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성마을로 떠나다.

내 나이 올해로 서른. 늘 비슷비슷한 일상, 초심은 어디로 간채 매너리즘에 제대로 빠진 직장생활, 별다른 감정없이 이렇게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도 되는 걸까? 걱정을 하던 와중에 만난 감성마을과 이외수 선생님.

감성마을로 향하기 전 ’참 인생살이 어찌보면 별 것도 아니구나 싶었다.’ 작가 이외수를 만나기 위해 ’1박 2일’ 코스에 신청한 수많은 사람들의 경쟁을 뚫고 여정에 오른 나였지만 어지간히 책을 읽다면 읽은 이력이 있는 나였지만. 이외수 작가의 책과 나와의 인연은 없었다. 그래도 뽑아주신 인터파크와 출판사에 미안해서 급조되게 몇권 구입을 하긴했지만 읽지는 못했다. 과연 감성마을에 그동안 간 사람들 중에서 이외수 선생님의 책을 한권도 안읽은 배은망덕한(?) 인간이 나말고 또 있을까 싶었다. 오히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차가 강원도에 다다를수록 내 심정은 담담해졌다. ’대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임에도 불구 차분해져 갔다. 내가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그저 오히려 작가를 잘 모름이 주관적이 아닌 객관적 입장에서 대할 수 있고 이번 기회에 ’이외수’ 작가에 대해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직접 듣고 알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 보리라 다짐했다.

 #2. 감성마을에 다다르다.

감성마을. 어감이 참좋은 단어다. 왠지 이 곳에 오면 내 안의 딱딱하고 차가운 이성보다는 뜨겁고 인간적인 감성이 없다가도 꿈틀댈것만 같은 욕구가 생기는 낱말이다. 서울을 떠난지 3시간여 반가운 감성마을 푯말을 몇개 보면서 다다른 그 곳.  감성마을이다. 나중에 선생님을 통해 알게됐지만 화천군수님의 문화를 사랑하는 그 깊은 혜안에 감사드리고 싶다. 작가를 제대로 작가답게 대우해 주는 것. 우리가 그간 등한시 해온 것을 군수님이 이렇게 멋지게 해주시다니 전혀 상관없고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왠지 화천군수님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림과 같은 모월당을 차로 스쳐지나가며 드디어 도착한 곳. 마치 벙커와도 같은 그 곳이 선생님의 집필실이자 거주하시는 집이다. 저명한 건축가 조병수씨의 설계를 기초로 지어진 집은 들어가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범상치않은 심플한 외부와 아늑하면서도 탁트인 내부는 ’이런 곳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단’ 생각이 절로 들만큼 멋드러진 곳이었다.

 #3. 이외수 선생님을 만나다.

백룡이 가족의 열렬한 짖음(환호)을 받으면서 들어선 대문. 이제 도착했다는 실감과 곧 이외수 선생님을 뵌다는 설렘, 기대, 흥분, 떨림 등의 감정에 왠지 움츠러 들었다. 너무나 환하게, 따스하게 일행을 맞이해주시는 사모님 때문에 절로 심정이 안정이 됐다. 부창부수라고 하던가. 이것저것 말씀해주시는 것을 귀 쫑긋 세우고 들으면서 ’참 정겨우신 분이구나.’ 느꼈더랬다. 소탈하시고 정겨우시고 유머러스하신 점이 선생님을 보는 느낌과 같았다. 감성마을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핏 생각해도 엄청날 것 같은데 사모님의 이런 따스함이 계시니 모두를 아우를 수 있고 이 곳을 통해 ’감성충만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윽고 모두의 기대 속에 자태를 드러내신 선.생.님.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야윈 모습의 선생님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해 졌다. 지금보다 더욱 건강하시길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시길 순간 강렬하게 기원했음은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나의 걱정은 기우임이 드러났다. 한마디,한마디 우리 일행을 반겨주시면서 해주시는 말씀에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그저 ’참, 좋다.’ 이 생각뿐이 안들었다.

 #4. 선생님과 함께 하다.

반가운 첫인사를 뒤로 저녁식사를 하러 일행은 식당으로 향했다. 감성마을 초입에 있는 식당가. 음식 맛도 좋고 인심도 좋으시고 하기사 뭔들 안좋았을까만. 식사 도중에도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고갔지만 특히나 내 마음을 울린 말씀. ’조화로운 삶을 위해 반은 내줘라!’

어리석게도 현실의 모든 것을 얻기위해 아둥바둥 발버둥치면서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는 찰나에 해주신 말씀에 실로 깊은 공감이 갔다. 반은 내주고 반은 노력해서 쟁취해나간다면, 단계적으로 실천해 나간다면 결국 목표로 삼는 지향점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선생님 한말씀, 한말씀에 집중하느라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알순 없었으나 밥맛은 좋았다.

