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들어봤고, 내용 또한 익히 알고는 있으나 읽어본 적이 없는 또 다른 책이다.

친일을 앞장섰고, "일본이 이리 빨리 패망할 줄 몰랐다..."라는 말로 유명한 '이광수'의 작품이기에

무지무지 읽기 싫었으나, '한국 최초의 현대적 장편 소설'이라는 이 작품을 안 읽고 걍 무시할 수는 없었고

스터디 때는 <무정>의 몇 챕터만 다루지만, 그 몇 챕터만 읽을 바에야 제대로 읽겠다고 구입하고 읽었다.

 

<무정>은 1917년 1월 1일부터 그해 6월 14일까지 총 126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다. 이것이 최초의 <무정>텍스트이다. ,무정>의 첫 단행본은 다음 해, 즉 1918년 7월 20일에 최남선이 경영하는 출판사 '신문관'에서 간행되었다. 이 첫 단행본은 작가가 직접 교열을 하고 첨삭을 한 것이다. (209쪽 / 작품 해설) 그러니까 이 소설을 신문에 연재된 것이고

그래서인지 짧게 끊어지는 구성이라서 제법 많은 양이지만, 읽는 것은 수월했다. 그리고 진행이 빨라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도 있었다.

 

제법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그 인물의 성격 변화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물론 짜증 나는 인간도 있지만

그 인물을 바라보는 형식 - 주인공이면서 작가의 생각이 배어 나오는 인물 - 의 시선의 변화가

처음에는 갈팡질팡하고 우유부단해서 무진장 짜증이 났지만, 스스로도 인정하고 한 단계 성숙하는 과정이 있기에 참을만했다.

 

줄거리야 누구나 다 알 테지만

형식이 어릴 적에 박진사라는 사람 곁에 있으면서 교육을 받았으나 박진사의 집안은 모함으로 풍비박산 나고

형식은 경성에서 선생님으로 먹고살고 있고, 그러한 형식을 잘 본 김장로는 미국으로 유학 보낼 딸의 영어 공부를 부탁한다.

7~8년이 지나 형식에게 박진사의 딸 영채가 월향이라는 기생이 되어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그녀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을 하지만

자신에 대한 정절을 지켜왔다고 확신하고 영채를 찾지만, 그녀는 완력으로 추행을 당해 자살할 결심으로 형식을 떠난다.

영채는 죽으러 가던 길에 김병욱이라는 여자 동경 유학생을 만나 그녀의 집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병욱의 집에서 도와주어 병욱과 함께 동경으로 떠난다. 이때 형식은 김장로의 권유로 김장로의 딸 선형과 약혼을 하고 선형과 함께 유학을 하러 미국으로 떠난다. 그렇게  형식 선형 영채 병욱은 유학을 위해 길을 떠나는데 같은 기차에 타고 만난다.

기차에서 그들은 만나고 영채와 형식은 지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길을 나서기로 한다.

기차는 장마로 인해 발이 묶이고 이재민을 위한 음악회가 병욱의 앞장서서 열고나서, 그들은 조선을 위해 새로운 길을 떠남에 대한 결심을 나눈다.

 

영채의 기생 어멈에 대한 이야기나, 형식의 하숙집 할머니 이야기, 병욱의 오라비가 형식과 동경 유학 동창인데, 병욱의 오라비가 영채에게 마음을 두기도 하고, 형식과 알고 지내는 신문기자 선우선도 영채를 좋아라 하는 등 주연은 물론 조연도 막강하다.

선형의 아버지인 김장로, 영채의 추행에 앞장 서던 배학감, 형식의 제자 이희경이나 김종렬 등 다양한 인물로도 여러 이야기를 이끌어가기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물론 길다고 구성이 촘촘하기까지 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첫 장편소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닥 허술하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숙집에 영채가 나타나자 처음엔 반가웠고 어릴 적에 박진사가 '혼인을 시켜주마...'하던 말을 떠올리며, 아름답고도 조신한 모습의 영채가 반가웠으나 그녀가 하던 말을 멈추고 서둘러 돌아가자, 그녀가 기생일지도 모른다는 하숙집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온갖 상상으로 그녀를 탓하더니 - 물론 나중에는 그래도 정절을 지켰다며 안심하지만 - 선형과 결혼하여 미국 갈 생각에 들뜨다가, 영채가 자살하러 간다는 편지를 받아들고는 평양까지 찾아 나서고는, 그녀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쉽게 되돌아오고,

게다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살았더라도 자신 앞에 나타나지 않길 바라는 것을 보면서 뭐, 이런 인간이 있나... 했었다.

 

하지만 형식도 세상에서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진정한 사랑으로 가르치긴 하지만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였다.

선형을 그저 껍질을 아직 깨지 못한 상태라는 등의 생각으로 남을 평가하고는 있지만

자신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한 형식은 이러저러한 일로 스스로를 깨고 일어선다.

 

영채는 어릴 적에 아버지의 말에만 의지하며 형식을 위해 정절을 지키며 형식만을 생각하며 살았고

선형은 아버지의 권유로 단 며칠 영어를 배우기 위해 만난 형식과의 약혼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원하는 마음 없이 수락한다.

형식도 자신이 바른길로 학생을 가르친다는 생각을 하지만 자신이 진실로 원하고 그것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등장인물 중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형식 영채 선형은 자신이 진정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지 못한다. 다만 신문기자 신우선은 비록 한량질이나 할지라도 자신이 즐겨 하는 것을 하고, 병욱은 여자이지만 동경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기차역에서 만난 영채를 일깨우고 함께 유학을 떠난다. 신우선은 자신의 한량질을 후회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어쨌건

자신이 원하는 욕망에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은 신우선과 병욱뿐이었다.

 

급박하게 변하는 세상에 몸을 맡기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던 인물이었던 형식과 영채와 선형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며 자아를 찾고 행동하는 인물로 변하는 과정이 볼만했다.

 

 

자살하러 간 영채를 잡아 달라며 일본 경찰에게 전보를 치는 일이나, 병욱이 음악회를 열기 위해 일본 경찰에게 부탁하니 쉽게 수락하는 장면이나, 이렇게 소설 마지막에 '장족의 진보'를 하는 것에서 친일의 냄새가 난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느껴지기도 한다.

 

조선의 앞날을 위해 조선의 사회에 공헌하자며 손을 맞잡던 주인공들은 어디로 갔는지

느닷없는 발전상의 찬양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짜증이 밀려온다.

 

그러한 발전, 근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철로나 증기선 등의 등장과

통신과 학교나 병원 신문사 등의 등장이 조선인의 편리를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수탈과 통제를 위한 수단임을 깨닫는 것이 그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의 눈으로 파악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면죄부를 주기엔

그가 부르짖는 조선에 대한 동포애와는 일치하지 않는 것이 보여서 어리둥절하다.

 

욕망을 느끼고 그것에 따라 움직이며 자아를 찾아가는 각 인물들이 써 내려가는 개인적 역사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자발적인 행동이 이뤄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소설은 읽을만했고 재미도 있었다.

 

 

 

자신이진정무얼원하는지아는게진자중요하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