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은 몇 년 전부터 7, 80대 노인들을 대상으로 수십 차례 인터뷰를 해왔다. 질문은 간단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땐 어떠셨죠?”
인생의 후반에 서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뿐만 아니라 일과 가족을 어떻게 추억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딕의 목적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대답을 정리해보니 ‘후회’라는 단어로 요약되었다.

많은 노인들이 인간관계를 더 밀고 나가지 못하고 쉽게 좌절한 것이 후회막급이라고 말했다. 또 이들은 두려움 없는 사랑을 못 해봤다고 한 결 같이 입을 모았다. 또 죽을 때가 되어 자신의 인생이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고 두려워했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무의미한 삶을 살았다는 뼈아픈 자각이었다. 죽고 난 후에 영원히 잊힐 거라는 생각은 죽음보다 훨씬 섬뜩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노인들은 조금씩 죽음을 준비해가고 있었다. 반면에 삶이 여전히 즐겁다고 말하는 노인은 별로 없었다.
“만일 처음부터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렇게 묻자 대부분 살아생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겨서 영영 기억될 만한 일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노인들은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줄 만한 독특한 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다.

이것은 비단 황혼기에 서있는 노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의 고민과 우리의 고민은 별반 다르지 않다. 죽음은 분명 두려운 대상이지만,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삶을 살았다는 후회만큼 두렵지는 않다. 시인 딜런 토마스(Dylan Thomas)가 노래한 것처럼 ‘누구나 따듯한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불로써 사위를 훤히 밝힐 수 있기를 원한다. 물론 ‘어떻게?’라는 숙제가 남는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의 불을 밝힐 수 있을까?

잠시 눈을 감고 빛의 모양을 그려보라. 빛이 있는 곳에는 늘 자신을 태우는 무엇인가가 있게 마련이다. 햇빛이건 촛불이건 근원은 항상 똑같다. 들뜬 전자, 복사(輻射), 열기가 있다. 따라서 빛을 내려면 우리 또한 자신을 불태워야 한다(물론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우리 내부에서 활활 불타오르는 열정을 느껴야 한다. 열정을 계속 더 맹렬한 기세로 태우면 삶에서 자연히 빛이 나는 법이다.
딕이 인터뷰한 노인들 가운데 일에 열정을 느끼는 노인은 삶에서도 가치를 느꼈다.

 

이 소수의 노인들이 느끼는 만족과 성취감은 억만금을 준대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일이 영적인 것이라 얼마든지 타인에게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이들은 자신들이 있었기에 세상이 더 좋아졌다고 자부했다. 이 노인들은 일로써 지갑을 두둑이 했을 뿐더러, 에고와 영혼까지 충만하게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짐 클리슨(Jim Gleason)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누가 봐도 짐은 할리우드의 성공한 CEO처럼 보인다. 알맞게 그을린 피부에 흐트러진 구석 하나 없고 말씨도 또박또박하다. 그런데 사실 그는 딕의 사무실 빌딩에서 경비원으로 일한다.
하지만 짐이 여느 경비원들과 다른 점은 준수한 외모뿐만이 아니다. 정작 딕의 관심을 끈 것은 그가 읽는 책이었다. 저녁이나 주말이면 딕은 짐이 지켜보는 가운데 출입명부를 작성하면서 자연히 책상 너머 가죽 가방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엔 불교와 동양 철학서가 가득 들어 있었다. 경비원의 가방에서 그런 제목의 책들을 볼 수 있는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딕은 짐과 몇 마디 나눠보다가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영혼의 질문을 좇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짐은 수년 동안 불경과 불교 관련 서적을 탐독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천착해온 것이다. 그가 답을 발견한 것은 1995년이었다.
“건설적인 삶에 대한 기사가 잡지에 실린 것을 보고는 테이프와 책 몇 권을 주문했어요.”

이것이 짐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는 1999년 ‘건설적인 삶’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계속 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건설적인 삶’은 데이비드 K.레이놀즈(David K. Reynolds)가 개발한 일반적인 ‘삶의 기술’인데, 여기에 맞춰서 사는 사람들은 자기 기분을 쉽게 인정하고 삶의 목적을 명확히 인식하며 꼭 해야 할 일을 깔끔하게 해낸다. ‘건설적인 삶’은 목표를 향해 매진할 때 말과 행동을 분명히 하고 세상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검소하게 사는 것에서부터 자기도취를 피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실천적인 삶을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꼭 18살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어요.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왜 하는지 아주 정확히 알고 있어요. ‘건설적인 삶’이 가르치는 교훈 중의 하나가 ‘당신이 곧 일이다. 당신의 본질을 바꾸고 싶거든 하는 일을 바꿔라’ 이겁니다.”
짐은 새롭지 않은 순간이란 없다고 믿는다. 세상의 모든 것처럼 사람도 매순간 변한다. 건설적으로 살면 수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혼란과 죄의식,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짐은 믿는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삶을 받아들였고 ‘건설적인 삶’의 강사가 되었다. 그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바로 이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느낀다.

“이렇게 하게 된 동기 중의 하나가 건강한 죄의식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내가 받은 것만큼 돌려주지 않았다는 느낌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활용해 ‘건설적인 삶’을 대중화하려고 합니다.”
짐은 소명의 순례를 ‘성 십자가(Holy Cross)’ 활동으로 시작했고, 9년 동안 종교에 귀의해 교구 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쳤다. 그런 다음 속세로 내려와 화학약품 세일즈 담당 기술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 20년 동안 짐은 교사와 세일즈 담당 기술자, 부동산 중개업자를 수없이 오갔다. 한 번은 세일즈맨이 되기 위해 종신 교수직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

“지금 나는 내 본래의 소명을 되찾았어요. 사색하는 수도승 생활로 돌아온 셈이죠. 현실에 부딪혀 맨땅에 꼬꾸라지기도 수십 번, 이제 이걸로 충분해요. 여든이 넘을 때까지 이 일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살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짐은 새로운 과거를 창조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데이비드 K. 레이놀즈의 저서『천 번의 파도(A Thousand Wave)』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자아정체성을 정립하려면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소심하게 행동했다면 성격이 소심한 것이다. 용감하게 행동했다면 성격이 용감한 것이다. 자신의 본질을 바꾸고 싶다면 과거를 먼저 바꿔야 할 일이다.”
경비원에서 ‘건설적인 삶’의 강사에 이르기까지 짐은 자신이 하는 일을 변화시킴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본질까지 바꾸어놓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진원지는 짐의 내부에 있었으며, 이것은 그가 자신의 소명에 대해 열정을 느끼기에 가능한 일이다. 짐의 유산이 독특하다면 열정적인 소명에 대한 그의 내적인 경험은 모든 이의 귀감이 될 만하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부여된 일에 열정을 느끼고, 열정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위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기억될만한 유산’을 창조하는 것은 물론, 후회 없는 삶을 보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또 다시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지금과 똑같은 삶을 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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