#5. 모월당에서의 프라이데이 나잇 피버!

드디어 1박2일의 메인 코스인 모월당에서의 한마당.

<너무나 무심한 표정에서 나오는 스매싱은 예상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우선 탁구로 시작됐다. 덩그러니 넓은 공간 중앙에 놓인 탁구대에 일동 모두 어리둥절했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탁구채를 들고 몸을 푸시는 이본좌. 역시 승부사 특유의 기질을 숨기실 수 없었음인지 가녀리고 여린 육체에서 갑작스레 뿜어져나오는 포스가 절로 느껴졌다.

’내가 손댄 것은 끝장을 본다’고 하시더니 탁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탁구실력은 놀라웠다. 돌아가며 편을 구성해서 한바탕 왁자지껄하게 탁구를 친 후 본격적으로 잔을 들고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분위기는 어느새 MT를 온듯한 자유로움이 물씬 풍겨지면서 선생님이 대작가가 아닌 큰형님과 같은 익숙함과 푸근함이 느껴졌다.

#6. 이본좌에게 여쭈어보다!

Q. 애착이 가는 작품?

-> 운명을 바꾼 작품은 데뷔작 ’훈장’, 출세작은 ’꿈꾸는 식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들개’이다. 이상이 1기 문학. 집을 사기위해 쓴 ’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면서 얼마나 선생님이 자신만만한 포부와 배짱을 갖고 계셨는지 고개가 숙여졌다.

개인적으로 집을 사기위해 문학을 이용한 죄책감 속에 절필을 선언하시고 재기하는 마음으로 5년동안 쓴 작품 ’벽오금학도’가 후기 문학의 운명을 바꿔줬다고 말씀하셨다. 후기 작품은한 읽었다고 자부했는지 부끄러워졌다.

Q.향후 어떤 작품을 구상하시는지?

-> 대개 소설 주인공들이 불행하고 어둡고 좌절, 실망하는 경향이 많은데 모든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므로 작가도 행복이 무엇인지 말해야 하는 사명감, 때가 왔다. 행복한 주인공을 삼아서 읽기만 해도 행복해 지는 글을 쓰고 싶다.

말씀을 하시는 도중에 표정에서 이미 행복감이 물씬 풍겨지셨다. 행복한 소설. 참 기대가 많이 갈 수 밖에 없으면서도 우리네 현실의 각박함에 숨이 잠시 막히기도 했다.

Q.88만원 세대라 통칭되는 희망이 없는 불행한 젊은 세대에게?

-> 아무 것도 투자 하지 않고 얻으려고 하면 안된다. 스스로에게 얻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자.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사고방식을 바꿔라! 원망만 하지 말고 지금 하는 일에 주목하고 매진하라.로또로 인생 역전을 하는 확률과 벼락에 두 번 맞을 확률이 같음을 명심하자.

Q. 일반인들이 글을 잘 쓰려면?

멋있는 글을 보면 멋있다는 것을 아는데 내가 하려면 안된다. 바로 어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쓸려고 하는 데 안 떠오르는 것은 평소 단어를 무관심하게 방치해놓고 글 쓸때만 나오게 하기 때문에 안될 수 밖에 없다. ’단어 채집’ 단어 하나하나를 사유하라! 단어 하나하나를 감상해야만 내 기억과 가슴 속에 남아 내 단어가 되서 글 쓸때 나오는 것이다. 단어채집을 생활화 해라! 평소 선생님의 일상 생활에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시는 바가 여과없이 드러나는 말씀이었다.

Q. 동물 실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금속도 사고를 하고 벼라고 목숨이 없는 것이 아니다. 순환과 변화, 조화를 생각하면 먹이에 대한, 생명유지에 대한 행위는 거룩한 것이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가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서양사람의 비판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개고기 먹는 우리는 야만인이다. 니네는 못먹쳐먹기 때문에 미개인이다.’ 문화적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지구 뿐만 아니라 우주적 관점에서 사고를 해라! 개인적인 편협한 시각으로 보지 말아라! 질병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연구목적으로 사용되는 동물 실험은 숭고한 것이다.

순환과 변화, 조화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콘크리트화 돼서 먹지도 말고 자지도 말고 죽어야 한다. 한마디, 한마디 사자후와 같이 열변을 토하시는 말씀에 좌중은 압도됐다.

Q. 인수위의 영어정책에 대해?

-> 한글의 우수성, 긍지와 자부심을 세계에 알리고 난 후 2차적으로 영어를 어찌했으면 난 가만 있었다. 문화, 역사, 교육에 대한 인식이 안 갖춰져 있는 시점에서 답답할 뿐이다.

