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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초등학교 때 보고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소풍 삼아 들렸던 놀이공원 안 동물원에는 호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자보다는 호랑이를 좋아한다. 사자는 왠지 포악한 느낌이 들지만 호랑이는 그림책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많이 봐온 탓인지 왠지 모르게 친근하다. 민담이나 설화집을 읽어보면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읽을 수 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수록 된 「호질」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래동화 속에도 호랑이는 항상 등장한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었던 만큼 악한 행동을 하지만 사냥꾼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거나 사람의 꾀에 속아 허탕을 치는 결말이 대부분이다. 허탕을 친 호랑이들은 숲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이 얼마나 호랑이를 무서워 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격화 되어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다. 호담국으로 불리기도 했던 우리나라엔 호랑이에 관련된 이야기가 참으로 많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호랑이가 사라진게 언제부터일까?

일제강점기 창경궁의 추락과 민중의 설움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추락한 시절이 있었다. 일제시대, 창경궁의 위상을 떨어트리기 위해 일본정부가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국민이 자국을 잃고 다른 나라에 복종하며 식민살이를 하게 된 것도 원통한데 위상이 드높던 궁을 헐고 그 자리에 동물원을 만들어 창경원이라 부르기까지 하다니 이 얼마나 치욕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란 말인가. 이 당시 창경원에는 호랑이, 사자, 곰, 독수리를 비롯한 여러 동물이 보호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할 위기에 놓이자 이 동물들이 바깥으로 나가 사람들을 헤할 수 있다며 '해수구제'를 명목으로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처분하기에 이른다. 그 이후로는 남한에서 호랑이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북한에도 백두산 근처에 몇 마리가 고작이라고 한다. 동물원이 아니고서는 자연에서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 호랑이.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왕대』는 호랑이가 사라진 원인을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동화이지만 이 역사동화이자 생태동화이기도 한 이 책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왕대는 으뜸가는 수컷 호랑이라는 뜻으로 다른 호랑이들을 이끄는 위치다. 자신의 아버지가 왕대였기 때문에 자신도 '왕대'가 될 것이라며 그렇게 불러달라던 왕대는 인왕산 숲 속에서 엄마와 함께 살다가 동물원 원장 히로키에 의해 엄마를 잃고 창경원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다른 동물들과 함께 지내며 숲 속으로 돌아가려 도망도 쳐보지만 끝내 잡혀 보조사인 10살 재윤과 함께 독방에 갇혀 지낸다. 재윤은 왕대를 친구로 받아 들이고 극진하게 신경 쓰는데 다시 우리로 돌아간 왕대는 동물원 안에 감도는 긴장감을 느끼고 의아해한다. 배급량이 줄어들어 굶주리고 있는 상황에서 어린 사자 피타가 다른 아기 동물들의 사료까지 독차지하는 상황에 불만을 느낀 왕대는 급기야 피타와 싸움을 벌인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할 위기에 놓인 일본은 동물들을 살처분 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고, 사육사들은 어린 재윤에게 휴가를 주어 내보낸 다음 맹수들을 살처분 하기 위해 고기에 약을 섞어 배급하기에 이른다. 왕대는 고기에 약을 섞는 것을 목격한다.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되고, 중간에 돌아온 재윤의 도움으로 동물원을 벗어나 숲으로 돌아가게 된다.

어린 왕대는 힘 없는 조선의 백성이자 우리의 조상에 빗댈 수 있다. 그도 그럴것이 민중의 힘을 상징하는 호랑이 중에서도 어린 호랑이니 일제 당시 힘 없이 당하던 조선사람들이 아니고서야 무엇이란 말인가. 왕대는 인왕산 숲 속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히로키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창경원에 들어가게 된다. 환경이 변화된 것이다. 이는 마치 조선 백성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 폐위 되고 순종이 꼭두각시 황제노릇을 했던 당시 시대상과 유사하지 않는가? 왕대는 히로키에 의해 강제로 숲을 떠나게 되었지만 동물원에 적응하지 않고 숲으로 돌아가려고 마음 먹는다. 심지어는 탈출을 시도한다.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탈출을 시도하는 그 장면은 잊혀지질 않는다. 왠지 일제 때 일본에 대항했던 독립투사의 업적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벌였다. 왕대가 그런 것처럼. 숲으로 돌아가기 위해 총에 맞아 죽을 것을 두려워 하면서도 탈출을 감행했 듯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죽을 줄 알면서도 목숨 바쳐 독립 운동을 벌인 독립 투사들과 민중들. 왕대는 아무래도 우리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이자 소망이요, 민중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사실 창경원에 관련된 이야기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왕대』가 아니었더라면 모른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창경원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동물원으로 바뀌어 위상이 추락된 안타까운 역사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렇다.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바뀌었던 것은 슬픈 역사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이 역사가 동화로 만들어진 이유는 국사책을 펼쳐야만 배우고 기억할 수 있는 역사로 남기 보다는 가슴 속에 남는 역사로 만들기 위해 김탁환이 선택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왕대의 이야기로 역사를 되새기게 하려는 것이 그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덧붙여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깊은 산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호랑이

아직도 나는 호랑이가 깊고 높은 산 속에 들어가면 '어흥'하고 뛰쳐 나올 것 같다. 남한에서 호랑이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 믿기질 않는다. 아무래도 우리 주변에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친근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호랑이는 때론 두려움을 주지만 때론 우리를 수호해주는 수호신과 같은 역할을 하곤 했다. 이 땅 어딘가에 조선 호랑이가 살아 있으면 좋겠다. 창경원을 뛰쳐 나가 인왕산으로 돌아간 왕대가 또 다른 호랑이를 만나 번성해 이 땅 어딘가에 살고 있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숲 깊은 곳에서 왕대로서의 위엄을 지키며 말이다.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뱅갈 호랑이나 시베리아 호랑이가 아니라 인왕산 호랑이를 보고 싶다. 살아있는. 우리 민중의 얼과 힘이 담긴 호랑이를 말이다.

+ 해당 서평은 위드블로그를 통해 살림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