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핀트가 "딱" 맞을 때가 있는거지.

 

친구의 말이 딱 맞았다. 그렇게 뭐든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나"와 딱 맞을때 그것에 대한 호응도가 커지는 거다.

고흐는 나의 마음을 늦게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이 그 "딱"인 때일지도 모른다.

 

블로그에서 여러번 말했지만 1996년 파리에서 나를 사로잡은건

루브르에선 고대 그리스 시대의 수많은 목잘린 대리석 조각품들과 고대 이집트와 바빌론 시대의 유물들이었고

오르세이 미술관에선 오로지 툴루스 로트렉의 그림 뿐이었다.

 "마네" "모네" "르느아르"의 그림은 물론 "모나리자"도 "로뎅"의 수많은 조각품과

한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이 "고흐"의 그림도 보고 싶은 것을 보겠다며 바삐 움직이던 내 발걸음을 잡지 못했다.

 

난 주어진 시간안에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불타서 다른 작품들은 그냥 "휭~~~~!!!"지나갔다.

아... 그때 왜 그랬을까...지금도 기억나는 건

"어랏~~!! 저건 고흐의 자화상이네~~~"이러면서 중얼거렸고

수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카메라 플레시 팡팡 터지던 모나리자를 보면서 "왜저래~~!!" 하면서 짜증내던 내 모습이다.

 

몇년 전에 열렸던 "고흐"전시회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아직 별 감흥이 없던터라 공짜로 주어진 표로 간 전시회가 그닥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게다가 그 전시회에선 어른과 아이들이 뒤섞인 그 덩어리에 둘러싸여 그림보다는 사람 구경을 더 많이 했고

도록은 커녕 작은 기념품 하나 사려해도 어찌나 비싸던지 짜증을 넘어 화가 슬슬 밀려왔다.

막상 전시실로 들어가니 고흐의 그림도 몇 작품 걸려 있지도 않았고 유화(회화)작품 보다는

드로잉과 그 외 고흐와 관계된 인물이나 "아를"지역에 대한 사진과 그와 주고 받았다던 편지들이 너무 많았다.

 

난 "고흐"라는 사람보다 고흐의 "그림"이 보고 싶었는데

전시회가 끝났는데 내가 본 "그림"은 머릿속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전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선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그림"을 보고 싶어서 읽은 책이었는데

그 속엔 그림은 물론 그 속에서 "인간 반 고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읽고 보니 그림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젠 고흐가 그린 그림을 제대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도록을 사고 싶었는데...도록들은 죄다 너무 비쌌다.

그렇게 이런저런 도록에 군침만 흘리고 있었는데 그 수많은 도록중에 가장 눈에 들어온 이 도록이 할인을 하길래

냅다 질렀다. 그리고 완전 만족이다.

 

내지도 번쩍이는 광택지가 아니기에 더 좋다.

무광지여서 그림의 색이 더 차분하면서도 빛이 난다.

색은 요동치지만 화려하다기보다는 소박한 느낌이 고흐의 그림과 너무 잘 어울린다.

책은 고흐의 그림과 고흐가 지인들과 오고갔던 편지들이 년도별로 실려있다.

그 내용을 다시 읽으니 또 고흐의 매력에 빠진다.

 

아쉬운것은 실린 그림들의 정확한 상세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그린 년도와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과 원본이 전시되고 있는 미술관, 그리고 그림의 크기 등...

그러한 것들이 있다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다.

 

하여간 오르세이 미술관에선 그냥 스쳐지나갔던 <자화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게 막상 마주쳤을 땐 진가를 몰라보고 지나쳤지만

이렇게라도 다시 만난게 어딘가....하면서

지금이 어저면 그 핀이 맞는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들여다 본다.

 

며칠 째 아껴가며 아주 조금씩 읽고 보고 있다.

이 책은 후다닥 읽으면 후회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