그렸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문하생 시절에 경쟁을 했던 지루는 뽀샵을 있는 대로 했기에 그의 잘못을 더 드러내게 되는데, 솔거는 죽게 되지만
언젠가는 그처럼 세상을 제대로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결국엔 세상이 바뀔 것임을 암시하며 소설은 끝난다.

* <인형극>
1960년대쯤이 배경인듯한 이 소설은, 영찬이는 일당으로 삼천 원을 버는 알바를 하게 되는 걸로 시작하는데, 아버지가 하루 벌어오는 돈이 삼천 원 정도이니 거금이다. 그 알바는 사립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척하면서 제비뽑기를 대신하는 것이다. 낙준이라는 부잣집 아이의 집에 가서 옷을 빌려 입고, 부잣집 아이인 척 연습을 하면서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엔 뽑기를 잘 해서 영찬이는 돈을 벌어온다.
하지만 자신을 부여잡고 우는 엄마 품에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마도 리라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쓴 것도 같은데, 그때도 학비가 만만치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지금도 사립 초등학교 학비가 일 년에 천만 원 가까운 걸 보면). 노란색의 교복을 입고, 스쿨버스가 있었고, 여름에 수영에 겨울에 스케이트를 배운다던 그 학교가 갑자기 생각나네. 하여간
그러한 빈부의 양극화를 아이를 통해 보여주는데, 돈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아이의 모습이 인간이 아닌 인형 같아서 <인형극>이라는 제목을 붙인 듯.

* <메아리 메아리>
서술자인 '나'의 회상으로 형에 대해 서술하는 소설이다. 형의 딸(조카딸)인 인희가 결혼을 한다며 찾아오면서, 전쟁통에 행불자가 된 형을 중심으로 한국의 근현대사의 불행한 모습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에 판검사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공부하러 갔다가 독립운동에 가담해 체포된 후에 학도병으로 끌려갔던 형은
해방이 되어선 북한의 사리원인 고향에는 소련군이 주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공산당원이 되어 포목점을 크게 하는 자신의 집 재산을 몰수하는 데 앞장서고, 그 안에서 논쟁을 벌이다 눈밖에 난다.
온 가족이 고생을 하고 한참 동안 감옥에 있던 형이 나오자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남으로 떠나는데
누군가의 밀고로 월남한 빨갱이로 몰린 형은 또 감옥살이를 한다.
감옥에 나오자 전쟁이 터지고 가족과 따로 피란을 간 형은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며 한 여자를 데리고 왔고, 그 여자는 형수가 된다. 전쟁은 이어지고 징집영장이 나오자 형은 전쟁터로 떠났고

형수는 혼자 애를 낳았고, 형수는 아버지를 도왔고, 아버지의 장사는 호황을 누렸고
결국 아버지는 갑작스럽고 허망하게 돌아가셨지만, 형은 전사 통지서도 없이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형의 유일한 자식이며 유복자인 조카딸 인희가 결혼을 하는데
그 청첩장엔 아직도 형이 살아있다고 믿는 형수와 조카의 염원처럼 형의 이름이 박혀있다.
'박창섭 씨 장녀 인희 혼'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 열받아서 잠을 못 잔 건 기구한 형의 삶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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