Q. 기억에 남는 독자는?

-> EBS에서 작가의 출신 고등학교를 찾아 방송을 한 일이 있었다. 강원도 인제 출신 고등학교로 가니 모교 학생들이 못 알아봐서 실망을 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로 제작진과 발길을 돌렸는데 학교 앞에서 한 초등학생이 자전거를 타려다 ’이외수 선배님이다!’ 외치며 아이들이 새까맣게 몰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 각 교실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배라며 사진이, 책 스크랩이 진열된 것을 보고 모교고교에서 느낀 서운함이 사라졌고 책을 읽은 한 독자가 선생님 모교에 자원해서 지원한 것을 알고 감동을 받았다고 하셨다.

-> 박민규, 이철환 작가가 자주 감성마을에 온다. 스스럼없이 지내는 독자들이 대부분. 이방인들의 방문도 따스하게 맞아주시지만 작가에 대한 예의가 없는 방문엔 아쉬움을 느낀다.

-> 남들하고 똑같이 살면 남들하고 똑같은 글밖에 안나온다. 일부러라도 자기에게 상처를 내고 남의 아픔, 내 아픔을 기꺼이 감내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말씀에 치열하게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인고의 노력을 감내하신 선생님이 떠올라 고개가 숙여졌다.

<선생님의 즉석 라이브쇼쇼쇼~~!!>

이렇게 대화는 오고갔다. 이후 모월당에 있는 노래방 기기에서 선생님의 선창으로 노래방 타임이 시작됐다. 3곡을 연달아 멋드러지게 뽑아 내시는 가창력. 마땅히 스트레스 풀데가 없어서 탁구와 노래로 푸신다는 선생님의 내공은 가히 놀라웠다. 그리고 독자, 인터파크, 출판사 사람들 번갈아가면서 목이 터져라 신명나는 자리를 만들어 나갔다. 선생님은 북을 치시면서 흥을 더욱더 독구어 주셨다.

<이본좌의 무심타법. 신기하게도 흥이 절로 난다!>

참 정겨웠던 점이 독자-인터파크-출판사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그저 이외수 선생님 한 분으로 인해 뭉치고 섞여서 아무 근심, 걱정, 생각없이 한데 어우려져서 놀 수 있었다는 것이 노는 와중에도, 지금에와서 돌이켜봐도 신기하기만 하다. 노래를 부르면서, 와인을 먹으면서 사람들끼리 책에 대해, 인생에 대해 서로서로 거침없이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고 이렇게 감성마을의 열기의 밤은 깊어만 갔다.

새벽 3시까지 선생님은 함께 해주시고 그 후에도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면서 이야기 꽃에 열을 올렸다. 5시가 못돼서 잠을 청했고 아침에 일어난 후 주변 환경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간밤에 내리던 비가 어느새 눈으로 바뀌었는지 모월당 주변을 가득 메운 순백의 눈. 서울에서 볼 수 없었던 주변 풍경에 산책을 하면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찍힌 짐승들의 발자국을 보면서 감성마을의 주민은 동물들이고 인간은 그들의 친구라는 말이 새삼 실감났다.

<모월당의 아름다운 자태>

워낙에 늦은 밤까지 함께 해주신 관계로 선생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감성마을을 떠남이 못내 아쉬웠다. 그동안 외모에서 풍기는 기인같은 느낌과 온라인상에서 봐온 촌철살인의 통쾌함만을 봤던 이외수 선생님. 그러나 짧지만 너무나 강렬하게 느끼고 본 선생님은 더할 나위없는 자연인이시자 인간의 감성을 어떻게 하면 문학작품으로 확대시키고 발전하게끔 몰두 하시는 분이셨다. 따스한 성품과 만물을 사랑하는 사람냄새 진하게 나는 인간적인 사람.

이제 그 분의 인간됨을 느끼고 공감했으니 그 분의 작품을 통해 선생님과 교류하고 소통하려 한다. 당당하게 (속으론 쑥스럽게) 선생님의 책을 한권도 읽지 않았지만 선생님을 알기 위해 이 곳에 왔다는 건방진 발언에도 불구하고 따스하게 맞아주시며 이것저것 많은 조언을 해주신 인간 이외수 선생님.

장외, 장내를 떠나서 그가 왜 이본좌일 수 밖에 없는지 궁금한 사람은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로 가보시라. 그곳엔 희화화된 모습과 외모가 아닌 너무나 인간적이면서도 한차원 높은 경지를 향해 정진하고 계신 한 분이 계시다. 바로 감성 마을의 촌장이신 그 분말이다.

 
<이본좌의 살인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