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의미있는 사물들 우울증 치료제   내 서랍장 맨 위 칸 깊숙한 곳에는 검정색 송아지가죽 지갑이 들어 있다. 이젠 너무 헤져서 들고 다닐 수 없는 이 지갑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 내 마지막 루디오밀 한알이 들어 있다. 이 약으로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같은 약 열세 알을 매일 하나씩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그래서 2주 후에 열네 번째 약을 삼키고 난 후에야 무언가 조금 달라진 걸 느끼게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익숙했던 느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 한 알 남은 내 작은 루디오밀은    아 름 답 다.   이 약을 보면, 빅토리아 시대에는 남아와 여아를 구분하는 색깔이 지금과 반대라서, 분홍색이 남아를 파란색이 여아를 나타냈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덕분에 나는 내 푸른색 점, 남녀평등의 색깔을 띤 이 알약에 대해 강렬한 소유감을 느낀다. 게다가 이 약의 도움으로 내 우울증의 원인일지도 모르는 것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유전이라는 올가미, 출산 후 찾아온 불청객, 포스트 펑크라는 드레스코드에 나타난 후기 자본주의의 불안감 같은 모든 것들로부터.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았다.   건전하게 살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2년 동안 상담을 했지만, 내 우울증은 여전히 깊이 뿌리 내린 채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치료를 담당했던 선생님은 내게 약물을 권했다. 내가 처음 복용한 약은 메리톨이었는데, 그 조그만 알약들의 효능이 쌓여 약효를 발휘하는 데 2주일이나 걸렸다.   난 갑자기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항상 기분이 좋아서 무슨 일에든 '심하게' 웃어댔고, 급기야는 슬픈 일에도 웃었다. 의사는 남아 있는 메리톨을 모두 버리고, 아침에 병원으로 전화예약을 하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 약 때문에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뒤에 먹은 약이 루디오밀이었다.   적당히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었다. 죽고 싶지도 않았고, 심하게 웃어대지도 않았다. 난생 처음 편안한 마음으로 적당한 자신감을 갖고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나만의 화폐, 행복에 이르는 내 오래된 티켓의 반쪽, 나의 황금 같은 보물, 내 우울증 치료제 -내 인생의 의미있는 사물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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