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던 김나정 작가의 장편 소설이 나왔다.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얼른 사서 읽어야 할 책과 독후감을 써야하는 책들이 넘쳐났건만 죄다 제쳐두고 코를 박고 읽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프고 즐거웠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때 이른 것이다.
페이지 : 100 "다잉 메시지" 중에서

 

 

 초등학생 5학년이었던 수인(김선주, 사만다)는 같은 반 친구인 이나림을 칼로 찔러 죽였다(꼭 죽였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그 사건은 스무 해 정도 흘러 그들 앞에 다시 놓인다. 수인과 수인의 아들인 안도, 이나림의 엄마와 아버지.

 

 그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고 그 사건이 어떻게 벌어진 것이지를 그들 각각의 시선으로 다시 전개된다. 사실 줄거리는 특이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그들의 시각과 그것을 서술하는 작가의 문장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나림이가 죽고 그와 헤어지면서 내가 깨달은 바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페이지 : 38 " 2.숨은그림찾기" 중에서

 

 서성이게 하는건 저렇게 그러한것을, 그러니까

 사랑하는 누군가를 죽음이라는 것으로 보냈는데 그것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적어도 나의 마음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랄까. 겪어봤더라도 다를 수 있겠지만 나의 마음이 너무 정확하게 실려 있어서 많이 놀랐다.

 

	내 두 팔로 내 몸을 안고 울었다.
페이지 : 51 " 2.숨은그림찾기" 중에서

 

 

  저러한 방법이 있었음을 난 너무 늦게 깨달았고

 

	멋대로 품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페이지 : 54 " 2.숨은그림찾기" 중에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저러한 문장이 꼭 있어야 할 곳에 박여 있었고, 누구도 아닌 악다귀쓰는 이나림 엄마의 챕터 부분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것에 많이 공감이 가면서 코끝이 시큰거렸다.

 

	"......너, 이럼 안도는 어쩌려고."
페이지 : 257 "9. 다시, 한밤의 방문객" 중에서

 

 그럴 때가 있었다. 남겨진 자의 슬픔따위로 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남겨진 것이,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무겁고 버거웠던 적이 있었다. 남들은 충분한 이유가 될거라 생각한 것들이 나에게도 마땅한 이유는 아녔다. 그저 남겨지고 살아있다는 것이 그냥 한없이 무겁고 힘이 들었더랬다. 그럴때 이유를 만들거나 이유를 대는 것일거라며 애써 고개를 다른 쪽을 돌리고 무작정 아무생각없이 열정을 바치고 노력하면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더랬다. 그러면서 남겨진 사람은 세상에 오로지 나 하나뿐인듯 했다. 그래서

 

 먼저 간 사람에 대해 연민으로 날 에워싸고 있었다.

 

 살아있으면서도 사자(死者)의 마음에 매달려 있었다. 사자의 마음은 어떨지 얼마나 아플지에만 매달려있었기에

 내가 가버린다면 아파할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더랬다. 이제와서 여유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있는 자리를 조금은 알것 같다는 말이다.

 

 중간 과정이나 나에게 납득할 만한 개념이 성립되지 않으면서 그저 슬쩍 건너뛰듯 먼저간 사람의 마음을 신경 안쓰려고 노력을 했었다. 만난다 한들, 듣는다 한들 바뀔것이 없기에, 그리고 만날 수도, 들을 수도 없기에, 포기했다는 말이 맞는다. 그냥 놔두기로 했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나면서 "각자의 입을 빌려, 속사정을 (P285)"  듣고나니 "사정을 안나고 해서, 결과가 바뀐 않는다(P285)."는 작가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P285)." 라는 말에 난 그저 "하지만 털어놓음으로써 가벼워질 거라 믿었다.(P285)."에 동의하면서 아프지만 무겁지 않게 무언가를 조금 털어낼 수 있었다.

 

	한땐,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게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라 여겼다.  기억하는 한, 영영 사라지진 않는다.  돌이켜보면 죄책감에서 비롯된 집착에 불과했다.  상처받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다.  예의 바름은 '망각'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내가 만일 죽는다면, 산 사람들에게 제발, 놓아달라고 진저리 칠 듯싶다.  '망자(亡者)'는 '망자(忘者)'로 보내주고 싶었다. 죽은 사람은 잊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화해나 용서는 불가능하다. 단지, 놓아줄 따름이다.
페이지 : 285 "작가의 말" 중에서

 

 - 이제 그만 놓아드려....

 

 그러게.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건 너무 부담이 되고 싫다. 내가 죽으면 그와 동시에 나를 아는 사람의 기억속에도 사라졌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면서 난 20년이 지났건만 매번 수시로 기억을 놓지 못한다. 몇 년전 동생이 한 말이 새삼 생각난다.

 

 그러게, 죽은 사람은 잊혀진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예전에 스님께서도 그만 울어야 가는 사람도 편히 간다며 말씀 하셨더랬는데.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사실 고장이 아녔다) 읽은지 한참이 지나 독후감을 쓰다보니

 읽으면서 내 속에 휘몰아치던 것들이 좀 잠잠해져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책을 읽자마자 독후감을 썼더라면 내 감정에 휘둘려 나만 알아들을 것들을 써댔을테니 말이다.

 

 하여간 김나정 작가의 단편들을 읽으며 너무나도 기다렸던 장편을 만나 너무 좋았다.

 그리고 휘몰아쳤고 앙금으로 가라 앉은 그것들이 이젠 거겁지만은 않아서 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