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이기영 작가의 <서화>와 이상의 <날개>,<종생기>가 실려있다.

우선 이기영의 <서화>는 일제 말기의 농촌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하는데,

정월이 되어도 쥐불놀이와 같은 세시풍속은 사라지고 돈 몇 푼이라도 이웃에게서 뜯고자 노름이 성행하는 모습을 반복하면서

궁핍으로 인해 붕괴되어가는 사람 개인의 모습은 물론 관계까지 변해가는 것이 잘 들어나고 있다. 그 다음

 

이 상의 <날개>와 <종생기>를 읽으며 또,

어디선가 읽은 듯한 기분을 느꼈는데, 나 나를 의심하며, 내가 읽었을 리 없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읽었는데...

다 읽은 뒤에 책장을 뒤져 <이상 전집1 -소설>을 발견했다. 이리 허무할 수가.

읽은 것을 또 읽은 것에 허무하다는 게 아니라, 읽은 것을 기억 못하고 그저 낯익음 정도로만 생각한 기억력에

 - 4년도 더 되었기에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 쓴 웃음만 나왔다.

 

<이상 전집 1 - 소설>을 읽었을 때는 <12월 12일>과 <동해>를 좋게 읽었던 듯 한데, 이 책에는 <날개>와 <종생기>만 있으니 여기에만 집중을 하자면

 

<날개>의 주인공 '나'는 매춘을 하는 아내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모른체 하면서 기생하고 살고 있다.

그러한 삶을 스스로도 모독하고 비약을 하면서 점차 절정에 다다르면 더 이상 그렇한 박제가 아닌

의지로 이러한 현실을 탈출하고자 날자고 절규해 보지만 그건 그저 절규일 뿐이다.

자아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솟구쳤다하나 실은 그저 원망의 표출일 뿐 어디에도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렸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르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날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사전)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페이지 : 145 "날개"중에서

 

한 여름 도시 한 복판에서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물결을 이루는 사람들 - 한 마디로 강남역 같은 곳!- 속에서 느끼는 현기증을 이 문장을 읽으며 느꼈다. 물론 난 날개가 돋으라고 외치고 싶지 않다.

 

 

<종생기>는 제목처럼 삶을 마치는 기록이다. 그러니까 유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인공 '나'는 13번째 유서'를 작성하다가 속달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는 '정희'라는 소녀에게서 온 것으로 그녀는

주인공이 '나'는  물론 여러 남자와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하면서, 또 그 남자들을 제대로 희롱하는 무서운 사람이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공포에 가까운 변신술'이라며 자신은 "나는 속고 또 속고 또 또 속고 또 또 또 속았다"라며 그녀와의 사랑을 적어내려가고 있다.

 

하여간 구본웅을 좋아하고 특히 <우인상>을 좋아하는 지라 열심히 읽으며 이렇게 독후감을 쓰면서 또 읽는데도 좋다.

 

어떠한, 읽지 않은 소설은 읽은 것으로 착각하며 읽기도 하지만, 이렇게

읽은 소설을 단순히 낯 익은 것으로 착각하면서 다시 읽는 것 또한 즐거운 시간이다.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얼른 다음 책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