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동물이다.”
노트르담 대학교 철학과 석좌교수인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의 말이다. 그는 진실을 담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한다. 즉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셀프 스토리를 통해 자아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똑같은 사건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 사건이 되기도 하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따라 삶의 형태가 달라진다. 가령 하루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 하나에 수많은 대답이 나올 수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 ‘회사의 성공을 위해’, ‘그냥 시간을 때우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 모든 대답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진실 여부가 갈린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이야기를 어떻게 묘사하든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것이 실제로 구현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느냐에 따라 개인적인 삶이건 회사 생활이건 ‘변화’가 일어난다는 얘기다. 또한 자기 이야기를 더 명확히 이해할수록 자기 이해도 그만큼 높아진다. 따라서 자신의 본질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쓰다보면 더 큰 행복, 성공,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삶을 재정립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쓰려면 우선 지금껏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가?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렸는가? 어떤 사건들이 있었기에 당신은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는가? 당신이 일을 선택했는가, 아니면 일이 당신을 선택했는가?
데이브의 이야기를 보면 이 질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데이브 이야기

나는 11살 때부터 일기를 썼고,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는 게 취미였다. 학교에서도 영작문 수업을 좋아하는 별종으로 통했다. 하지만 내가 훗날 전업 작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글쓰기는 그저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분이었을 뿐이고, 커서도 그저 부업 정도로만 여겼다. 글쓰기로 인생을 살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었다. 그저 재미있어서 글을 썼을 뿐이다.

20대 초반,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던 무렵, 나는 아파트 근처 클럽에서 일하는 코미디언을 위해 장난삼아 대본 몇 개를 썼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코미디언은 대본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심지어 원고료까지 주었다. 대단한 금액은 아니었지만 ‘글을 써서’ 최초로 돈을 벌어본 이때의 경험은 한 마디로 짜릿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대단한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코미디 작가가 되기 위해 연예신문인 데일리 버라이어티를 매일 읽으며 참신한 이야깃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 날 멀티미디어에 적격인 경력 작가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뉴멕시코 주 산타페에 있는 트레이닝 회사의 광고였다. 그때쯤 나는 우스갯소리에서 보도자료, 항공사 사보에 실릴 도박기사에 이르기까지 3년 넘게 온갖 이야기를 다 써봤으니 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멀티미디어 경험이라면, 글쎄 드래곤 퀘스트 같은 비디오 게임에 푹 빠져 밤새는 줄도 몰랐던 적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나는 지원서에 이때의 경험이 멀티미디어의 효용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며,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아이디어가 넘칠 지경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두 달 뒤 나는 트레이닝 회사의 전문 작가가 되었다.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저 즐거운 놀이처럼 생각했던 글쓰기로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유쾌하고 다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꿈같은 2, 3년이 지나는 동안 조금씩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세일즈맨이 상품을 잘 팔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과연 나의 본질과 관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 어느 날 딕 레더라는 컨설턴트가 우리 회사에 와서 강연을 했다.

딕은 직원들이 자신의 목적을 찾고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데이브, 당신은 지금 일에 큰 만족을 느끼지 않고 있군요. 그렇다면 현실을 직시하세요.”
그 순간 나는, 비록 작가로서의 재능이 홀대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가 그토록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문제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물론 그 회사는 좋은 곳이었고, 직원들도 훌륭했다. 하지만 그들이 가야 할 길과 내가 가야 할 길이 다르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었다.

얼마 후 나는 회사를 떠나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처분한 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처럼 망명 작가가 될 생각으로 아내와 함께 파리로 떠났다. 물론 계획 자체는 황홀하리만치 로맨틱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 역시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없다는 현실이 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마치 노예선에 감금된 작가처럼 나는 사람 냄새 풍기는 환경을 그리워했다.

결국 우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고 그때부터 나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은 모든 게 완벽한 것 같았다.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데다가, 내가 고른 프로젝트에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었고, 고객과 동료를 만남으로써 팀워크와 공동체 의식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미진했다. 내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훨씬 더 큰 무엇인가가 빠져 있었다.

잃어버린 나의 소명을 되찾은 것은 딕과 함께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원제 : Repacking your bags)』을 쓰면서부터였다. 그때 나는 어렸을 때 나의 꿈이 ‘문학 작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꿈의 일부에 불과했으며, 좀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일 따름이었다. 나의 열정이 살아나는 것은 언어의 ‘예술’ 그 자체가 아니라, ‘언어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나의 글을 통해 세상을 좀 더 명확히 인식하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나의 행복이었고 그때만큼 살아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하나씩 자각하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특히 어린이 철학에 좀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이 책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루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발자국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길에서 벗어난 발자국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혹은 내 앞에 어떤 선택이 놓여 있었는지 훤히 알 수 있다. 물론 다른 선택을 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실수를 수없이 저질렀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나에게 맞지도 않는 직업을 택하기도 했다. 또 내 재능과 흥미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일을 한 적도 있다. 수없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고 그만큼의 잠과 건강을 잃기도 했다.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지금도 아쉬울 때가 많다. 바퀴를 굴리기 위해 그토록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더라면 쓸데없는 힘을 소진하지 않았을 테고, 별 어려움 없이, 그리고 더 큰 만족을 느끼며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을 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말이다.

 

 

 

삶, 소명, 직업, 마음, 인생